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들은 ‘유사역사학’에 왜 민감하게 반응했을까읽음

백철 기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지명된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가운데)이 5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동료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지명된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가운데)이 5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동료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5월 30일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역사학자들 사이에 유사역사학 논란이 번지고 있다. 학자들이 ‘유사역사학 의혹’에 왜 이리 민감하게 반응했는지 유사역사학의 계보와 주장을 통해 살펴봤다.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의 공저자인 기경량 가천대 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유사역사학의 뿌리는 1970년대로 올라간다. 1973년 박정희 정권은 ‘올바른 국가관 확립’을 이유로 국사교과서를 국정화했다. 이에 역사학계는 역사교육의 획일성을 이유로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학자들과 다른 방향으로 국정교과서를 비판한 이가 유사역사학의 뿌리로 지목되는 안호상 초대 문교부 장관이다. 안 전 장관이 조직한 ‘국사찾기협의회’는 한자를 만든 것은 한국인이며, 백제가 400년간 중국 중남부를 통치했고, 무령왕릉 유적은 백제사를 축소하기 위한 조작의 산물이라는 등의 주장을 폈다. 1978년 9월에는 자신들의 주장에 맞게 국사교과서의 내용을 고쳐달라는 행정소송도 냈다. 유사역사학이 막 시작되던 1979년에는 이유립이 <환단고기>(학계에서는 위서로 보는 것이 통설)를 출간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도 유사역사학의 활동은 계속됐다. 1981년에는 안 전 장관 등이 참석한 국회 역사토론 공청회가 열렸다. 1980년대 중반 <환단고기>가 인기를 끌자 ‘우리 역사 바로알기’ 등의 명목으로 유사역사학이 널리 퍼졌다. 1987년에는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기성 역사학자와 유사역사학자가 함께하는 상고사 학술회의가 열렸다. 회의장에서 이기동 동국대 한국사 교수는 삼국사기의 내용도 사료 비판을 통해 검증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백제왕의 재위기간이 70~80년씩 되는 부분을 믿기 어렵다는 대목에 이르자 유사역사학에 동조하는 몇몇 청중은 “식민사학자의 주장을 표절했다”, “답변 제대로 못하면 끌어내려라” 등의 고성을 쏟아냈다.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뺏으려는 이도 있었다. 기경량 강사는 이 경험이 “이후 양자 간 대화를 단절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됐다”고 평가했다.

물론 기성학계와 유사학계의 토론이 완전히 중단된 것은 아니다. 현재도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상고사 토론회를 주기적으로 열고 있다.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의 공저자인 안정준 경희대 연구교수는 “토론회에서 학자들이 사이비역사학 측의 주장을 반박해도 저쪽은 목소리만 높일 뿐 제대로 반박할 생각 자체가 없다. 그래도 언론에는 양측이 공방을 벌였다는 정도로 보도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환단고기>와 아마추어 역사연구가들의 주장에 기반한 유사역사학계의 주장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갔다. 학문적인 완성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의 존재는 특이하다. 동북항일연군에 대한 연구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점에서 이 소장은 다른 유사역사학자들과 명백한 차이가 있다.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과 교수도 이 소장의 독립운동사 연구에 대해 “우당 이회영 등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라고 평가할 정도다. 1990년대부터 이 소장이 저술활동을 전개하면서 유사역사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6월 8일 기자와 만난 이 소장은 “제가 도종환 후보자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국회 증언을 할 때 만난 것뿐이고 사적으로는 아는 사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이비역사학’이나 ‘유사역사학’이라는 표현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라며, “주류 사학을 ‘식민사학’이라고 하면 반발하지 않느냐. 저희를 비주류 역사학 중 하나라고 보는 것은 인정하겠지만 사이비라는 말엔 동의할 수 없다. 저희를 환단고기 신봉자 집단처럼 취급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환단고기가 사실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위서인지 아닌지 연구를 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오히려 강연에서 환단고기를 무조건 믿는 사람들에게 ‘그런 접근법은 학문적 접근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며 “역사학 훈련을 받지 않은 이들이 고구려·백제·신라가 중국대륙에 있었다든지, 일부 언어적 유사성을 가지고 중간단계를 건너뛴 채 고구려가 멕시코로 건너갔다든지 하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는 한사군이나 임나일본부에 대한 주류 사학계의 입장에 대해 역사학적 방법론을 가지고 비판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기존 역사학계의 연구가 다 잘못이라는 게 아니다. 한사군 한반도설과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주류 역사학계에 대해서 ‘식민사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사군에 대한 이 소장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의 고대 사료는 일관되게 한사군이 지금의 허베이성 일대(요동)에 있다고 나오며, 북한 평양의 낙랑군 유적은 일본과 중국에서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한사군 요동설’을 소수설이라도 인정해야 한다는 게 이 소장의 말이다.

안정준 교수는 <역사비평>에 게재한 ‘오늘날의 낙랑군 연구’를 통해 유사역사학계의 주장을 반박했다. 안 교수에 따르면 해방 이전부터 현재까지 북한 평양 일대에서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군과 관련한 유적이 지속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과거 일본 학자들이 낙랑군 인구 대부분을 중국인으로 본 것과 달리, 한국 사학계의 통설은 일부 중국인 관리를 제외한 낙랑군의 인구 대부분은 고조선계 주민이다. 식민지 시기 일본의 주장을 현재 주류 역사학계가 비판하고 있는 상황에서 ‘식민사학’이라는 표현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덕일 소장의 주장과 달리 주류 사학자 중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직접 통치했다는 학설을 주장하는 이도 없다. 이 소장이 자신의 저서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임나일본부설 학자로 지목한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도 실제로는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는 학자다.

안 교수는 유사역사학 연구가들의 연구내용보다 기존 학계의 연구성과에 대한 왜곡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한사군이 한반도에 없었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제기된 내용이다. 그런 주장을 담은 연구를 하거나 책을 쓰는 것을 가지고 저희가 ‘사이비’라고 표현하는 게 아니다. 한사군과 임나일본부에 대해 기존 학계에서 여러 가지 문헌과 발굴자료 등을 가지고 수없이 많은 연구를 했고, 식민지 시기 일본의 논리에 대해서도 수차례 비판해 왔다. 유사역사학은 기존 역사학계의 연구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왜곡하고 ‘식민사학’이라고 단정짓고 대중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대사 자료가 부족하다고는 하나,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논리를 전개하는 것은 그들이 비판하는 동북공정 논리와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주류 역사학자로 보기 어려운 박노자 교수에게 유사역사학 문제를 물었다. 러시아에서 한국 고대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박 교수는 역사학계의 민족주의적 성향에 대해서도 일관되게 비판된 입장을 취해 왔다. 박 교수는 “한국의 역사학계가 폐쇄적인 면이 있다는 유사역사학계의 주장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유사역사학의 소설 같은 주장에 대해 토론에 임하지 않는다고 폐쇄적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외국에서도 아마추어 연구가들이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 온 적이 없다’는 주장을 하지만 그런 걸 토론해서 시간낭비하는 학자는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사군에 대한 이덕일 소장의 주장에 대해 “한마디로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한국인 안에 뿌리 깊은 ‘식민지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면 유사역사학은 대중적 지지를 계속해서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사실을 일제 식민지 지배처럼 굴욕으로 볼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한자문화 전파 등 한국사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며 “‘우리가 식민지 지배도 당했지만 고대에는 이렇게 위대했다’고 위로받고 싶은 심리가 있는 한 유사역사학이 말하는 소설을 사실로 믿는 분들은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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