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3. 왜는 처음부터 남이었나? > (3) 왜의 한반도 진출
 
 0290-0390 三韓의 재편
중국에서 서진이 망해가면서 요동과 한국은 재편되었다.
http://qindex.info/i.php?f=1303#7807
 
 0364-07 일본서기(720)
탁순왕 말금한기가 사마숙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갑자년 7월 중에 백제인 구저, 미주류, 막고 세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백제왕은 동방에 일본이라는 귀국(貴國)이있다는 말을 듣고 신들을 보내 귀국에 조공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길을 찾다가 이 땅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신들에게 길을 가르쳐 통할 수 있게 해준다면 우리 왕은 반드시 군왕에게 깊이 감사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http://qindex.info/i.php?f=1303#3878
 
 0366-03 일본서기(720)
사마숙니를 탁순국에 보내었다. 사마숙니는 종자 이파이와 탁순인 과고 두 사람을 백제국에 보내어 그 왕을 위로하였다. 이 때 백제 초고왕은 매우 기뻐하며 후하게 대접하고, 다섯가지 빛깔의 채색비단 각 1필과 각궁전 및 철정 40매를 이파이에게 주었다.
http://qindex.info/i.php?f=1303#1904
 
 0367-04 일본서기(720)
백제왕은 구저, 미주류, 막고를 보내어 조공하도록 하였다. 그때 신라국의 조사(調使)도 구저와 함께 왔다. 천웅장언을 신라에 파견하여 백제의 헌상물을 함부로 바꾼 것을 꾸짖었다.
http://qindex.info/i.php?f=1303#7507
 
 0369-03 일본서기(720)
함께 탁순국에 모여 신라를 격파하고, 비자발(比自㶱)·남가라(南加羅)·녹국(㖨國)·안라(安羅)·다라(多羅)·탁순(卓淳)·가라(加羅)의 7국을 평정하였다. 또 군대를 옮겨 서쪽으로 돌아 고해진(古奚津)에 이르러 남쪽의 오랑캐 침미다례(忱彌多禮)를 무찔러 백제에게 주었다. 이에 백제왕 초고(肖古)와 왕자 귀수(貴須)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만났다. 이 때 비리(比利)·벽중(辟中)·포미지(布彌支)·반고(半古)의 4읍이 스스로 항복하였다.
http://qindex.info/i.php?f=1303#7794
 
 0370-02 일본서기(720)
황전별(荒田別) 등이 돌아왔다.
http://qindex.info/i.php?f=1303#7795
 
 0370-05 일본서기(720)
천웅장언(千熊長彦)과 구저(久氐) 등이 백제로부터 이르렀다. 다사성(多沙城)을 더 주어 오고 가는 길의 역으로 삼게 했다.
http://qindex.info/i.php?f=1303#7796
 
 0371-03 일본서기(720)
백제왕이 또 구저(久氐)를 보내어 조공하였다. 이에 황태후가 태자와 무내숙니(武內宿禰)에게 “내가 백제국과 교류하여 친하게 지내는 것은 하늘이 이르게 한 것이지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다. 진기한 물건들은 전에는 없었던 것인데 해를 거르지 않고 늘 와서 바치니 이런 정성을 생각할 때마다 기쁘다. 내가 있을 때처럼 은혜를 돈독하게 하라”고 하였다.
http://qindex.info/i.php?f=1303#7797
 
 0371¦일본서기(720)
이 해 천웅장언(千熊長彦)을 구저(久氐) 등에게 딸려 백제국에 보냈다. 큰 은혜를 내려 “나는 신의 징험한 바를 따라 처음으로 길을 열고 바다 서쪽을 평정하여 백제에게 주었다. 지금 다시 두텁게 우의를 맺고 길이 은총을 내리리라”고 하였다.
http://qindex.info/i.php?f=1303#7798
 
 0372-09-10 일본서기(720)
구저(久氐) 등이 천웅장언(千熊長彦)을 따라와서 칠지도(七枝刀) 1자루와 칠자경(七子鏡) 1개 및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을 바쳤다.
http://qindex.info/i.php?f=1303#7799
 
 0382 일본서기(720)
신라가 조공해오지 않았다. 그 해에 습진언(襲津彥)을 파견하여 신라를 치도록 하였다. 백제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임오년에 신라가 귀국을 받들지 않으므로 귀국이 사지비궤(沙至比跪)를 보내어 이를 치도록 하였다. 사지비궤는 도리어 가라국을 쳤다. 가라국의 왕 기본한기(己本旱岐)와 아들 등은 그 인민을 데리고 백제로 도망해 왔다. 천황은 매우 노하여 목라근자를 보내 병사를 이끌고 가서 가라에 모여 그 나라의 사직을 복구시키도록 하였다."
http://qindex.info/i.php?f=1303#7806
 
 0391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414)
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 그런데 왜가 391년에 ▨을 건너와 백잔 ▨▨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http://qindex.info/i.php?f=1303#7800
 
 0391-0474 倭의 韓國개입
http://qindex.info/i.php?f=1303#7808
 
 0392-01 삼국사기(1145)
고구려에서 사신을 보내왔다. 나물 이사금은 고구려가 강성하였으므로 이찬 대서지의 아들 실성을 보내 볼모로 삼았다.
http://qindex.info/i.php?f=1303#7802
 
 0392-01 신라의 볼모
신라와 백제를 통틀어 외국에 볼모를 보낸 최초 사건이다. 이 직전에 한국을 둘러싸고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신라는 392년에 고려에 실성을 볼모로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402년에는 왜에 미질을 볼모로 보내고 412년에는 다시 고려에 복호를 볼모로 보냈다. 실성은 돌아와 신라의 왕이 되는데, 이는 왜에 보내졌던 왕자가 돌아와 왕이 되는 백제의 사례와 같다.
http://qindex.info/i.php?f=1303#7866
 
 0392-11 삼국사기(1145)
진사왕이 구원의 행궁에서 죽었다.
http://qindex.info/i.php?f=1303#7803
 
 0392¦일본서기(720)
백제의 진사왕이 왕위에 있으면서 귀국(倭)의 천황에게 예의를 잃었으므로, 기각숙니·우전시대숙니·석천숙니·도목숙니를 파견하여 그 무례함을 책망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백제국에서는 진사왕을 죽여 사죄하였다. 기각숙니 등은 아화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
http://qindex.info/i.php?f=1303#7801
 
 0397-03 일본서기(720)
백제인이 내조하였다, 백제기에는, “아화왕이 왕위에 있으면서 귀국에 예의를 갖추지 않았으므로 우리의 침미다례 및 현남·지침·곡나·동한의 땅을 빼앗았다. 이에 왕자 직지를 천조에 보내어 선왕의 우호를 닦게 하였다.”고 되어 있다.
http://qindex.info/i.php?f=1303#7804
 
 0397-05 삼국사기(1145)
아신왕이 왜국과 우호를 맺고 태자 전지를 볼모로 보냈다.
http://qindex.info/i.php?f=1303#7805
 
 0397¦백제의 볼모
백제는 397년부터 시작해서 망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왜에 왕자들을 보냈다.
http://qindex.info/i.php?f=1303#7862
 
 0419ᑅ 양서(636)
晉安帝時有倭王贊 진나라 안제때 왜왕 贊이 있었다.
http://qindex.info/i.php?f=1303#7864
 
 0438 송서(488)
讚이 죽자 아우 珍이 왕이 되어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바쳤다. 스스로 사지절 도독 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 6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이라 불렀다. 표를 올려 바른 벼슬을 요청해와 조서를 내려 안동장군 왜국왕에 봉했다. 珍이 또 왜수 등 13명에게 평서, 정로, 관군, 보국장군의 이름을 붙여 달라 하므로 모두 들어 주었다. -- 송서 본기 문제 원가 15년의 기록을 바탕으로 시점을 438년으로 특정하였다.
http://qindex.info/i.php?f=1303#7863
 
 438¦왜5왕의 주장
왜는 438년부터 478년까지 송(劉宋)에 사신을 보내어 백제, 신라, 임나, 진한 그리고 모한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주장했다.
http://qindex.info/i.php?f=1303#78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