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5. 고려는 우리 역사인가? > (1) 고려의 기원 > 0027-0097? 부여 건국 설화
 
 0027-0097? 논형(論衡)
북쪽 오랑캐 탁리(橐離)국의 왕을 모시는 계집종이 임신을 하자 왕이 죽이려 하였다. 계집종이 "달걀만한 크기의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와 임신을 했습니다"고 하였다. 나중에 아들을 낳았는데 돼지 우리와 마굿간에 넣어 보았으나 돼지와 말이 보호해 주었다. 이름을 동명이라 하였는데 활을 잘 쏘았다. 나라를 빼앗을까 두려워하여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수(掩水)에 이르렀는데 활로 물을 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건넜다. 부여(夫餘)의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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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65? 위략(魏略)
옛날 북방에 고리(高離)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왕의 시녀가 임신을 하였다. 왕이 죽이려 하자, "달걀만한 크기의 기운이 내려와 임신을 하였습니다.”고 하였다. 뒤에 아들을 낳았는데 돼지 우리와 마굿간에 버려 보았으나 돼지와 말이 보호해 주었다. 이름을 동명이라 하였는데 활을 잘 쏘자 나라를 빼앗을까 두려워 하여 죽이려 하였다. 달아나서 남쪽의 시엄수(施掩水)에 당도하여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건넜다. 부여에 도읍하여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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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45 후한서(後漢書)
북쪽 오랑캐 색리(索離)국의 왕을 모시는 시녀가 임신을 하자 왕이 죽이려 하였다. 시녀가 "달걀만한 크기의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와 임신을 했습니다"고 하자 살려주었는데 낳은 아이를 돼지 우리와 마굿간에 넣어 보았으나 돼지와 말이 보호해 주었다. 이름을 동명이라 하였는데 커서 활을 잘 쏘았다. 위기를 느낀 왕이 죽이려 하자 달아나 엄사수(掩㴲水)에 이르렀는데 활로 물을 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건넜다. 부여(夫餘)에 도착하여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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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38 삼국사기(1145)
도읍을 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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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36 양서(梁書)
동명은 북쪽 오랑캐 고리(櫜離)왕의 아들이다. 왕을 모시는 시녀가 임신을 하자 왕이 죽이려 하였다. 시녀가 "달걀 크기의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와 임신을 했습니다"고 하니 살려주었는데 낳은 아이를 돼지 우리와 마굿간에 넣어 보았으나 돼지와 말이 보호해 주었다. 커서 활을 잘 쏘니 왕이 위기를 느껴 죽이려 하였다. 달아나 엄체수(淹滯水)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건넜다. 부여에 이르러 왕이 되었는데 그 후손의 한 갈래가 구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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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36 수서(隋書)
백제의 선대는 고려국에서 나왔다. 왕의 한 시녀가 갑자기 임신을 하게 되어 왕은 그녀를 죽이려고 하였다. 시녀가 말하기를 “달걀같이 생긴 물건이 나에게 내려와 닿으면서 임신이 되었습니다.” 고 하자 놓아 주었다. 뒤에 사내 아이 하나를 낳았는데 뒷간에 버렸으나 오래도록 죽지 않았다. 신령스럽게 여겨 기르도록 하고 이름을 동명이라 하였다. 장성하자 왕이 시기를 하므로 동명은 도망가서 엄수(淹水)에 이르렀는데 부여 사람들이 그를 모두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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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59 북사(北史)
백제국은 대체로 마한의 족속이며 색리국(索離國)에서 나왔다. 출행 중에 시녀가 임신하자 죽이려고 하였다. 시녀는 “하늘에서 달걀만한 기운이 내려 와 임신하였습니다.” 고 하였다. 아들을 낳으매 돼지 우리와 마굿간에 버렸으나 돼지와 말이 보호해 주었다. 기르도록 하고 동명이라 불렀다. 활을 잘 쏘자 꺼려서 다시 죽이려 하였다. 도망하여 남쪽의 엄체수(淹滯水)에 다다라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부여에 이르러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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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서와 북사의 오류
수서와 북사의 설화에 나오는 부여는 백제를 말한다. 이는 백제가 부여를 자처하였기 때문에 백제와 부여를 혼동한 결과다. 수서와 북사는 또 구태가 백제를 세웠다고도 하는데, 이도 부여의 위구태 왕을 백제왕으로 착각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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