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삼한시대 연대기 > 008년부터 289년 사이 > 0244 - 246 위(曺魏), 고려 침공
 
 0242 삼국지(289)
궁(宮, 동천왕)이 서안평을 노략질하였다. 北史(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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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4 ? 삼국지(289)
유주자사 관구검이 구려를 토벌하면서 현도태수 왕기(王頎)를 부여에 파견하였다. 위거(位居)는 대가를 보내어 교외에서 맞이하게 하고 군량을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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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4 양서(636)
정치 5년에 유주자사 관구검이 만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현도를 나와 위궁(位宮, 동천왕)을 공격하였다. 위궁은 보병과 기병 2만을 거느리고 관구검의 군대를 역습하여 비류에서 크게 싸웠다. 위궁이 싸움에 져 달아나니, 검(儉)의 군대는 추격하여 현(峴)에 이르러 수레를 달아 매고 말을 묶어 환도산에 올라 그 나라의 왕도를 격파하고 1만여명을 목베어 죽이니, 위궁은 홀로 처자식을 거느리고 멀리 달아나 숨었다. 北史(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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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4(<246-08) 삼국사기(1145)
위(曹魏)가 유주자사 관구검을 보내 1만을 거느리고 현도로부터 침략해왔다. 왕이 보기 2만을 거느리고 비류수 위에서 이를 패배시켜 베어버린 머리가 3천여 급이었다. 또 양맥의 골짜기에서 패배시켰는데 목을 베거나 사로잡은 것이 3천여 인이었다. 왕이 철갑기병 5천을 거느리고 나아가 공격하였는데 관구검이 방진을 치고 결사적으로 싸우므로 크게 패배하여 죽은 자가 1만 8천여 인이었다. 왕이 기병 1천여 기를 거느리고 압록원(鴨淥原)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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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삼국지(289)
관구검이 구려를 토벌할 때 구려의 왕 궁(宮)이 옥저로 달아났으므로 군대를 진격시켜 그를 공격하게 되었고 이에 옥저의 읍락도 모조리 파괴되고 3천여 급(級)이 목베이거나 포로로 사로잡히니 궁(宮)은 북옥저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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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삼국지(289)
고구려가 배반하므로 또 다시 약간의 군대를 파견하여 토벌하면서 지극히 먼 지방까지 추격하니 오환과 골도를 넘고 옥저를 거쳐 숙신의 왕정을 짓밟고 동쪽으로 대해에까지 이르렀다. 장로가 ‘얼굴이 이상한 사람이 해가 돋는 근처에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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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양서(636)
정치 6년에 검(儉)이 다시 공격하니 위궁(位宮, 동천왕)은 겨우 제가만 이끌고 옥저로 달아났다. 검(儉)은 장군 왕기(王頎)에게 추격하도록 하여 옥저 천여리를 지나 숙신의 남쪽 지경에까지 이르러 돌에 공을 새겨 기록하였다. 또 환도산에 이르러 불내성이라 명명하고 돌아왔다. 北史(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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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 수서(636)
위(曺魏) 장수 관구검이 고려를 토벌하여 격파하니 옥저로 쫓겨 갔다. 그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남아 있던 자들이 마침내 신라를 세웠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중국·고려·백제의 족속들이 뒤섞여 있으며 옥저·불내·한(韓)·예(獩)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그 나라의 왕은 본래 백제 사람이었는데 바다로 도망쳐 신라로 들어가 마침내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 北史(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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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45(<246-10) 삼국사기(1145)
관구검이 환도성을 공격하여 함락하고 사람을 죽이고 장군 왕기(王頎)를 보내 왕을 추격하였다. 왕이 남옥저로 달아나 죽령(竹嶺)에 이르렀는데, 군사들은 분산되어 거의 다 없어지고, 오직 동부의 유유만이 홀로 옆에 있었다. 유유가 위군에 들어가 장수의 가슴을 찌르고 그와 더불어 죽으니 위군이 마침내 혼란해졌다. 왕이 군사를 세 길로 나누어 빠르게 이를 공격하니 위군이 시끄럽고 어지러워져서 싸우지 못하고 드디어 낙랑에서 퇴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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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59 북사(北史)
유주자사 관구검이 만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현도를 나와 위궁을 공격하여 비류에서 크게 싸웠다. 패전하여 달아나자, 검(儉)은 추격하여 현(峴)에 이르러, 수레를 달아 매고 말을 묶어 환도산(丸都山)으로 올라가 그 도성을 도륙하였다. 위궁은 홀로 그의 아내와 자식들만 데리고 멀리 도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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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集安)
환도산성(丸都山城)과 국내성(國內城)이 있었던 지역으로 추정된다. 장군총을 포함하는 고분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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