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특별한 인연과 우호 강조한 '지한파'
'외교 문외한' 스가총리 옆 한국채널 가능성
"극적 개선 어려워도 최악 피하는 데 도움"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의 관광지 기슈도쇼구(紀州東照宮) 경내에는 임진왜란 당시 침략군으로 조선에 왔다가 조선 편으로 돌아선 왜군 장수 사야카(沙也可·조선 이름 김충선)를 기리는 비석이 있다. 사야카는 1592년 4월 13일,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의 명령으로 군사 3000명을 이끌고 부산에 상륙했지만 "명분 없는 전쟁"임을 깨닫고 조선에 투항해 여생을 김충선으로 살았다.
2009년 세워진 이 비석에는 '한·일의 진정한 우정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글이 새겨져 있다. 양국의 평화를 기원했던 사야카를 상징으로 삼아 한·일간의 진정한 우호를 도모하자는 내용이다. 이 비문을 쓴 사람은 이 지역 12선 중의원 의원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81) 자민당 간사장이다.
특히 니카이 간사장은 30년 넘게 한국의 정치·경제인들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자민당의 대표적 '한국통'으로 꼽힌다. 그의 역할이 활발해지면 냉각 일로였던 한·일관계에 새로운 물꼬가 트일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경제산업상ㆍ운수상 등을 지냈으며 2016년 8월 자민당 내 인사·공천·자금관리 등을 총괄하는 '넘버2' 간사장에 취임했다. 이번 달 8일로 간사장 재임 일수가 1498일을 넘어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가 갖고 있던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그가 처음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다. 와카야마현 의원으로 지역 고등학교 필드하키팀을 이끌고 한국을 찾아 친선경기를 했다. 당시 학생들이 말이 통하지 않음에도 금세 친구가 되는 것을 보면서 민간 교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일본 여행업체가 모인 전국여행업협회의 비상근 회장을 맡아 한국·중국과의 민간 교류를 이끌었다. 2015년에는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1400명의 방문단을 이끌고 한국을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에는 특사로 방한했고, 2018년에는 자신의 파벌 의원들을 모두 데리고 한국에 와 연수를 했다.
니카이 간사장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강동석 전 건교부 장관, 허남식 전 부산시장 등과의 인연을 소개한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도 여러 차례 개별적인 만남을 가진 사이로, 2017년 방한 때는 이 대표에게 매실주를 선물한 것이 화제가 됐다.
반면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관계가 최악이었던 지난해 9월에는 한 TV 방송에서 "원만한 외교가 전개되도록 한국도 노력할 필요가 있지만, 일본이 손을 내밀어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스가 총리와 니카이 간사장 모두 관광·국토교통 분야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어, 내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설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이어 "극적인 관계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니카이 간사장 같은 지한파가 실권을 쥠으로써 한·일 관계가 최악의 사태로 가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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