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해먹기 힘든 나라

조호연|사회에디터

18대 국회가 열리면 열 일 제치고 만들어야 할 법들이 있다. ‘청와대법’이 맨 먼저다. 땅 투기한 고위관리도 국정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불법 농지 보유 사실이 드러나도 당사자가 그것을 인정만 하면 그냥 넘어가도 된다는 내용도 꼭 담아야 한다. 온당한 국민 비난을 ‘합법적으로’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일반국민법’이다. 사소한 불법행위도 반드시 엄벌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법과 원칙이 바로 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대기업법’도 있다. 대기업을 최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뼈대다. 일명 ‘경제살리기법’이다. 이 법은 시행령이 필요하다. 대기업 총수는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징역 대신 집행유예나 벌금형, 사회봉사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의 시행령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다른 법률을 적용받는다. 대기업과는 지원 순위와 규모에 차별을 둬야 한다는 ‘일반기업법’이다. 노동자들이 마음대로 파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파업금지법’의 제정 필요성도 제기된다. ‘집시법’은 반정부 시위자를 필벌하는 쪽으로 개정해야 한다. 개정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정부가 이미 이런 방향으로 법 집행을 하고 있어서다.

민심을 ‘불만세력’ 우기는 정부

이뿐 아니다. 수도권 지역의 규제 완화를 합법화하기 위한 ‘수도권법’, 지방은 홀대해도 된다는 ‘지방법’도 필요하다. 문제는 법 제정 필요성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데 있다. 어쩌면 18대 국회 첫 번째 정기 회기 내에 다 처리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최근에 또 제정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법’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한 수입을 보장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따지는 것은 근거없는 정치적 선동이라는 규정도 들어 있다. 특히 인터넷 괴담을 믿고 촛불시위에 참석하면 처벌 대상이다. 그런데 한·미 쇠고기 협상 파동은 여러 갈래여서 이 법 하나만으론 부족해 보인다. 따져보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위한 한·미 협상에서 미국은 한국을 낚았다. 한국이 자청해서 낚인 흔적이 역력하다. 한국인과 미국인이 먹는 쇠고기가 다르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예컨대 미국인은 대부분 태어난 지 20개월이 안 된 소만 먹는다. 그러나 한국에는 30개월 이상의 소도 수출된다. 미국에서 먹지 않는 부위도 한국에는 수출된다.

이런 불공평한 국제협상은 매우 드물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에 대한 국민적 의문을 원천봉쇄하려면 ‘한·미 FTA 비준을 위한 협상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미국산 소의 동물성 사료도 법이 필요한 부분이다. 소의 경우 뇌와 척수 등이 동물성 사료의 재료다. 그런데 소의 뇌와 척수는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이다. 광우병 감염 우려가 있는 소로 만든 사료를 돼지나 닭에게 먹이고, 그 돼지와 닭으로 만든 사료를 소에게 먹이면 광우병이 발병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30개월 미만 소라도 도축검사에 불합격한 소의 몸체는 돼지 사료용 등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은 연방관보에서 이를 동물성 사료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렇게 부실 협상을 하고 해명도 엉터리로 한다고 따져 묻는다면 고위관리들은 국정에 전념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를 막을 또다른 법이 요구된다.

국민들은 18대 국회를 주목해야 한다. 수많은 법들이 탄생할 텐데, 알아두지 않으면 낭패당할 수 있다. 국민 해먹기 힘든 나라라고 한탄만 할 때가 아닌 것이다. 한편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해먹기 힘든 나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 정부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국민 반발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대통령 해먹기 쉬운 나라법’ 제정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대통령 해먹기 쉬운 법’ 원하나

그러나 이들 법은 국민 공감을 받아야 제정될 수 있다. 국민들이 반대해 법 제정이 안 된다면 정부의 지난 두 달여간 국정 행위는 불법이다. 그렇다고 무를 수는 없으니 사과해야 한다. 다른 방법도 있다. 촛불집회에 등장한 ‘헌법 1조 소녀’의 주장에 귀기울이는 것이다. 여고 2년생인 이 소녀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헌법 1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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