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8. 요흑사(遼黑史) > BC 0108 낙랑 > 帶方
 
 BC 0045 정백동 낙랑호구부
朝鮮(조선) 䛁邯(남감) 增地(증지) 黏蟬(점제) 駟望(사망) 屯有(둔유) 帶方(대방) 列口(열구) 長岑(장잠) 海冥(해명) 昭明(소명) 提奚(제해) 含資(함자) 遂成(수성) 鏤方(누방) 渾彌(혼미) 浿水(패수) 吞列(탄열, 원문에는 吞에 초두가 붙어 있다.) 東暆(동이) 蠶台(잠태) 不而(불내) 華麗(화려) 邪頭昧(사두매) 前莫(전막) 夫租(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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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0018 삼국사기(1145)
비류는 마침내 그의 아우 온조와 함께 무리를 이끌고 패수(浿水)와 대수(帶水)를 건너 미추홀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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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19 삼국사기(1145)
여름 4월부터 가물다가 6월에 이르러서야 비가 내렸다. 한수(漢水)의 동북 부락에 흉년이 들어, 고구려로 도망간 자가 1천여 호에 달하였고, 패수와 대수 사이(浿帶之間)에는 사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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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20-0023 위략(魏略 265?)
염사착(廉斯鑡)이 진한의 우거수가 되어 낙랑의 토지가 비옥하여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하고 안락하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가서 항복하기로 작정하였다. ... 그리하여 착(鑡)은 호래를 데리고 출발하여 함자현(含資縣)으로 갔다. 함자현에서 군(郡)에 연락을 하자, 군(郡)은 착(鑡)을 통역으로 삼아 금중(芩中)으로부터 큰 배를 타고 진한에 들어가서 호래 등을 맞이하여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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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44 후한서(445)
한(韓)의 염사(廉斯) 사람인 소마시 등이 낙랑에 와서 공물을 바쳤다. 광무제는 소마시를 대하여 한(漢)의 염사읍군(廉斯邑君)으로 삼아 낙랑군에 소속시키고 철마다 조알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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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82 한서(漢書)
樂浪郡 戶六萬二千八百一十二 口四十萬六千七百四十八 縣二十五 낙랑군의 호수는 62,812호고 인구는 406,748명이며 25현이 있다. 朝鮮 俨邯 浿水 含資 黏蟬 遂成 增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吞列 東傥 不而 蠶台 華麗 邪頭昧 前莫 夫租 조선, 남감, 패수, 함자, 점제, 수성, 증지, 대방, 사망, 해명, 열구, 장잠, 둔유, 소명, 누방, 제해, 혼미, 탄열, 동이, 불이, 잠태, 화려, 사두매, 전막,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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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04-0220 삼국지(289)
건안 연간에 공손강이 둔유현 이남의 황무지를 분할하여 대방군으로 만들고, 공손모·장창 등을 파견하여 한(漢)의 유민을 모아 군대를 일으켜서 한(韓)과 예(濊)를 정벌하자, 옛 백성들이 차츰 돌아오고, 이 뒤에 왜(倭)와 한(韓)은 드디어 대방에 복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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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9 삼국지(三國志)
從郡至倭循海岸水行曆韓國乍南乍東到其北岸狗邪韓國七千餘里 대방군을 떠나 왜에 가려면 해안을 따라 한국을 지나 남쪽으로 간 뒤 다시 동쪽으로 7천여 리를 가면 북쪽 해안에 구야한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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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48 장무이묘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태봉리(현재 북한의 구령리)에 있는 대방군태수 장무이(張撫夷)의 벽돌방무덤. 명문에 의해 무덤의 주인공은 중국 하북성(河北省) 계주(薊州) 출신 대방태수 장무이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무덤의 축조는 무신년, 즉 서진(西晋) 무제(武帝) 태강9년(太康九年, 288)에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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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5 후한서(後漢書)
樂浪郡 武帝置 雒陽東北五千里 十八城 户六萬一千四百九十二 口二十五萬七千五十 낙랑군은 무제가 치소를 두었다. 낙양으로부터 동북 5천리 18성 61,492호 257,050구다. 朝鮮 남邯 淇水 貪資 占蟬 遂城 増地 帶方 駟望 海冥 列口 長岑 屯有 昭明 鏤方 提奚 渾彌 樂都 조선 남감 패수 함자 점제 수성 증지 대방 사망 해명 열구 장잠 둔유 소명 누방 제해 혼미 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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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48 진서(晉書)
屯有渾彌遂城秦築長城之所起。 둔유, 혼미, 수성은 진(秦) 장성이 시작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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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삼국사기(三國史記)
국내(國內)로 도읍하여 425년이 지나 427년에 평양(平壤)으로 도읍을 옮겼다. 156년이 지나 586년에 장안성(長安城)으로 도읍을 옮겼으며, ... 평양성(平壤城)은 지금의 서경(西京)과 같으며, 그리고 패수(浿水)는 곧 대동강(大同江)이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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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8 동사강목(東史綱目)
四郡考 - 通典에도, “平壤城은 곧 漢의 낙랑군 王儉城이다.” 하였다. 지금 평양을 낙랑이라고 칭하니 그 유래가 오래다. 魏志에, “대방군에서 倭에 이르자면, 해안을 따라 韓國을 경유한다.” 하였다. 한국은 지금의 兩湖이니, 이에 의하면, 그 땅(대방군)이 漢水 이북 경기ㆍ황해 연해 지역에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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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8 동사강목(東史綱目)
대수고(帶水考) - 대수는 아마 지금의 임진강(臨津江)인 듯하다. ... 미추홀은 바로 지금의 인천(仁川)이기 때문에 혹은 한수가 대수일 것이라고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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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1921 야쓰이 비망록
열차 타고 가다 우연히 발견한 대방태수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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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방
황해도 봉산에서 대방태수 장무이의 묘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곳에 대방의 치소가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재령평야는 2천년 전에 바다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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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산대방토성
황해도 봉산군 문정면 지탑리(智塔里)에 있는 토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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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귀명전(富貴銘塼)
황해남도(구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용문면(龍門面) 복우리(福隅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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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무이묘 위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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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탑리토성 위성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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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서보주(漢書補注)
含資(帶水西至帶方入海) 함자는 대수가 서쪽으로 흘러 대방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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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해도 신천군 새날리
대방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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