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한국통일의 의미
by Silla on 2022-04-23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후 한반도에는 대한민국과 김씨조선 두 나라가 각각 남쪽과 북쪽에 건국되었다. 그리고 서로 간에 정통성 확보를 위한 역사정치가 치열하게 전개되었는데, 특히 고대사에 있어서 신라와 고려는 그 인상이 각각 한국과 김조로 대중들에게 비춰지게 되면서 한국은 신라정통을 주장하고 김조는 고려정통을 주장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신라의 한국통일을 ‘화랑정신으로 굳게 뭉친 신라가 온갖 고난을 헤치고 삼국으로 갈라져 있던 민족을 하나로 통일한 위대한 역사‘로 미화하였다. 그리고 한국통일을 남북통일에 투영하여 현대판 신라가 결국 현대판 고려를 흡수하게 될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려 하였다. 그러나 한국이 국가의 주요 이념으로 내세웠던 민족주의는 도리어 한국통일에까지 소급하여 적용되면서 당나라의 힘을 빌린 신라의 행위가 반민족적이라는 부정적인 인상이 생겨나는 결과를 낳았다.

김조의 역사정치는 고대 삼국의 대립을 현재 남북의 대립에 투영하는 것은 한국과 똑같지만 그 방향은 전혀 달라서 민족내분에 끼어든 미국과 미국을 끌어들인 한국을 비난하는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
김조의 역사정치는 매우 손쉬운 면이 있는데 그것은 대중들의 심리를 자연스레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한국사를 살펴보면 한일합방, 임진왜란, 병자호란, 몽골의 침략 등 온통 수난으로 가득하다. 
당연히 사람들은 속상해 한다.
"왜 우리는 맨날 침략만 당할까?"
그런데 한국사에도 고려가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중국의 강대한 제국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을 거듭 물리친 부분이 나온다.
"오 대단한데. 고려가 통일을 했다면 우리 민족이 이렇게 침략만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필 신라가 해가지고..."
그리고 Korea, 왕씨고려, 삼국사기, 단군신화 등이 신라, 백제 그리고 고려가 한 민족이었다는 인상을 풍긴다.
"게다가 신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민족을 배신했잖아?"
그리고 이제 고대에 있었던 삼국의 대립이 현재의 남북 대립에 투영된다.
"그러고 보니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려를 망하게 한 신라는 미군을 끌어들여 민족통일전쟁을 방해한 한국과 똑같네!"
그리고 마지막에 어떤 말을 하게 될 것인지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고 위의 흐름에 내포된 오류만 지적하기로 한다.
가장 큰 오류는 역시 신라, 백제 그리고 고려를 하나의 민족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이점은 '우리는 처음부터 한 민족이었나?'에서 자세히 설명해 놓았기 때문에 여기서 반복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 번째 오류는 고려가 통일했다면 강한 민족이 되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고려가 통일을 했으면 강대국이 되었을지 아니면 거란족이나 만주족처럼 중국에 흡수되어 정체성이 사라졌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통일을 두고 벌어진 남북의 역사정치에서 김조가 승리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한국인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고려/신라 그리고 김조/한국에 대한 정서를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정치적인 덧칠을 모두 뺀다면 한국통일은 한민족사의 출발점이었다는 큰 의미가 있다.
삼한시대의 신라, 백제 그리고 고려는 각기 전성기가 있었지만 한국통일 이전까지는 어느 나라도 다른 나라들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세 나라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라말기의 후삼국은 불과 35여 년 만에 재통합되었는데 이것은 한국통일 이후 200여 년 간에 걸친 동질화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동질화의 결과로 삼한은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생겨난 것이다. 통합의 여진은 500여 년이나 지난 왕씨고려의 말기까지도 이어져 신라, 백제 그리고 고려의 부흥운동이 모두 일어났다. 그러나 이 부흥운동은 이내 진압되었고 그 후로는 고대국가의 부흥운동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통합에 대한 여진이 오랜 기간 지속된 것은 통합 이전의 삼국이 이질감이 강했기 때문이고 시간이 갈수록 여진의 진폭이 줄어든 것은 동질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한국통일은 그 동질화의 첫 출발점이었다.

인류사회의 구조를 민족 간의 대립과 투쟁의 구조로 보는 민족주의는 신분제가 철폐된 근대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존재하던 그 이전에는 계급대립의 구조였다. 그렇다면 한국통일에 대한 해석도 계급대립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한국통일에 이르는 과정은 한반도의 영토와 백성을 놓고 벌어진 여러 통치 집단 사이의 거대한 먹이다툼이었다. 그러나 한국통일의 결과는 착취계급의 두 무리가 몰락함으로써 백성들의 부담이 줄어들었고 또 통치 집단 사이의 잦은 다툼이 사라짐으로써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한국통일은 한반도 역사발전의 커다란 진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