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솔까이야기 > 1597 원숭이 부대
 
원숭이에게 가능한 일
 A monkey trained to pick coconuts    Ape With AK-47    Cowboy Monkey Rodeo    Monkey riding a horse  
 
 BC 0202-0220 汉代猿骑图像
한나라의 그림에는 원숭이가 말이나 낙타를 타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오늘날에도 원숭이가 말을 타는 서커스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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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7? 업중기(鄴中記)
衣伎兒作獼猴之形走馬上或在脅或在馬頭或在馬尾馬走如故名為猿騎 광대의 옷을 입고 원숭이 모양을 한 뒤 말을 타고 달리는데, 때로는 옆구리에 있다가 때로는 말머리에 있다가 때로는 말꼬리에 있었다. 그래도 말은 예전처럼 달렸는데, 이런 놀이를 원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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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3-1566 척계광(戚繼光)
척계광은 1553년에서 1566년까지 강남에서 왜구를 토벌하는 일을 맡았다. 그 이후 그는 북쪽 변방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복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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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3-1566 척계광이 주둔했던 석축산
척계광의 부대는 이곳에 주둔하며 왜구를 토벌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사는 원숭이들이 총쏘는 것을 보고 따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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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3-1566 만력야획편(1618)
戚少保(繼光)初以征倭至江南,命士卒於山中習放鳥銃火鼠之屬,適林莽中有群猴,見而竊效之。 久之,猴之技勝於人矣。 一日倭大至,而戚兵少,度與戰必不利,乃匿勇壯於隱處,而以輕銳挑之佯北,先擲諸火器於山坳內,倭之追得尋至,猴見髡跣橫行,不類所習睹,疑爲異獸將噬之,爭燃火發炮,倭大駭狂奔,死者枕籍。 伏兵四起,遂獲全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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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3-1566 만력야획편(1618)
척계광이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강남에 와서 병졸들로 하여금 산 속에서 조총을 익히게 했는데 숲 속에 있던 원숭이들이 그것을 보고 흉내를 냈다. 오래 지나자 원숭이들의 기술이 사람보다 나아졌다. 하루는 왜구가 많이 쳐들어왔는데 척계광의 군대는 수가 적어 맞서 싸우기가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용맹한 병사들을 숨겨두고 날랜 병사들로 하여금 적을 자극하게 한 뒤 거짓으로 달아나게 하였다. 화기는 모두 산 속 움푹한 곳에 미리 버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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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3-1566 만력야획편(1618)
왜구가 뒤쫓아 가자 원숭이들이 맨발에 머리를 밀은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평소에 눈에 익었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다른 종족이 쳐들어와 공격하는 것으로 의심하여 앞다투어 화기에 불을 붙여 쏘았다. 왜구가 크게 놀라 이리저리 날뛰었고 죽은 자는 바닥에 쓰러졌다. 이때 숨어있던 병사들이 사방에서 뛰쳐나와 마침내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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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3-1566 오잡조(五雜俎 1644 이전)
福淸石竺山多猴,千百爲群。 戚少保繼光剿倭時,屯兵於此,每敎軍士放火器,狙窺而習之,乃命軍士捕數百,善養之,仍令習火器以爲常。 比賊至,伏兵山谷中,而令群狙闖其營,賊不虞也。 少頃,火器俱發,霹靂震地,賊大驚駭,伏發殲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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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3-1566 오잡조(五雜俎 1644 이전)
복청 석축산에는 원숭이가 많아 천 백 마리가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척계광이 왜구를 토벌할 때 병사들을 이곳에 주둔시켰는데, 군사들에게 화기를 가르칠 때마다 원숭이들이 그것을 보고 따라했다. 이에 군사들로 하여금 수 백 마리를 잡아 기르게 하고 화기에 숙달되도록 훈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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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3-1566 오잡조(五雜俎 1644 이전)
적이 쳐들어 왔을 때 병사들을 골짜기에 잠복시켜 두고 원숭이 무리로 하여금 적의 진영을 엿보게 하였는데 적들은 원숭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잠시 후 한꺼번에 화기를 쏘자 천둥같은 소리에 땅이 울리고 적들은 크게 놀랐다. 이때 잠복하고 있던 군사들이 적을 모두 섬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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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3-1566 Matchlock Musket
당시의 총은 끈에 불을 붙여 가지고 있다가 이 불로 화약을 터뜨려 총알이 나가게 하는 방식이다. 한 발의 총을 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복잡해서 원숭이를 훈련시켜 쏘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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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7 소사 전투가 벌어졌던 평택 소사
왜군은 직산에서 북진하고 있었고 명군은 안양천 북쪽 소사에서 이들을 기다린 것으로 추정된다. 명군은 농원(弄猿) 수백 기를 소사교(素沙橋) 아래에 매복시켜 놓았다가 왜군이 백여 보 앞에 이르자 먼저 풀어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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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7 소사 전투에서 승리한 양호(楊鎬)
그는 1597년 소사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이듬해에 울산 도산성 전투에서 패했는데 승리했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가 파직되었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양호거사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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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8 원숭이를 데리고 남원에 온 유정(劉綎)
그는 1592년과 1598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으로 와 전쟁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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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8-07-21 오한문집(聱漢文集 손기양)
家奴自劉綎陣所還言軍容壯嚴亦有楚猿及駱駞猿能焚敵陣駞能載運也 가노가 유정(劉綎)의 진영으로부터 돌아왔다. 군대의 위세가 장엄하고 초원과 낙타가 있었는데 원숭이는 적진을 불사를 수 있었고 낙타는 짐을 싣고 운반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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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8-08-27 난중잡록(亂中雜錄 조경남)
提督劉綎親率數萬兵自全州到任實軍卒先到南原...中有牛之介三名長闊十倍於人海鬼四名肥黑眼赤髮如細毛楚猿四首騎馬制引如人軆類大猫駱駝生獐三牲雜物無不持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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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8-08-27 난중잡록(亂中雜錄 조경남)
제독 유정이 친히 수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전주로부터 임실에 도착하였다. 군졸이 먼저 남원에 이르렀다. ... 그 가운에 우지개 3명이 있었는데 키와 몸뚱이가 보통 사람의 10배요, 해귀 4명이 있었는데 살찌고 검고 눈이 붉고 머리카락이 솜털 같았고, 초원 4마리가 있었는데 말을 타고 부리는 것이 사람과 같고 몸뚱이가 큰 고양이를 닮았다. 낙타ㆍ생노루ㆍ3희생과 잡물 등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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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1 택리지(擇里志) - 1826 이전 무명자집(無名子集)
又曰丁酉倭破楊元於南原從全州北上公州時邢玠以捴督駐遼東經理楊鎬率十萬兵次平壤方夕食於練光亭飛馬報至鎬卽上馬自平壤至漢陽七百里而一日二夜馳到使㺚將解生攞貴賽貴楊登山等四人率鐵騎四千挾弄猿數百騎狙伏於素沙橋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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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1 택리지(擇里志) - 1826 이전 무명자집(無名子集)
1597년에 왜적이 양원을 남원에서 격파하고 전주를 거쳐 공주로 북상할 때, 경리(經理) 양호(楊鎬)가 10만의 병사를 이끌고 평양에 당도하였다. 연광정에서 한창 저녁밥을 먹는 도중에 비마의 급보가 이르자, 양호는 즉시 말에 올라 평양으로부터 한양에 이르는 칠백 리 길을 하루 낮 이틀 밤에 달려가, 달단의 장수 해생ㆍ나귀ㆍ새귀ㆍ양등산 등 네 명으로 하여금 철기 4천과 농원(弄猿) 수백 기를 거느리고 소사교(素沙橋) 아래에 매복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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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51 택리지(擇里志) - 1826 이전 무명자집(無名子集)
望見倭自稷山如林而北未至百餘步先縱弄猿猿騎馬執鞭鞭馬突陣倭國本無猿始見猿似人非人咸疑怪駐陣眄望旣逼猿卽下馬入陣中倭欲擒擊猿善躱避貫穿一陣陣亂解生等急縱鐵騎蹂之倭不及施一銃矢而大崩潰南走伏尸蔽野
http://qindex.info/i.php?f=1239#3618
 
 1751 택리지(擇里志) - 1826 이전 무명자집(無名子集)
왜적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백여 보 앞에 이르자 먼저 농원(弄猿)을 풀어놓으니 원숭이들은 말에 올라 채찍을 잡고 말에 채찍질을 가하여 적진으로 돌진하였다. 왜국에는 본래 원숭이가 없어 사람 같기도 하고 사람도 아닌 원숭이를 처음 보고는 모두 괴이한 마음이 들어 진군을 멈추고 멀거니 바라보았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원숭이가 즉시 말에서 내려 진중으로 돌입하니 왜적들이 잡아 죽이려 하였으나 원숭이가 몸을 잘 피하여 온 진중을 꿰뚫고 지나가서 진영이 흐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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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63 이전 성호사설(星湖僿說)
劉綎之東也有兩獮猴帶弓矢騎馬前導能入賊中觧馬韁 유정이 동정할 때 두 마리 원숭이가 궁시(弓矢)를 허리에 차고 앞장서서 말을 몰아 적진 속으로 들어가 적의 말고삐를 풀었다는 것이다.
http://qindex.info/i.php?f=1239#3604
 
 1796 양경리호치제문
發騎三千 삼천 기병 풀어다가 迎敵素沙 소사에서 적 맞으니 塘置一旗 깃대 하나 둑에 꽂고 黙察偃竪 묵묵히 적의 동정 살피어서 千里決勝 천리 밖의 승부 결단 如掌其覩 제 손바닥 금을 보듯 妖氛南天 적이 모인 남쪽 땅에 蝴蝶爲陣 나비 모양 진 만들고 輝鏡朝旭 아침 해가 떠오르며 거울처럼 빛나자 舞劍以進 칼 휘두르고 나아갔네
http://qindex.info/i.php?f=1239#3632
 
 1796 양경리호치제문
于時天兵 이에 천자의 군사 浴甲橋下 다리 밑서 철갑을 걸치고 弄猿三百 재빠른 삼백 기병 一時鞭馬 한꺼번에 말 채찍질 □□□□ 悉殲蹄間 말굽 아래 무찔렀으니 -- 고전번역원은 弄猿을 재빠른 기병으로 해석하였다.
http://qindex.info/i.php?f=1239#3633
 
 1863 이전 세전서화첩(世傳書畵帖)
1599년 2월 본국으로 철군하는 명나라 군대를 그렸다. 이 그림의 왼쪽 하단에 수레를 탄 海鬼 4명과 猿兵三百이란 깃발 아래 원숭이 12 마리가 보인다.
http://qindex.info/i.php?f=1239#2318
 
 1863 이전 세전서화첩(世傳書畵帖)
荊楚青猿三百名本楊鎬所率來用於稷山戰大捷 형초청원 3백 명은 원래 양호가 거느리고 와서 직산 전투에 투입하여 크게 승리한 바 있다. -- 稷山 전투는 素沙 전투를 말한다.
http://qindex.info/i.php?f=1239#3629
 
 1863 이전 세전서화첩(世傳書畵帖)
문서에 나오는 '원숭이 猿' 글자는 형태가 猿과 달라 해독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http://qindex.info/i.php?f=1239#3635
 
 2004-02-01 원숭이 특전부대 - 이규태
오잡조(五雜俎)라는 중국 문헌에는 명나라 명장 척계광이 수백 마리 원숭이를 무장시켜 왜구를 섬멸했다는 기록도 있다.
http://qindex.info/i.php?f=1239#3617
 
 2016-01-12 조선을 구한 원숭이 - 이기환
택리지와 양경리호치제문의 猿을 글자 그대로 원숭이로 해석하였다.
http://qindex.info/i.php?f=1239#3634
 
 2018-09-07 안대회의 논문
원숭이 부대의 이야기를 기록한 택리지가, 원숭이 부대가 활동했다는 소사 전투가 일어나고 150여년 뒤에 편찬된 서적이라 신빙성에 의문이 있어 왔는데,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에도 명군이 원숭이 몇 마리를 데리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확인됨으로써, 원숭이 부대가 실재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임진왜란 전에 명나라 척계광이 원숭이 부대를 운용했었다는 기록과 후대에 그려진 세전서화첩에 원숭이 그림이 나오는 것이 덧붙여졌다.
http://qindex.info/i.php?f=1239#5303
 
 2018-09-07 안대회에 반론
원숭이 부대에 대한 기록이 중국 측에 없는 이유에 대해 안대회는 해귀에 대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있지만 중국 측에 없는 것처럼 원숭이 부대도 중국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일이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해귀와 원숭이 부대는 비중이 전혀 다르다. 해귀는 전과가 없고 원숭이 부대는 전과가 있다. 또 규모가 크기 때문에 운용에도 적잖은 부담이 가는 부대다. 그 존재가 사실이라면 중국 측의 기록에도 어떤 식으로든 언급이 되지 않을 수 없다.
http://qindex.info/i.php?f=1239#2588
 
 ¦원숭이 부대 이야기 평가
원숭이 부대에 관한 기록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번째는 양호가 소사 전투에서 수백 기의 원숭이 기병을 투입했다는 이야기고, 두번째는 유정의 부대에서 전투에 활용될 수 있는 원숭이 몇 마리를 보았다는 이야기며, 세번째는 철수하는 명나라 군대를 환송하는 행사에 300마리의 원숭이 부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각각 1597년, 1598년 그리고 1599년의 일이다. 원숭이에 대한 표현도 각각 농원(弄猿), 초원(楚猿), 원병(猿兵) 등으로 조금 ...
http://qindex.info/i.php?f=1239#2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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