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5 三國史記 - 주몽
by Silla on 2020-02-09
시조 동명성왕은 성이 고씨이고 이름은 주몽이다. 추모 또는 중해라고도 한다. 이에 앞서 부여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자 산천에 제사를 지내어 대를 이을 자식을 찾았다. 그가 탄 말이 곤연에 이르러서 큰 돌을 보고 마주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를 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옮기니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금색 개구리 모양이었다. 와(蛙)자를 와(蝸)자로 쓰기도 한다. 왕이 기뻐서 말하기를 “이는 바로 하늘이 나에게 자식을 준 것이다.”하고 거두어 기르고, 이름을 금와라 하였다. 그가 장성함에 책립하여 태자를 삼았다. 후에 그 재상 아란불이 말하기를 “일전에 하늘이 나에게 내려와 말하기를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게 할 것이다. 너희는 그곳을 피하라. 동해의 물가에 땅이 있는데 이름이 가섭원이라 하고 토양이 기름지고 오곡이 자라기 알맞으니 도읍할 만하다.’고 하였습니다.”라 하였다.
아란불이 마침내 왕에게 권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라 하였다. 옛 도읍지에는 어떤 사람이 있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으나 스스로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고 칭하며 와서 도읍하였다. 해부루가 죽자, 금와가 자리를 계승하였다. 이때에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여자를 만났다. 물으니 말하기를 “저는 하백의 딸이고 이름은 유화입니다. 여러 동생들과 더불어 나가노는데 그 때에 한 남자가 스스로 말하기를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 하고 저를 웅심산 아래로 유인하여 압록강변의 방안에서 사랑을 하고 곧바로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제가 중매도 없이 다른 사람을 따라갔다고 꾸짖어 마침내 벌로 우발수에서 살게 되었습니다.”라 답하였다.
금와가 이를 이상하게 여겨서 방 안에 가두었는데, 햇빛이 비치어 몸을 끌어당겨 햇빛을 피하였으나 햇빛이 또 따라와 비쳤다. 이로 인하여 아이를 임신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5 승쯤 되었다. 왕이 알을 버려 개와 돼지에게 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았다. 또 길 가운데에 버렸으나 소나 말이 피하였다. 나중에는 들판에 버렸더니 새가 날개로 덮어 주었다. 왕이 이를 가르려고 하였으나 깨뜨릴 수가 없어 마침내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그 어머니가 물건으로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남자아이가 껍질을 부수고 나왔는데 골격과 외모가 영특하고 호걸다웠다. 나이 일곱 살에 영리하고 예사롭지 않아서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을 잘 쏘는 것을 주몽이라하는 까닭에 이것으로 이름을 지었다.
금와는 일곱 아들이 있어서 늘 주몽과 함께 놀았으나 그 재주와 능력이 모두 주몽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 맏아들 대소가 왕에게 말하기를 “주몽은 사람이 낳은 자가 아니어서 사람됨이 또한 용감합니다. 만약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려우니 그를 제거할 것을 청하옵니다.”라 하였다.
왕이 듣지 않고 그에게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주몽이 날랜 말을 알아보고 적게 먹여 마르게 하고, 둔한 말은 잘 먹여 살찌게 하였다. 왕이 살찐 말은 자신이 타고, 마른 말을 주몽에게 주었다. 후에 들판에서 사냥을 하는데 주몽이 활을 잘 쏘아 화살을 적게 주었으나, 주몽이 잡은 짐승은 매우 많았다. 왕자와 여러 신하들이 또 그를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주몽의 어머니가 몰래 이를 알아차리고 알려주며 말하기를 “나라 사람들이 너를 해치려 한다. 너의 재주와 지략으로 어디를 간들 안되겠느냐? 지체하여 머물다가 욕을 당하는 것 보다, 멀리 가서 뜻을 이루는 것이 낫겠다.”고 하였다.
주몽이 이에 오이·마리·협보 등 세 사람과 친구가 되어 가다가 엄사수(淹㴲水, 일명 蓋斯水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압록강 동북쪽에 있다)에 이르러 건너려고 하는데 다리가 없었다. 추격해오는 병사들이 닥칠까봐 두려워 물에게 알려 말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하여 달아나는데 추격자들이 좇으니 어찌하면 좋은가?”하였다. 이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주몽이 건널 수 있었다.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지니 추격해오던 기병은 건널 수 없었다.
주몽이 가다가 모둔곡에 이르러 (위서에서 “音述水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세 사람을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은 마의를 입고, 한 사람은 납의를 입고, 한 사람은 수조의를 입고 있었다. 주몽이 “그대들은 누구인가?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마의를 입은 사람이 말하기를 “이름이 재사입니다.”하고, 납의를 입은 사람이 말하기를 “이름이 무골입니다.”하고, 수조의를 입은 사람은 “이름은 묵거입니다.”라 하였으나, 성은 말하지 않았다. 주몽이 재사에게 극씨, 무골에게 중실씨, 묵거에게 소실씨의 성씨를 주고, 무리에 일러 말하기를 “내가 바야흐로 하늘의 크나큰 명령을 받아 나라의 기틀을 열려고 하는데 마침 이 3명의 현명한 사람을 만났으니 어찌 하늘이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마침내 그 능력을 살펴 각기 일을 맡기고 그들과 함께 졸본천에 이르렀다. 위서에서는 “흘승골성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과 물이 험하고 단단한 것을 보고 드디어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어 단지 비류수 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고로 씨를 삼았다.
혹 이르기를 “주몽이 졸본부여에 이르렀는데, 왕이 아들이 없어 주몽을 보고는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고 그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왕이 죽자 주몽이 자리를 계승하였다.”고 하였다. 이때 주몽의 나이가 22세로, 한 효원제 건소 2년, 신라 시조 혁거세 21년 갑신년이었다. 사방에서 듣고 와서 복종하는 자가 많았다. 그 땅이 말갈 부락에 잇닿아 있어 침입하여 훔쳐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그들을 물리치니, 말갈이 두려워 복종하고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왕이 비류수 가운데로 나뭇잎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이 상류에 있는 것을 알고, 사냥하며 찾아가서 비류국에 도착하였다. 그 나라 왕 송양이 나와서 보고 말하기를 “과인이 바다의 깊숙한 곳에 치우쳐 있어서 일찍이 군자를 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서로 만나니 또한 다행이 아닌가? 그러나 그대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고 모처에 와서 도읍하였다.”고 하였다. 송양이 말하기를 “우리는 여러 대에 걸쳐 왕노릇을 하였다. 땅이 작아 두 주인을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하다. 그대는 도읍을 세운 지 날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의 밑에서 일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였다. 왕이 그 말을 분하게 여겨 그와 더불어 말다툼을 하고 또한 서로 활을 쏘아 재주를 겨루었는데, 송양이 대항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