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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슨 목사는 미 공군기지 사령관 측근인 데이비드 힐 중사로부터 계엄군의 도심 폭격계획을 미군이 저지했다는 말을 들었다. 수원과 사천 비행장의 조종사는 광주사태때 폭탄을 장착하고 대기했다가 바로 풀었다고 증언했다. ▐ 광주의 소요가 무장폭동으로 발전하자 월남 내전의 경험이 있는 군은 조건반사적으로 폭격을 준비했을 수 있다. 그런데 무장대기를 지시하고 보니까,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고 폭도와 계엄군이 뒤섞여 있는 상태라 바로 무장대기를 해제한 것이 아닐까?
 
광주□□ 설문
광주사태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① 운동 ② 폭동 ③ 반란 ④ 학살
 
1980.05.17 전군주요지휘관회의 윤자중
"막바지 상황입니다. 군이 적극적으로 나가서 고쳐야 할 때입니다. 월남과 흡사하며 초기단계입니다. 월남은 학생들이 공산당이었습니다. 월남의 재판이 아니된다 할 수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밀고 일치단결하기로 지휘관들과도 결의했습니다. 장관님의 결정에 일사불란하게 적극적으로 지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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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05.12 피터슨 목사
80년 5월 22일 같은 교회 집사이며 송정리 주한 미 공군기지 사령관 측근인 데이비드 힐 중사가 전화로 '계엄사령부의 군사행동이 임박했으니 광주 거주 미국인을 시외곽으로 대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훗날 힐 중사로부터 '계엄군의 도심 폭격계획을 미군이 저지했다.'는 말을 들었다. ● 당시에는 전투기를 움직여 폭격하려면 미군의 동의를 구해야 했고 광주 출격을 계획했다면 공군은 미 7공군에 관련 문서를 보냈을 텐데 그런 문서는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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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1 수원비행장 조종사
광주사태가 난지 2-3일 후 수원비행장 F-5 전투기에 공대지 폭탄을 장착하고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오후에 해제되었다. 출격장소는 광주로 알고 있다. - 편대장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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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1 피터슨 목사의 광주공습계획설
피터슨 목사의 수기에는 "(광주 미국인 대피를 담당하던 데이브 하사로부터) 한국 공군이 공격의 일환으로써 도시에 폭탄을 떨어뜨릴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들었다"고 되어 있다고 한다. ● 당시에는 전투기를 움직여 폭격하려면 미군의 동의를 구해야 했고 광주 출격을 계획했다면 공군은 미 7공군에 관련 문서를 보냈을 텐데 그런 문서는 나오지 않고 있다. 또 데이비드 힐 중사가 당시 20대였다고 하니 찾아서 확인해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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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2 사천훈련비행장 조종학생
계엄사령관의 담화 전후에 A-37 훈련기에 공대지 폭탄을 장착하고 대기했다가 하루 만에 취소되었다. A-37기는 12.5mm기관포와 500파운드 폭탄을 장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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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8 정춘식 5·18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 교정
광주사태 당시 마대 3만5천 장을 광주로 공수했다는 기록이 미완의 진상규명 해결에 새로운 단서가 될지 주목된다. 정춘식 5·18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은 "군이 그 많은 마대를 어디에다 쓰려고 항공기까지 동원해서 광주로 급히 옮겼겠느냐"며 "광주폭격 계획과 하나로 맞춰지는 커다란 그림의 한 조각"이라고 말했다. ● 폭격대기는 마대를 공수한 26일 이전에 해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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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6 손석희
"당시 공군 지휘부가 80년 광주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추가로 나왔습니다. 윤자중 당시 공군 참모총장의 진술조서인데, '광주는 월남과 흡사하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광주 시민을 베트콩과 동일시했다는 미국 정보당국의 자료와 사실상 같은 내용입니다." ● 5월 17일에 있었던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윤자중은 광주를 언급하지 않았다. 광주사태가 나기 전이라 광주를 언급할 이유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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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1 SBS
사실 전직 전투기 조종사들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도 "광주로 가기 위해 출격 대기를 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한 조종사는 "광주에 폭동이 났었으니 광주로 출격할 것이라고 정황상 생각만, 상상만 했었다"고 말했고 어떤 조종사는 "거의 매일 출격 대기를 하는 부대라 당시에 어디로 간다며 출격 대기를 했는지 기억조차도 못하겠다"고 증언했습니다. "JTBC 앵커가 광주 폭격이라고 했지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발을 빼는 조종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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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국방부 5.18특조위 발표
공군은 수원 제10전투비행단 F-5 전투기들과 사천 제3훈련비행단 A-37 공격기들에 각각 MK-82 폭탄을 이례적으로 장착한 채 대기시켰습니다. 해상으로 도주하는 시위대를 소탕하려는 작전지시거나 적어도 광주 진압작전과 밀접한 연관 하에 이뤄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무장 장착을 훈련하는 것이었다, 실무장 투하를 위한 준비였다, 대간첩 작전이었다, 대북한용이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4가지 주장은 모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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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국방부 5.18특조위 발표
● 군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광주에서 무장폭동이 일어났다. 월남 내전의 경험이 있는 군은 조건반사적으로 폭격을 준비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보니까,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이고 폭도와 계엄군이 뒤섞여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바로 무장대기를 해제한 것이 아닐까? ● 진압작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면 마치 폭격도 불사하고 진압하려 했다는 인상을 준다. 그것보다 무장폭동에 대한 조건반사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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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8 공수부대 광주비행장에 집결
흩어져 있던 공수부대는 5월24일 시 외곽 차단을 20사단에 넘기고 모두 광주비행장으로 집결했다. 비행단 부단장실이 특전사령관실로 제공됐고 3명의 공수여단장들도 별도의 사무실이 있었다. 광주비행장 전투기들이 5월21일 다른 지역으로 옮겨져 공수부대는 격납고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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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회고록 P424 광주사태 공수부대의 철수
광주폭격계획이 사실이라면 5월 21일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계엄군이 시위대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폭격을 하면 계엄군도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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