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5. 고려는 우리 역사인가? > (1) 고려의 기원 > 왕명
 
 01 鄒牟
왕망(8-23)의 초기에 있었던 중국과 고려의 갈등은 한서(82), 삼국지(289), 후한서(445) 그리고 삼국사기(1145)에 실려있는데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왕망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인물이 한서와 후한서에는 고려왕 추(騶)로 되어 있고 삼국지에는 고려왕 도(騊) 그리고 삼국사기에는 고려 장수 연비(延丕)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광개토왕릉비(414)에는 추모왕이 하늘로 올라갔다고 되어있어 중국의 기록과 정황이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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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儒留
유명을 이어받은 세자 유류왕(儒留王)은 도로서 나라를 잘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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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閭達
지난 날 주몽이 부여에 있었을 때 부인이 잉태하였었는데 주몽이 도망한 뒤에 한 아들을 낳으니 자를 처음에는 여해라 하였다. 성장하여 주몽이 국왕이 되었음을 알고는 곧 그 어머니와 함께 도망하여 오니 이름을 여달(閭達)이라 하고 나라 일을 그에게 맡겼다. 주몽이 죽자 여달이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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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大朱留
대주류왕(大朱留王)은 왕업을 계승하여 발전시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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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如栗
여달이 죽자 아들 여율(如栗)이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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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莫來
여율이 죽자 아들 막래(莫來)가 왕이 되어 부여를 정벌하니 부여는 크게 패하여 마침내 고구려에 통합·복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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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宮
상제와 안제 연간에 구려왕 궁(宮)이 자주 요동을 침입하였으므로 다시 현도에 속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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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宮
구려왕 궁(宮)이 태어나면서부터 곧 눈을 뜨고 사람을 쳐다보니 국인들이 미워하였다. 장성함에 용맹스럽고 건장하여 자주 변경을 침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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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 宮
막래의 자손이 대대로 왕위를 이어 후손 궁(宮)에 이르렀다. 궁은 태어나면서부터 눈을 뜨고 보았으므로 국인들이 미워하였다. 성장함에 흉악하고 사나워 나라가 그로 말미암아 쇠잔해지고 파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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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伯固
궁(宮)이 죽고 그 아들 백고(伯固)가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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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遂成
이 해에 궁(宮)이 죽고 아들 수성(遂成)이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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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 伊夷模
백고(伯固)가 죽고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발기(拔奇), 작은 아들은 이이모(伊夷模)였다. 발기는 어질지 못하여 국인들이 함께 이이모를 옹립하여 왕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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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 伯固
수성(遂成)이 죽고 아들 백고(伯固)가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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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 位宮
이이모(伊夷模)는 아들이 없어 관노부의 여자와 사통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위궁(位宮)이다. 이이모가 죽자 즉위하여 왕이 되니 지금의 구려왕 궁(宮)이 바로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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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 位宮
궁의 증손 위궁(位宮)이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눈을 뜨고 보니, 사람들은 그가 증조부 궁(宮)을 닮았다하여 이름을 위궁이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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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乙弗利
그(位宮)의 현손은 을불리(乙弗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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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釗
리(利)의 아들은 쇠(釗)인데 열제 때에 모용씨와 서로 싸움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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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永樂
17세손에 이르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 18세에 왕위에 올라 칭호를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 하였다. 은택이 하늘까지 미쳤고 위무는 사해에 떨쳤다. 쓸어없애니 백성이 각기 그 생업에 힘쓰고 편안히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은 유족해졌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 하늘이 어여삐 여기지 아니하여 39세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시니 갑인년 9월 29일 을유에 산릉으로 모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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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璉
세조(북위 탁발도 408-452) 때에 쇠(釗)의 증손 연(璉)이 처음으로 사신 안동을 파견하여 표를 올리고 방물을 마치면서 아울러 국휘를 청하였다. -- 국휘는 이름을 짓거나 기록을 남길 때 황제의 이름 글자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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