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5 三國史記 - 탈해
by Silla on 2020-02-09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多婆那國)에서 태어났다. 그 나라는 왜국의 동북쪽 1천 리 되는 곳에 있었다. 처음에 그 나라 왕이 여국왕의 딸을 맞이해 처로 삼았는데 임신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왕은 “사람으로서 알을 낳은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마땅히 이를 버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 여자가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을 싸서 보물과 함께 함에 넣고 바다에 띄워 가는 대로 맡겼다. 처음에 금관국의 해변에 이르렀는데 금관 사람들은 이를 괴이하게 여겨 거두지 않았다. 다시 진한의 아진포구에 이르렀는데, 이때가 시조 혁거세가 즉위한 지 39년 되는 해였다. 이때 해변의 노모가 줄을 가지고 해안으로 당겨 함을 열어 살펴보니 한 어린아이가 있었다. 그 할미가 거두어 길렀는데, 장성하자 신장은 9척이고 풍채가 훤하며 지식이 남보다 뛰어났다.
어떤 이가 말했다.
“이 아이의 성씨를 알 수 없는데 처음에 함이 도착했을 때 까치 한 마리가 날아 울면서 이를 따랐으니 마땅히 작(鵲) 자에서 줄여 석(昔)으로 씨를 삼아야 한다. 그리고 둘러싼 함을 열고 나왔으니 탈해로 이름을 지어야 한다.”
탈해는 처음에 고기잡이로 생업을 삼아 어미를 공양했는데 게으른 기색이 전혀 없었다. 어미가 말했다.
“너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고 골상이 특이하니 배움에 정진해 공명을 세워라.” 이에 오로지 학문에 정진하고 아울러 지리를 알았다. 양산 아래 호공의 집을 바라보고 길지라고 여겨 속임수를 내어 차지하고 이곳에 살았다. 이곳은 뒤에 월성이 되었다. 남해왕 5년에 그가 어질다고 듣고 딸을 그의 처로 삼았다. 7년에는 등용해 대보로 삼고 정사를 맡겼다. 유리가 세상을 떠나려 할 때 말했다.
“선왕께서 유언해 ‘내가 죽은 뒤 아들과 사위를 따지지 말고 나이가 많고 어진 자로 왕위를 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과인이 먼저 즉위했다. 지금은 마땅히 왕위를 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