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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 대마도 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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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1-19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고 부절과 고서를 받다
(세종의 왕위계승을 승인하는 영락제의 문서가) 경복궁에 당도하자 상왕(태종)은 궁문 밖에서 영접하고 사신은 절·고를 받들고 근정전에 당도하였다. 임금(세종)은 뜰에 내려가 여러 신하와 더불어 네 번 절하고 면복을 입고 나와 여러 신하와 더불어 멀리 사은하며 네 번 절하고 향을 피우며 또 네 번 절하고 만세를 부르며 춤추고 발구르며 네 번 절하고(山呼舞蹈四拜) 면복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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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1-19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고 부절과 고서를 받다
세종이 임금이 되어 명나라 황제의 승인을 받았으나 몇 달 뒤 벌어진 동정(東征, 대마도 정벌)은 상왕인 태종이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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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05-14 대마도 정벌 논의
 1419-05-14 대마도 정벌 논의    1419-05-14 대마도 정벌 논의    1419-05-14 대마도 정벌 논의    1419-05-14 대마도 정벌 논의    1419-05-14 대마도 정벌 논의  
 
 1419-05-18 장수 이종무 등을 전송하고 격려하다
임금이 수강궁에 문안드리고, 상왕과 임금이 두모포(豆毛浦, 서울시 옥수동 한강변) 백사정에 거둥하여 이종무 등 여덟 장수를 전송하고, 상왕이 친히 여러 장수와 군관에게 술을 줄 때, 환관 최한에게 명하여, 술을 치게 하고, 여러 장수에게 활과 화살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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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06-09 태종의 언급
 1419-06-09 상왕이 대마도를 정벌할 것에 대해    1419-06-09 상왕이 대마도를 정벌할 것에 대해    1419-06-09 상왕이 대마도를 정벌할 것에 대해    1419-06-09 상왕이 대마도를 정벌할 것에 대해    1419-06-09 상왕이 대마도를 정벌할 것에 대해    1419-06-09 상왕이 대마도를 정벌할 것에 대해    1419-06-09 상왕이 대마도를 정벌할 것에 대해  
 
 1419-06-17 바람 때문에 다시 들어오다
삼군 도체찰사 이종무가 9절제사를 거느리고 거제도를 떠나 바다 가운데로 나갔다가, 바람에 거슬려 다시 거제도에 와서 배를 매니, 병선 수효가 경기도 10척, 충청도 32척, 전라도 50척, 경상도 1백 26척, 총계 2백 27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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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6-17 바람 때문에 다시 들어오다
서울로부터 출정 나간 모든 장수 이하 관군 및 따르는 사람이 6백 69명이고, 갑사·별패·시위·영진속과 자기가 모집한 건강한 잡색군과 원기선군을 병합하여, 1만 6천 6백 16명이니, 총수가 1만 7천 2백 85명이므로, 65일 양식을 싸 가지고 행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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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6-17 바람 때문에 다시 들어오다
갑사는 상류층 자제들로 구성된 부대고 별패는 왕과 대신의 행차를 경호하는 부대며 시위는 왕의 경호부대다. 영진군은 지방 정규군이고 잡색군은 동원군이며 기선군은 수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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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6-19 다시 대마도로 향해 진군하다
이날 사시(巳時, 오전 10시경)에 이종무가 거제도 남쪽에 있는 주원방포(周原防浦, 추봉도)에서 출발해서 다시 대마도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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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6-29 대마도 승전을 고하다
유정현의 종사관 조의구(趙義昫)가 대마도에서 돌아와 승전을 고하니, 3품 이상이 수강궁에 나아가 하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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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06-29 정벌의 마무리
 1419-06-29 적이 물러나 수호를 빌다    1419-06-29 적이 물러나 수호를 빌다    1419-06-29 적이 물러나 수호를 빌다    1419-06-29 적이 물러나 수호를 빌다    1419-06-29 적이 물러나 수호를 빌다  
 
 1419-07-03 돌아와 거제도에 머물다
이종무 등이 수군을 이끌고 돌아와 거제도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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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7-06 전함의 귀환 상황을 보고하다
이종무가 보내 온 진무(鎭撫) 송유인(宋宥仁)이 밤에 와서 계하기를, “군사가 거제로 돌아왔는데, 전함(戰艦)이 복몰한 것은 없습니다.” 고 하니, 상왕은 곧 불러 보고 친히 상황을 묻고는 마굿간의 말 1필을 주고, 임금은 또한 옷 1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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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07-07 재정벌 계획과 무산
 1419 대마도 정벌    1419-07-07 대마도 왜적을 치게 하다    1419-07-07 대마도 왜적을 치게 하다    1419-07-07 대마도 왜적을 치게 하다    1419-07-09 막 돌아온 수군을 돌려 다시 대마도 치는 것이 득책이 아님    1419-07-09 막 돌아온 수군을 돌려 다시 대마도 치는 것이 득책이 아님    1419-07-09 막 돌아온 수군을 돌려 다시 대마도 치는 것이 득책이 아님    1419-07-10 대마도에서 180명 전사    1419-07-12 왜적 토벌 상황    1419-07-12 왜적 토벌 상황    대마도 재정벌 요약  
 
 1419-07-17 상왕이 도도웅와에게
대마도라는 섬은 경상도의 계림(鷄林)에 예속했으니, 본디 우리 나라 땅이란 것이 문적에 실려 있어, 분명히 상고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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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7-22 중국인이 박실의 패전을 알고 있다
좌의정 박은이 계하기를, "좌군 절제사 박실이 대마도에서 패군할 때 호위하던 한인(漢人) 송관동(宋官童) 등 11명이 우리 군사가 패하게 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으므로, 중국에 돌려보내서 우리 나라의 약점을 보이는 것은 불가합니다." 하니, 우의정 이원과 변계량·허조 등은 다 이르기를, "마땅히 풀어 보내어 사대(事大)의 예를 완전히 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통사를 보내어, 관동 등을 중로(中路)에서 보고 그 소견을 탐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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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8-04 주연을 베풀고 위로하다
이종무·우박(禹博)·박성양(朴成陽)과 서성재(徐省材)·상양(尙陽)·이징석(李澄石)들이 돌아오니, 상왕이 병조 참의 장윤화(張允和)를 보내고, 임금이 우부대언(右副代言) 최사강(崔士康)을 보내어 한강가에서 영접하여 위로하게 하고, 상왕이 임금과 함께 낙천정(樂天亭)에 거둥하여 그들을 기다리니, 종무 등이 들어와서 뵈오므로, 주연을 베풀어 위로하실 때, 거둥에 배행하였던 종친과 대신들도 연회에 참례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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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8-05 대마도에서 본 바를 아뢰니,
통사(通事) 최운과 선존의가 송관동(宋官童) 등 12명을 중로에 나가 보고, 그 보고 들은 것을 물으니, 관동이 대답하기를, "대마도란 곳은 길이는 한 3백 리가 되겠고 너비는 60여 리 되겠는데 이번 싸움에 전사한 것이 왜인이 20여 명이고 조선 사람이 백여 명이라." 하니, 최운 등이 돌아와서 그대로 아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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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8-05 대마도에서 본 바를 아뢰니,
상왕이 운 등에게 묻기를, "관동들을 모두 요동으로 보내야 할까, 혹은 특별히 붙들어 둘까." 하니, 운 등이 아뢰기를, "중국의 군병으로도 달단을 치다가 죽은 사람이 반이나 넘는데, 백여 명 죽은 것이 무엇이 부끄럽겠습니까." 하니, 상왕이 이르기를, "내 뜻이 본래 그러하였다." 하고, 곧 명하여 요동으로 보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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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8-10 병조에서 박실의 죄를 청하다
병조에서 계하기를, “박실이 좌군 장수가 되어서, 적군과 싸워 패전하여 사졸을 많이 죽였으니, 그 죄를 규명하소서.” 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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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8-14 박실을 의금부에 하옥하고 치죄하다
상왕이, 박실이 군율을 어기어서 패군하였다 하여, 의금부에 하옥하게 하고, 삼성(三省)을 시켜서 같이 치죄(治罪)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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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08-16 의금부의 치죄 주장
 1419-08-16 의금부에서 이종무 등의 죄를 고하다    1419-08-16 의금부에서 이종무 등의 죄를 고하다    1419-08-16 의금부에서 이종무 등의 죄를 고하다    1419-08-16 의금부에서 이종무 등의 죄를 고하다  
 
 1419-08-18 박실의 석방을 명하다
상왕이 박실의 석방을 명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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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08-22 우정언과 이견기
 1419-08-22 우정언 이견기, 이종무 등의 치죄주장    1419-08-22 우정언 이견기, 이종무 등의 치죄주장    1419-08-22 우정언 이견기, 이종무 등의 치죄주장    1419-08-22 우정언 이견기, 이종무 등의 치죄주장    1419-08-22 우정언 이견기, 이종무 등의 치죄주장    1419-08-22 우정언 이견기, 이종무 등의 치죄주장  
 
 1419-08-25 이종무를 군으로 봉하다
정역(鄭易)을 의정부 찬성에, 이종무를 장천군(長川君)에, 이중지(李中至)를 중군 동지총제(中軍同知摠制)에, 정경(鄭耕)을 전라도 수군 도절제사에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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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9-01 사헌부 장령 정연 등의 주장
사헌부 장령(掌令) 정연(鄭淵)과 정언 이견기(李堅基) 등이 대궐에 들어가서 이종무 등을 벌주자고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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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9-04 좌정언 하결, 이종무 등의 치죄주장
사간원 좌정언 하결(河潔)이 대궐에 들어가서 아뢰기를, "김훈과 노이는 일찍이 불충한 죄를 범한 자이므로, 임금이 비록 거느리고 가라고 분부하셔도 신하된 자가 감히 거느리고 갈 수 없는 것이어늘, 이제 이종무는 훈과 이를 불러서 선중(船中)에 오르게 한 연후에 보고하고, 또 명령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떠났으니, 신하의 의리에 어그러짐이 있사오나, 이종무는 지금 사신을 대접하는 관반(館伴)이 되었사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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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09-04 좌정언 하결, 이종무 등의 치죄주장
신 등이 우선 먼저 종사관 서성(徐省)을 심문하여 서류가 다 된 뒤에 그것을 가지고 수강궁에 가서 아뢰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내가 이미 모두 다 안 일이다."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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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11-01 이종무·이적·서성을 하옥시키다
이종무·이적·서성을 의금부에 하옥하고, 삼성(三省)에 명하여 함께 그 죄를 다스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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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11-14 이종무·서성은 자원 부처하다
김훈·노이의 가산을 적몰하여 관노로 만들고, 이종무·서성은 자원 부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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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9-12-12 전라도 사람이 아비를 찾기를 청하다
‘아비 해가 동정(東征)할 때에 좌군 절제사 박실이 도진무가 되어 니로군(尼老軍) 접전에서 좌군이 패전할 때, 아비는 사사로 부리는 반인(伴人,하인) 한약과 함께 힘껏 싸우다가 몸에 화살 두 개를 맞고 칡넝쿨 밑에 숨어 엎드린 것을 약이 바라보고 왔다 하는데, 지금까지 생사를 알지 못하니, 한약과 함께 대마도에 가서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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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0-01-23 도도웅와의 서한에 답서
대마도는 경상도에 매여 있으니, 모든 보고나 또는 문의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본도의 관찰사에게 보고를 하여, 그를 통하여 보고하게 하고, 직접 본조에 올리지 말도록 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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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1-04-07 종정성의 사절인 구리안에게 말하다
전번에 서계에 이르기를, ‘대마도가 경상도에 예속되었다는 말은 역사 문헌을 상고하나 노인들에게 물어보나 아무 근거가 없다.’ 했으나, 이 섬이 경상도에 예속되었던 것은 옛 문헌에 분명하고, 또한 너희 섬의 사절인 신계도도 말하기를, ‘이 섬은 본시 대국에서 말을 기르던 땅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과거에 너희 섬에서 모든 일을 다 경상도 관찰사에게 보고하여, 나라에 올린 것은 이 까닭이었다. 조정에서는 너희 영토를 다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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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対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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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대마도는 우리 땅" 역사 근거 많다    [韓·日관계]⑦대마도와 한국관계    대마도 재발견    위키백과: 대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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