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遼黑史 > 0916~1125 遼 > 0984 ●西女眞

왕고 초기에 요하와 청천강 사이에는 여진이 살고 있었다. 왕고에서는 이들을 西女眞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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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4 高麗史(1451)
女眞 형관어사 이겸의에게 명하여 압록강 가에 성을 쌓아 관문으로 삼게 하였는데 여진이 군사를 동원하여 그것을 막고 이겸의를 사로잡아 돌아가니 군대가 무너져 성을 쌓지 못하였으며 돌아온 자는 셋에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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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85 高麗史(1451)
女眞 남은 족속들이 도망쳐서 우리나라의 懷昌·威化·光化의 땅으로 들어오니 거란 군사가 쫓아와 사로잡아 가면서 우리 수졸에게 이르기를, ‘여진이 매번 우리 국경 시골을 쳐들어와 도적질하므로 이제 우리는 그 원수를 갚고 군사들을 정비해서 돌아간다.’라고 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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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1 高麗史(1451)
女眞 압록강 바깥에 거주하는 여진족을 백두산 너머로 쫓아내어 그 곳에서 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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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 遼史(1343)
女直國 왕치(성종)가 박랑유를 파견하여 표를 올려 죄를 자인하므로 조칙을 내려 여직국 압록강 동쪽 수백리 땅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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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 高麗史節要(1452)
生女眞 “거란의 동경으로부터 우리의 안북부에 이르기까지 수백 리의 땅은 모두 생여진에 의해서 점유되었는데 광종께서 그 곳을 취하여 가주·송성 등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 서희가 한 말이다. 거란의 동경은 지금의 요양인데 요하의 동쪽에 있다. 안북부는 청천강을 건너기 전에 있었고 가주와 송성은 청천강 건너편에 있었다. 광종의 재위기간은 949~97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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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05 高麗史(1451)
西北界女眞 서북계의 여진에서 거란이 군사를 동원하여 침략하려 계획한다고 알려 왔으나, 조정에서 의논하기를 그들이 우리를 속인 것으로 여기고 방비태세를 갖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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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08 高麗史(1451)
女眞 여진이 거란의 군대가 침략하였음을 다시 알려오자, 비로소 일의 위급함을 알고 각 도에 병마제정사를 나누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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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4 高麗史(1451)
女眞 평장사 서희에게 명하여 병사를 거느리고 여진을 쳐서 쫓게 하고 장흥(長興)·귀화(歸化) 두 진과 곽주(郭州)·구주(龜州)에 성을 쌓게 하였다. ▐ 두 진과 두 성은 모두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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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05 高麗史(1451)
女眞 여진이 거란군을 인도하여 압록강을 건너려 할 때에 대장군 김승위 등이 공격하여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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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高麗史(1451)
西女眞 揩信 서여진의 개신이 거란 동경에 있는 숭성사의 승려 도준을 사로잡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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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07 高麗史(1451)
女眞靺鞨 木史 여진말갈의 목사가 부락을 인솔하여 내조하였으므로 관작과 옷, 물품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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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高麗史(1451)
西女眞 未閼達 서여진의 미알달 등 7인이 와서 갑옷과 투구 및 말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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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01 高麗史(1451)
東女眞 鋤栗弗 西女眞 阿主 동여진의 서율불과 서여진의 아주 등 40여 인이 와서 말과 갑옷 및 투구, 깃발, 초서피와 청서피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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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04 高麗史(1451)
東女眞 仇陁囉 西女眞 渠逸 西女眞 木史 木開 동여진의 구타라, 서여진의 거일 등 20여 인이 와서 토종말과 무기를 바치자 의복과 허리띠, 화폐와 물품을 하사하였고, 서여진의 목사와 목개 등 2백 호가 내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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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10 高麗史(1451)
女眞木史 귀주에 사는 여진의 목사 등 34인에게 비단과 명주, 베 5백 여 필을 하사하여 적을 사로잡은 공을 포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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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3.10 高麗史(1451)
西女眞 大師 阿角八 東女眞 元甫 烏頭那 서여진의 대사 아각팔 등 14인과 동여진의 원보 오두나 등 63인이 내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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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1.08 高麗史(1451)
西女眞 漫豆 黑水女眞 서여진의 만두 등 17인이 가족을 거느리고 내투하였으므로 예빈성에서 아뢰기를, “옛 제도에는 우리나라의 변방 사람으로 일찍이 번적에게 납치되었다가 고향을 생각하여 스스로 돌아온 자와, 송인으로 재능이 있는 자 이외에 흑수여진과 같은 사람들은 모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만두 등도 또한 옛 규정에 의하여 돌려보내소서.”라고 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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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08 高麗史(1451)
西女眞의 추장 奴好 등 25인이 내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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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01 高麗史(1451)
장령전으로 거둥하여 平虜關 밖의 蕃長 등 50인을 접견하고 술과 음식 및 전례에 따른 예물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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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02 高麗史(1451)
선정전에 거둥하여 延州 관문 밖의 蕃長 守弗首 등 7인, 淸塞鎭 관문 밖의 번장 歸夫 등 18인, 平虜鎭 관문 밖의 번장 要弗 등 28인을 접견하고, 술과 음식 및 전례에 따른 예물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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