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고 초기에 요하와 청천강 사이에는 여진이 살고 있었다. 왕고에서는 이들을 西女眞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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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5 高麗史(1451)
女眞
남은 족속들이 도망쳐서 우리나라의 懷昌·威化·光化의 땅으로 들어오니 거란 군사가 쫓아와 사로잡아 가면서 우리 수졸에게 이르기를, ‘여진이 매번 우리 국경 시골을 쳐들어와 도적질하므로 이제 우리는 그 원수를 갚고 군사들을 정비해서 돌아간다.’라고 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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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 高麗史節要(1452)
生女眞 “거란의 동경으로부터 우리의 안북부에 이르기까지 수백 리의 땅은 모두 생여진에 의해서 점유되었는데 광종께서 그 곳을 취하여 가주·송성 등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 서희가 한 말이다. 거란의 동경은 지금의 요양인데 요하의 동쪽에 있다. 안북부는 청천강을 건너기 전에 있었고 가주와 송성은 청천강 건너편에 있었다. 광종의 재위기간은 949~97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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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1.08 高麗史(1451)
西女眞 漫豆 黑水女眞
서여진의 만두 등 17인이 가족을 거느리고 내투하였으므로 예빈성에서 아뢰기를, “옛 제도에는 우리나라의 변방 사람으로 일찍이 번적에게 납치되었다가 고향을 생각하여 스스로 돌아온 자와, 송인으로 재능이 있는 자 이외에 흑수여진과 같은 사람들은 모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만두 등도 또한 옛 규정에 의하여 돌려보내소서.”라고 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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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02 高麗史(1451)
선정전에 거둥하여 延州 관문 밖의 蕃長 守弗首 등 7인, 淸塞鎭 관문 밖의 번장 歸夫 등 18인, 平虜鎭 관문 밖의 번장 要弗 등 28인을 접견하고, 술과 음식 및 전례에 따른 예물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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