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 보고서’ 40년 만에 첫 공개
신군부 “가매장”만 주장…허위 뒷받침
“계엄군, 매장 시체 찾으러 가” 증언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최근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유골들과 5·18과의 연관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광주교도소는 80년 5월 당시 시민들이 계엄군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암매장을 당한 곳이어서다. 광주시는 최근 발견된 유골들과 5·18 행방불명자와의 유전자 대조를 위해 지난 2월부터 오는 29일까지 행불자 가족에 대한 혈액채취 신청을 받고 있다.
5·18단체 등은 이번 유골발견 사건을 80년 5월 광주의 진상을 규명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해 5·18이 40주년을 맞은 상황에서도 북한 개입설이나 시민군의 교도소 습격 같은 왜곡과 폄훼가 여전해서다. 중앙일보는 새로 발굴된 군 내부문건과 관련자 증언 등을 토대로 5·18 당시 암매장의 진실과 신군부의 5·18에 대한 왜곡·폄훼 상황을 재조명했다. 〈편집자 주〉
5·18 당시 신군부가 사망한 시민들을 암매장한 사실을 자인한 당시 정부 문서가 최초로 확인됐다. 80년 5월 이후 암매장 사실을 줄곧 부인해왔던 신군부가 ‘암매장(暗埋葬)’이라는 단어를 쓴 공식 문서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18 당시 암매장은 지난해 12월 19일 옛 광주교도소에서 신원미상의 유골 261구가 발견된 후 40주년 기념주간의 화두로 등장했다.
13일 중앙일보가 확보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의 ‘광주사태 진상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신군부는 계엄군들이 사망한 시민들을 상당수 암매장했다. 해당 문건에는 당시 신군부가 5·18로 인한 사망자를 ‘민간인·군인·경찰 포함 총 184명’으로 집계하며 ‘암매장된 사망자의 발견 및 중상자의 사망으로 사망자 수는 다소 증가할 것’이라고 기록돼 있다.
5·18 학살의 최고 책임자로 꼽히는 전두환(89)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암매장은 유언비어일 뿐이고, 실제로 땅을 파헤쳐보기도 했지만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전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정주교 변호사도 최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계엄군이 부득이하게 가매장할 수밖에 없었던 시신을 가지고 암매장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국보위 조사단의 진상조사를 담은 문서에서는 ‘암매장’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기록돼 있다. 국보위는 5·18 직후인 80년 6월 5일부터 11일까지 광주·전남에 대한 진상조사를 토대로 해당 기록을 남겼다. 암매장 기록을 남긴 시기는 5·18 진상조사 및 수색작업이 끝난 뒤인 80년 6월 12일에서 19일 사이로 추정된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군 기록상) 신군부가 ‘암매장’이라 기록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며, 매장이라고 적더라도 ‘가매장’이라는 표현을 써왔다”며 “신군부가 부정해온 암매장에 대한 기록이 그들이 남긴 첫 정부 차원 보고서에 뚜렷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5·18 이후 보안대 자료에는 ‘옛 광주교도소에서 시민 28명이 숨졌다’고 기록돼 있으나 실제로는 11구의 시신만 수습됐다. 5·18단체는 나머지 17명 이상의 시신이 옛 교도소 주변에 버려졌거나 암매장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5·18 이후 행방불명 신고는 총 448건이며, 이 중 84명이 행방불명 관련자로 인정됐다.
그는 또 “(80년 6월) 시체를 매장한 인원들을 다시 광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5·18때 공수대원들이) 부상자 2명을 사살하고 묻어준 일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증언도 했다.
이에 대해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5·18 당시 20사단과 11공수가 가매장지 수색에 나선 시기가 80년 6월 초로 동일하다”며 “가매장이라고 표현했지만, 광주에서 이뤄진 ‘암매장 수색’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40주년 5·18 기념식이 다가오면서 해당 문건·증언과 옛 광주교도소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유골들과의 연관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계엄군의 암매장을 뒷받침하는 문건과 증언이 속속 확인되는 가운데 교도소 내 기록에 남지 않은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돼서다.
광주시는 해당 유골과 5·18 행불자와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 행불자 가족의 혈액채취 신청을 지난 2월 3일부터 추가로 받고 있다. 오는 29일까지 진행되는 혈액채취에는 현재까지 17가족 18명이 신청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최종권·진창일 기자, 김민상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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