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영산 지역과 일본의 복강 지역이 동일한 고고학적 양상을 띠는 현상을 말한다.
고인돌, 독널무덤, 전방후원분 등에서 이 현상은 뚜렷하다.
고인돌은 한국에서 남방계와 북방계로 나뉘는데, 남방계 고인돌은 한강 이남 전체에 분포하지만 영산 지역에 특히 높은 밀집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에서는 복강 지역에서만 고인돌이 출토되는데 한국의 남방계와 구조가 같다.
독널은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널리 사용되어 왔다. 크기로 볼 때 주로 유아나 성인의 유골을 안치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에서는 승문시대부터 독널 무덤이 있었으나 미생시대에 와서 복강 지역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성인을 주로 나무널에 묻다 미생시대 중기부터 독널로 바꾸었다.
한국에서는 청동기시대에 독널 무덤이 많았지만 3세기부터 영산 지역에서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큰독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지역의 큰독널은 5세기에 복강식 돌방으로 교체되었다.
일본의 고분시대는 고분, 특히 전방후원분이 축조되던 시기를 말한다. 3세기에서 7세기까지다.
미생시대 말기의 고고학적 양상을 보면 복강과 내량 두 지역에서 고대 국가로 발전할 만한 세력이 있었다. 이 중 어느 하나가 대화 왕조를 수립했을 것이다.
전방후원분은 대화 왕조가 열도를 통일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방의 호족들이 통합의 의미로 채택한 무덤이다. 외형을 중시하여 열쇠 구멍 모양의 통일된 모양을 갖추었지만 널방의 구조는 다양했다. 초기에는 구덩식이었는데 4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복강 지역에서 앞트기식이 등장하여 굴식으로 발전하였다. 500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내량 지역에서도 굴식이 등장하였다.
한국에서는 영산 지역에서만 전방후원분이 발견되는데 5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널방의 구조는 4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복강 지역에서 등장한 방식과 같다.
여기서 두 가지 연관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세기에 복강 지역에서 독널이 전방후원분으로 교체될 때 영산 지역에서는 큰독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점과 5세기에 영산 지역에서 전방후원분이 만들어지기 시작할 때 이 지역의 큰독널도 복강식 돌방으로 교체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영산 복강 동조현상은 역사 기록에 그 설명이 없지만 고고학적 양상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 여기서 영산 지역은 영산강 유역과 인근의 연해지를 통틀어 말하는 것이고 복강 지역은 복강현과 좌하현을 합하여 말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