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삼한시대 연대기 > 475년부터 561년 사이 > 0475 백제 한성 함락
 
 0475 백제기(百濟記)
개로왕 을묘년(乙卯年 475) 겨울 박(狛)의 대군이 와서 6성을 7일 낮밤을 공격하였다. 왕성이 항복하여 함락되니 위례(尉禮)를 잃었다. 국왕과 태후, 왕자 등이 모두 적의 손에 죽었다. - 일본서기(日本書紀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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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5-07(<474) 삼국사기(1145)
(신라) 고구려 왕 거련(장수왕)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 왕 경(慶 개로왕)이 아들 문주를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왕이 군사를 내어 구해주려 했으나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백제가 이미 함락되었다. 경(慶) 역시 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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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5-09 삼국사기(1145)
(백제) 고구려 왕 거련(장수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수도 한성을 포위했다. 왕이 싸울 수가 없어 성문을 닫고 있었다. 상황이 어렵게 되자 왕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기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성문을 나가 서쪽으로 도주하려 하였으나 ... 고구려 장수 걸루 등이 왕(개로왕)을 보고 말에서 내려 절을 하고 왕의 낯을 향하여 세 번 침을 뱉고서 죄목을 따진 다음 아차성 밑으로 묶어 보내 죽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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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5-09 삼국사기(1145)
(백제) 문주왕은 개로왕의 아들이다. 처음에 비유왕이 죽고 개로가 왕위를 계승하였을 때 문주가 그를 보좌하여 직위가 상좌평에 이르렀다. 개로왕 재위 21년에 고구려가 침입하여 한성을 포위하였다. 개로가 성을 막고 굳게 수비하면서 문주를 신라에 보내 구원을 요청토록 하였다. 그는 구원병 1만 명을 얻어 돌아왔다. 고구려 군사는 비록 물러갔으나 성이 파괴되고 왕이 사망하여서 문주가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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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5-09 삼국사기(1145)
(고려) 왕이 병력 3만을 거느리고 백제를 침략하여, 왕이 도읍한 한성을 함락하고, 그 왕 부여경(개로왕)을 죽이고 남녀 8천을 포로로 잡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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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5-10 삼국사기(1145)
(백제)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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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5_ (<476) 일본서기(720)
겨울 고려의 왕이 군사를 크게 일으켜 백제를 쳐서 없앴다. 이 때 조금 남은 무리들이 있어 창하에 모여 있었는데 군량이 다하자 매우 근심하여 울었다. 이에 고려의 장수들이 왕에게 “다시 덩굴처럼 살아날까 두려우니, 쫓아가 없애기를 청합니다”고 하였다. 왕은 “안된다. 과인이 듣기에 백제국은 일본국의 관가가 되었는데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고 한다. 또 그 왕이 들어가 천황을 섬긴 것은 사방의 이웃들이 다 아는 바이다”라 하였으므로 드디어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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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5_ 5세기 중국-요동-한국-일본의 외교와 전쟁
고려를 지루하게 괴롭혀 오던 연(北燕)이 436년 망하자 고려는 위(北魏)와 접하게 된다. 그러나 고려와 위(北魏)는 돈독한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중국과의 관계가 안정되자 고려는 한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신라는 광개토왕에 이어 계속해서 영향권 아래에 두었고 백제는 쳐서 한성에서 밀어냈다. 이에 백제는 왜(倭)에 기대어 생존을 도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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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5_ 고려의 냉정한 실리외교
고려의 외교는 원초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실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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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5_ 백제 개로왕의 외교실패
삼국사기는 개로왕의 실패를 사치와 낭비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개로왕의 실패는 엉성한 외교관계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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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75_ 풍납토성은 제방의 역활도 하지 않았을까?
삼국사기에는 백제가 홍수의 피해를 많이 입어 제방을 쌓았다고 한다. 풍납토성은 한강변에 위치해 있는데 이 주변은 원래 자주 침수되는 지역이었다. 이 두 가지를 연결하여 풍납토성이 제방의 역활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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