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두환, 취임 후 광주 찾아 “5·18 거론 말라”

2019.01.07 06:00 입력 2019.01.07 06:01 수정

주한 미대사관 ‘3급 비밀전문’ 첫 확인

대통령 취임 3일 만에 첫 지역 방문…“모범돼라” 엄포

호남 민심 달래려 광주~대구고속도 건설 계획 지시도

전씨, 7일 광주서 ‘회고록’ 공판…또 불출석할 듯

1980년 9월 주한 미국대사관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해 발언한 내용을 미 국무부에 보고한 3급 비밀문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1980년 9월 주한 미국대사관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해 발언한 내용을 미 국무부에 보고한 3급 비밀문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전두환 전 대통령(87)이 5·18민주화운동 넉 달 뒤 광주를 처음 방문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5·18을 유혈진압하고 대통령에 오른 직후인 1980년 9월 광주를 찾은 전 전 대통령은 “더 이상 광주사태(5·18)를 거론하지 말고 타 지역보다 모범이 되라”는 훈계를 했다.

6일 경향신문이 주한 미국대사관이 미 국무부에 보낸 1980년 9월5일자 ‘3급 비밀전문’을 확인한 결과 전 전 대통령은 1980년 9월 초 광주를 찾았다. ‘전두환 대통령 광주방문: 뒤섞인 신호’라는 제목의 문건엔 ‘9월5일 방문했다’고 돼 있지만 확인 결과 방문일은 4일 오후였다.

그해 9월1일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한 전 전 대통령은 4일부터 5일까지 전주∼광주∼대구(1박)∼경북을 1박2일 동안 순시했는데 미국 측이 보고하는 과정에서 날짜를 잘못 적은 것으로 보인다.

5·18민주화운동 진압 4개월 뒤 대통령에 오른 전 전 대통령은 광주를 비롯한 호남을 첫 지방 방문 지역으로 삼았다.

미국 문건에는 당시 전남도청에서 영산강 홍수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전 전 대통령이 “광주사태가 국민들의 단합된 노력으로 해결되어 만족스럽다. 이제 더 이상 광주사태를 논의하면 안된다. 이 지역이 명예와 자존심을 되찾고 타 지역보다 더 모범적이 되라”고 말한 것으로 적혀 있다.

5·18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은 외면한 채 책임을 광주와 전남 지역 주민들에게 돌리며 ‘타 지역보다 더 모범이 되라’는 훈계를 한 것이다. 이 같은 발언에 미국은 “전남 지방 명예가 실추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한 전두환의 발언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문건을 보면 광주와 대구를 잇는 광주∼대구고속도로(옛 88올림픽고속도로) 건설도 5·18로 인해 악화된 호남 민심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지리산을 관통하는 고속도로 건설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했는데, 미국은 이를 “전라도 주민들에게 이 도로가 화해의 제스처로 비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고속도로는 1981년 착공돼 1984년 완공됐다.

5·18 연구자인 노영기 조선대 교수는 “전 전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직후 첫 지방 방문지로 광주를 선택한 것은 정치적 부담인 5·18을 서둘러 덮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학살 주범인 그가 진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거론하지 말라’며 정권 초부터 족쇄를 채우려 했다”고 분석했다.

한편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비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공판이 7일 광주지법에서 열린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발간한 <전두환 회고록>에서 조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비난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전 전 대통령 측은 건강상의 이유를 들며 재판 연기를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