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항공병과사에 담긴 ‘발칸포 운용’…5·18단체 “헬기사격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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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9.09. 오전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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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포 탑재 헬기 2대 광주 급파
같은날 육군본부 사격명령 방증
당시 탄약관리병 “250여발 사용”

송진원 당시 1항공여단장은 부인
전두환 재판 때도 수차례 거짓말
5·18단체, 위증죄로 검찰에 고발
<육군항공학교 50년사>에 나온 코브라 헬기(AH-1S)의 발칸포 사격 모습. <육군항공학교 50년사> 갈무리


육군 항공감실이 1982년 <80 항공병과사>를 발간하며 적은 ‘코브라 헬기 발칸포 운용’이라는 문구를 계엄군의 헬기 사격 근거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5·18단체는 1995년 검찰 조사에서 헬기 사격을 부인한 송진원 당시 1항공여단장(준장)을 위증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8일 <한겨레>가 입수한 <80 항공병과사> ‘사태일지’ 부문을 보면 1980년 5월21일 ‘광주에 AH-1 5대를 투입할 준비지시 하달’, 5월22일 ‘AH-1 2대를 광주로 급파(103대장 지휘)―발칸포 운용’이라고 나와 있다. 5·18 연구자들은 이 대목을 1980년 5월21일 오전, 광주 아세아자동차공장에서 시민군이 신형 에이피시(APC) 장갑차 4대를 탈취하자 계엄사령부가 대전차용으로 미국에서 도입한 코브라 헬기 6대 중 2대를 투입한 것을 방증하는 자료로 보고 있다. 특히 ‘발칸포 운용’이라는 문구는 발칸포 탄환을 실은 코브라 헬기가 광주에 투입됐고 같은 날 육군본부의 사격 명령이 있었던 점을 나타낸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육군 31항공단 탄약관리병(하사)이었던 최종호씨는 “코브라 헬기에 1500발을 실어 보냈는데 복귀했을 때 250여발이 줄어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사태일지엔 ‘광주지역 출동 항공지휘관의 애로사항 보고내용’(5월24일)으로 ‘광주 외곽으로 빠지는 에이피시 (장갑차) 사격/ 에이피시는 손상치 말고 불가동시키자 등’이라고 쓰여 있다. 신형 장갑차를 손상시키지 말고 사격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이행하기 어렵다는 내용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80 항공병과사> 사태일지 부문에 나온 1980년 5월22일 코브라 헬기 발칸포 운용 문구.


하지만 송 단장은 1995년 검찰 조사에서 “‘발칸포 운용’은 코브라 헬기에 발칸포 탄만 장착했다는 의미”라며 헬기 사격을 부인한 바 있다. 송 단장은 지난해 11월11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전두환 사자명예훼손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나서 “나와 방영제 31항공단장(대령) 등은 5·18 당시 광주에 방문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80 항공병과사>에는 1980년 5월26일 오후 2시45분 1항공여단장 외 6명이 헬기를 타고 광주에 도착해 27일 오후 5시45분 부대로 복귀했다고 나와 있다. 방영제 대령은 1995년 검찰 조사 때 “1980년 5월26일 광주로 갔다”고 진술했다. 송 단장이 그동안 수차례 거짓말을 했다는 점에서 5·18단체는 1995년 진술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5·18기념재단, 조영대 신부(고 조비오 신부 조카) 등은 송 단장을 위증죄로 7일 검찰에 고발했다. 송 단장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참전, 현 항공작전사령부의 전신인 1항공여단 초대 단장, 항공감 두차례 역임 등 육군 항공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5·18단체 법률대리인을 맡은 김정호 변호사는 “이번 고발은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군인들에게 진실을 말해줄 것을 당부하는 의미”라고 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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