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읍루와 아이누
by Silla on 2020-02-09
삼국지에는 읍루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삼국지(289) 오환선비동이전 읍루
읍루는 부여에서 동북쪽으로 천여 리 밖에 있는데 큰 바다에 닿아 있으며 남쪽은 북옥저와 접하였고 북쪽은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지역은 산이 많고 험준하다. 사람들의 생김새는 부여 사람과 흡사하지만 언어는 부여나 고려와 같지 않다. 5곡과 소·말·삼베가 산출된다. 사람들은 매우 용감하고 힘이 세다. 대군장은 없고 읍락마다 각각 대인이 있다.
항상 산림 속에서 살며 혈거 생활을 한다. 큰 집는 그 깊이가 9계단이나 되며 계단이 많을수록 좋다고 여긴다. 그 지방의 기후는 추워서 부여보다 혹독하다.
그들은 돼지기르기를 좋아하여 그 고기는 먹고 가죽은 옷을 만들어 입는다. 겨울철에는 돼지 기름을 몸에 바르는데 그 두께를 몇 푼이나 되게 하여 바람과 추위를 막는다. 여름철에는 알몸에다 한 자 정도의 베조각으로 앞뒤를 둘러서 형체만을 가린다. 그들은 불결하여 한가운데에 변소를 만들고 그 주위에 빙 둘러 모여 산다.
활의 길이는 4자인데 그 위력은 쇠뇌와 같다. 화살대로는 호목을 쓰는데 길이는 한 자 여덟 치나 되며 청석으로 화살촉을 만들었으니 옛 숙신씨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활을 잘 쏘아 사람을 쏘면 어김없이 명중시킨다. 화살에는 독약을 바르기 때문에 사람이 맞으면 모두 죽는다. 붉은 옥과 좋은 담비 가죽이 산출되는데 오늘날 이른바 읍루의 담비가 그것이다.
한나라 이래로 부여에 소속되었는데 부여가 세금과 부역을 무겁게 물리자 황초 연간(220-226)에 반란을 일으켰다. 부여에서 여러 번 정벌하였으나 그 무리가 비록 수는 적지만 험한 산 속에 거주하는데다가 이웃 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활과 화살을 두려워하여 끝내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그 나라는 배를 타고 다니면서 노략질을 잘 하므로 이웃 나라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옥저편에도 읍루에 대해 잠깐 이야기하고 있다. '읍루는 배를 타고 다니며 노략질하기를 좋아하므로 북옥저는 그들을 두려워하여 여름철에는 언제나 깊은 산골짜기의 바위굴에서 살면서 수비하고 겨울철에 얼음이 얼어 뱃길이 통하지 않아야 산에서 내려와 촌락에서 산다.')
동이들은 음식을 먹을 적에 대부분 나무로 만든 접시를 사용했으나 오직 읍루만은 그렇지 못했으니 그 법도나 풍속이 가장 기강이 없었다.

삼국지에는 일본 동북 지역의 아이누인으로 추정할 만한 사람의 이야기도 나온다.

삼국지(289) 오환선비동이전 서문
고구려가 배반하므로 또 다시 약간의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하면서 지극히 먼 지방까지 추격하니 오환과 골도를 넘고 옥저를 거쳐 숙신의 왕정을 짓밟고 동쪽으로 큰 바다에까지 이르렀다. 나이 많은 노인이 ‘얼굴이 이상한 사람이 해가 돋는 근처에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하였다.

아이누인은 일본 열도에 먼저 정착하여 살던 사람들인데 키가 작고 이목구비가 뚜렸하며 몸에 털이 많이 나 있어 일본인들은 모인(毛人)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들은 퉁구스인과도 외모가 많이 다르지만 묘하게도 곰을 숭배하는 문화는 일치한다.
옥저편에는 더 이상한 이야기가 나온다.

삼국지(289) 오환선비동이전 옥저
왕기가 별도로 군대를 파견하여 동천왕을 추격하여 동쪽 경계의 끝까지 갔다. 그곳에 사는 노인에게,
“바다의 동쪽에 또 사람이 살고 있는가?”
하고 물었다. 노인은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 사람이 어느날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수십일을 바람부는 대로 표류하여 동쪽으로 흘러가서 한 섬에 도착 하였다. 그 섬 위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말을 서로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의 습속은 해마다 7월달이면 소녀를 구하여 바다에 집어넣는다.”
라 하였다. 이어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에 어떤 나라가 있는데 그 곳에는 순전히 여자만 있고 남자는 없다.”
고 하였다. 또 그는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에 떠올라 있는 베옷 입은 사람을 건졌는데 그 시체는 마치 중국 사람 같고 입은 옷의 두 소매 길이는 3장이었다. 또 난파되어 해안에 밀려온 배 한 척을 잡았는데 그 배에 있는 사람의 목 부분에 또 얼굴이 있었다. 생포하여 함께 말을 해 보았으나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으며 음식을 먹지 않고 죽었다.”
라고 하였다. 그 지역은 모두 옥저의 동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