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가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주장
by Silla on 2020-02-09
천황가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주장은 다시 그 뿌리에 따라 신라유래설, 임나유래설, 부여유래설 등으로 나뉘어진다.

1890년 성야항(星野恒 ほしの ひさし)은 실증주의적 입장에서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연구한 후 일본 천황가의 선조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신라왕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 신라왕은 먼저 시마네 지방에 정착하여 세력을 키워나갔고 동쪽으로 정벌(神武東征)에 나서 마침내 일본열도를 모두 정복하고 태양신 아마테라스를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후 아마테라스와 신라왕 스사노오 사이의 관계가 나빠져 신라는 당(唐)을 끌어들였고 일본은 백제와 힘을 합쳐 대결하였으나 실패하여 마침내 한반도를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풍신수길의 조선정벌은 이러한 신라의 배신에 대한 당연한 댓가이며 이제부터라도 한반도는 다시 천황가의 영토로 편입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조선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한일동조론(韓日同祖論)의 일환으로 일본천황의 한반도유래설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주장은 설화와 정황 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구당서에는 왜(倭)와 일본이 별도로 기술되어 있는데 이를 근거로 초기에는 일본열도에 왜(倭)와 일본이 별도로 존재하다가 나중에 왜(倭)가 일본으로 통합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과 별도로 존재했다는 그 왜(倭)가 바로 임나와 임나에서 일본열도로 건너간 사람들을 아울러 일컫는 명칭이었다는 것이다. 또 가라의 건국신화인 수로왕 설화와 일본의 건국신화인 니니기 설화가 매우 유사하다거나 언어학 연구에서 고대 일본어와 임나어 그리고 고대 인도의 드라비다어가 동일계라거나 또 경상도 사투리가 소리변화를 거쳐 일본어의 뿌리가 되었다는 주장 등이 일본천황가의 임나유래설을 뒷받침한다.

1948년 도쿄대학의 강상파부(江上波夫 えがみ なみお) 교수는 민족학연구라는 학술지에서 개최한 '일본 문화의 원류와 일본 국가의 형성'이라는 주제의 좌담회에서 일본천황가의 기원이 동북아시아의 기마민족이었다는 ‘기마민족 정복왕조설’을 발표했다. 이후 이 가설을 이어받아 여러 가지 주장들이 나왔는데 1975년 콜럼비아 대학의 레드야드 교수는 서기 346년 선비족의 침략으로 궁지에 몰린 부여족이 일본열도로 건너가 정복왕조를 건설하였다는 주장을 제시했고 서울대학교의 홍원탁 교수는 서기 369년 마한을 완전히 정복한 백제가 일본열도까지 진출하여 정복왕조를 세웠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일본 천황가의 출발이 한반도 이주민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주장 중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의 사서에서 암흑지대로 남아있는 임나와 연결되는 가설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조가 부여에서 나왔다고 공공연히 주장한 백제 왕조나 조상이 흉노에서 나왔다고 금석문에 새긴 신라 김씨왕조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일본 천황가의 뿌리가 한반도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숨길 이유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