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일의 배경
by Silla on 2020-02-09
한국통일의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먼저 백제에 대한 신라의 원한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부터 살펴보자.
백제 의자왕은 군사를 보내 대야성을 빼앗게 하였는데 이때 김춘추의 딸과 사위가 살해되었다. 이에 분노한 김춘추는 보복을 위해 고려에 군사적 지원을 얻으러 갔으나 거절당한다. 다시 일본에도 가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당나라로 가서 마침내 동맹을 성사시키고 백제를 멸망시키게 된다.
그런데 김추추와 같은 원한은 삼국 사이에 항상 있어왔다. 고국원왕의 전사, 개로왕의 살해 그리고 성왕의 전사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통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유독 대야성이 함락되는 과정에서 생긴 신라의 원한이 한국통일로 이어지게 된 것은, 마침 이때의 원한이 통일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춘추의 딸이 살해된 사건은 한국통일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지 못한다.

한국통일의 원인을 백제와 고려의 실정에서 찾는 경우도 많다.
백제의 의자왕은 주지육림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며 또 신라와 자주 전쟁을 일으켜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였다는 것이다. 고려의 경우는 연개소문이 왕을 죽이고 횡포를 일삼다 중국과 불필요한 전쟁을 벌여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으며 그의 권력을 세습한 아들들 또한 서로 갈라져 싸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백제와 고려가 망했기 때문에 부풀려진 측면이 강하다. 체제가 교체되면 새로운 체제는 구체제의 모순을 밟고 올라서서 자신을 정당화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 과정에서 구체제의 모순을 증폭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사만 돌이켜 보아도 신라가 망하자 그 무능함과 폐쇄성이 강조되었고 왕고가 망하자 역시 그 무능함과 도덕적 타락이 강조되었다. 이조 또한 일제의 식민사관에 의해 심하게 폄하되었고 일제 또한 오늘날 우리가 국사책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한민족을 억압하고 수탈한 점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한국통일의 원인이라고 하는 의자왕과 연개소문의 실정 정도는 사서를 읽어보면 그 이전에도 많았다.
유독 의자왕과 연개소문의 실정만이 한국통일로 이어지게 된 것은 마침 이때의 실정이 통일이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자왕과 연개소문의 실정도 한국통일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지 못한다.

그러면 원한이나 실정을 통일로 이어지게 한 환경이란 어떤 것일까?
예년과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면 예년과 달라진 새로운 조건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수 백 년 간 지속되었던 두 왕조가 불과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같이 망했다면 각 개별 국가의 내부 원인이 우연히 일치했다고 보기보다는 외부의 공통된 원인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통일 직전에 외부에 형성된 새로운 환경은 바로 오랫동안 분열되어 있던 중국대륙이 통일된 것이다.
동북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반도 정세는 항상 중국대륙의 정세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왕조교체는 항상 중국대륙에서 제국이 교체될 때만 일어났다. 신라-왕고의 왕조교체는 중국대륙에서 당(唐)-송(宋)이 교체되는 시기에 일어났고 왕고-이조의 왕조교체도 중국 대륙에서 원(元)-명(明)이 교체되는 시기에 일어났다. 또 중국대륙이 분열되어 있을 때에는 한반도의 왕국이 상대적으로 강성해졌고 중국대륙이 통일되어 있을 때에는 한반도의 왕국이 위축되었다. 이것은 한(漢)이 중국을 통일한 뒤 조선을 멸망시키고 한4군을 설치하였다거나, 흉노족의 침략으로 진(晉)이 망해갈 무렵에 고려가 낙랑과 대방을 병합하고 영토를 넓혔다거나 하는 예로 설명이 된다. 광개토왕이 동북아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 대륙이 5호16국으로 갈라져 있었던 상황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신라의 통일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중국대륙은 진(晉)이 316년에 망한 이후 오랫동안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 기간에 동북아시아는 비교적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은 채 신라, 백제, 고려, 왜(倭) 등이 서로 경쟁과 협력을 반복하며 존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589년 수(隋)가 중국을 통일하면서부터 동북아의 세력판도가 재편되게 되었다. 중국대륙의 통일제국은 중국대륙을 갈라서 통치하던 이전의 제국들과는 달리 한반도를 포함한 주변지역에 치명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수나라는 바로 당(唐)으로 교체되었는데, 당나라는 신라와 손을 잡고 660년에 백제를 무너뜨리고 663년에 백촌강 전투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왜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시켰으며 668년에는 고려마저 멸망시켰다. 그러나 신라마저 지배하려던 계획은 실패하고 대동강 이남의 한반도가 신라로 통합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이후 한반도의 주민들은 신라라는 단일정치단위에 담기게 되면서 하나의 민족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한반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일본열도는 한반도와의 연결이 끊어진 채 독자적인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 왜(倭)는 국호를 왜(倭)에서 일본(日本)으로 바꾸고 군주의 호칭도 왕(王)에서 천황(天皇)으로 바꾸었으며 일본서기를 편찬하여 과거 왕국으로서의 왜(倭)의 역사를 제국으로서의 일본역사로 부풀렸다. 이로써 우리가 단순히 한국통일로만 알고 있는 사건이 사실은 중국대륙에서부터 시작되어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까지 퍼져나간 거대한 변화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한국통일의 근본적인 배경은 중국대륙에서 통일제국이 들어선 것이고 신라가 백제에 원한을 품었다거나 백제나 고려가 실정을 했다거나 하는 일은 부차적인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한국통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재미있게 표현하자면 3단계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관점은 TV 연속극을 보고 형성된 한국통일관이다. 이 관점은 신라와 백제의 지배세력 사이에 있었던 원한과 복수의 극적인 작용의 결과로 한국통일이 이루어졌다고 해석한다. 매우 미시적이고 감성적인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관점은 국사책을 공부하고 형성된 한국통일관이다. 이 관점은 백제와 고려가 내정과 외교에 실패하고 분열해서 한국통일이 이루어졌다고 해석한다. 이 관점은 또한 삼국사기의 관점이기도 하다.
세 번째 관점은 세계사를 공부하고 형성된 한국통일관이다. 이 관점은 동북아시아의 국제적인 역학관계가 변한 것이 한국통일의 배경이 되었다고 해석한다. 가장 거시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