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충주목
by Silla on 2023-02-05
ᐥ근대 이전에는 지역 차별이 일상이었다. 관내에서 안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현으로 강등시켰다가 얼마 후 복귀시키기를 반복한 이조시대 충주가 그 전형적인 사례다.ᐥ
본래는 임나국(任那國)이었는데 백제의 영토가 되어서는 낭자곡성(狼子谷城)이라 하였다. 낭자성(狼子城)이라고도 하고, 미을성(未乙省)이라고도 한다. 명종(明宗) 5년(1550)에 유신현(維新縣)으로 강등시켰다. 이홍윤(李洪胤)의 난 때문이다. 선조(宣祖)가 즉위하여 정묘년(1567)에 다시 복귀시켰다 무옥(誣獄)으로 하옥되었기 때문이다. 광해주 5년(1613)에 현으로 강등시켰다. 유인발(柳仁發)이 반역하다가 주륙당했기 때문이다. 인조 원년(1623)에 다시 복귀하였다가 6년에 다시 충원현(忠原縣)으로 강등되었다. 안집중(安執中)이 반역으로 주륙당하였기 때문이다. 15년에 다시 복귀하였다가 25년에 현으로 강등되었다 채문형(蔡門亨)이 반역으로 주륙당하였기 때문이다. 효종 3년(1652)에 다시 복귀하였다가 숙종 6년(1680)에 현으로 강등되었다. 아비를 죽인 죄인 때문이다. 15년에 다시 복귀되었다가 영종 5년(1729)에 현으로 강등되었다. 이조겸(李祖謙)이 반역으로 주륙당하였기 때문이다. 14년에 다시 복귀되었다가 15년에 현으로 강등되었다. 지아비를 죽인 죄인 때문이다. 24년에 복귀되었다가 31년에 현으로 강등되었다. 유수원(柳壽垣)이 반역죄로 주륙당하였기 때문이다. 40년에 다시 복귀되었다. 고종(高宗) 32년(1895)에 군으로 고쳤다.

※여기서 충주를 원래 임나국이라 한 것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강수의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충주는 신라시대에 중원경이라 불렸는데, 그 중원경 사람 강수가 무열왕에게 스스로를 소개하기를 자신은 원래 任那加良 사람이라 했다고 한다. 임나 가량은 임나 가라를 말하고 지금의 고령에 있었다. 신라가 가라를 멸망시킨 후 그곳의 주민들을 중원경으로 이주시킨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자가 강수의 말을 중원경은 원래 임가 가라였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가라의 우륵이 신라에 망명했을 때도 진흥왕은 그를 국원에 살도록 했는데, 이 국원도 중원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충주에는 탄금대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우륵이 가야금을 탓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