고구려와 신라가 화친하자, 백제가 원병을 요청함
5월 무진삭 을해(8일)에 백제, 가야, 안라가 중부(中部) 덕솔 목리금돈(木刕今敦)
주 001과 하내부(河內部) 아사비다(阿斯比多)
주 002 등을 보내어 “고구려와 신라가 화친하고 세력을 합쳐 신의 나라와 임나를 멸하려고 합니다주 003
번역주 003)
. 따라서 삼가 원병을 요청하여 먼저 불시에 공격하고자 합니다. 군사의 많고 적음은 천황의 칙에 따르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천황이) 조를 내려 “지금 백제왕, 안라왕, 가라왕과 일본부의 신 등이 함께 사신을 보내 상주한 상황은 잘 들었다. 또한 임나와 함께 마음과 힘을 하나로 하여라. 그렇게 하면 반드시 하늘이 지켜주는 복을 받을 것이며 또한 황공하신 천황의 영위에 의한 가호가 있을 것이다.”라고 명하였다. 백제의 성왕은 왜에게 원병을 요청하는 중요한 이유로 신라와 고구려가 화통한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와 신라의 우호관계는 464년경에 결렬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왕이 왜의 원병을 끌어들이기 위해 고구려를 들먹였던 것에 불과한 것인지, 실제로 이 기간에 고구려와 신라의 내통이 있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고구려와 신라의 밀약이 552년이나 553년 초에 성립되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 『日本書紀』의 기사를 신빙하여 552년 5월 이전에 백제가 양국의 내통을 알고 있었다는 견해, 551년 고구려 혜량법사와 거칠부의 관계, 그리고 혜량법사의 신라투항을 밀약의 계기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 번역주 001)
- 번역주 002)
-
번역주 003)
백제의 성왕은 왜에게 원병을 요청하는 중요한 이유로 신라와 고구려가 화통한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와 신라의 우호관계는 464년경에 결렬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왕이 왜의 원병을 끌어들이기 위해 고구려를 들먹였던 것에 불과한 것인지, 실제로 이 기간에 고구려와 신라의 내통이 있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고구려와 신라의 밀약이 552년이나 553년 초에 성립되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 『日本書紀』의 기사를 신빙하여 552년 5월 이전에 백제가 양국의 내통을 알고 있었다는 견해, 551년 고구려 혜량법사와 거칠부의 관계, 그리고 혜량법사의 신라투항을 밀약의 계기로 보는 견해 등이 있다.
색인어
- 이름
- 목리금돈(木刕今敦), 아사비다(阿斯比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