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신라민족론 > 1. 우리는 처음부터 한 민족이었나? > (03) 난민 > 0681 匈奴-新羅
 
 0060-08-04 삼국유사(1281)
호공이 밤에 월성 서리를 가는데 始林의 가운데 크고 밝은 빛이 있으며 자색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에 뻗쳐 내려온 것을 보았다. 구름 속에 황금 상자가 있는데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빛은 상자로부터 나오며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탈해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친히 숲에 나가서 그 상자를 열어 보니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누워있던 아이가 바로 일어났다. 이것은 혁거세의 고사와 같으므로 그 아이 이름을 閼智라 하였다. 알지는 우리 말로 아이를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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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60-08-04 삼국유사(1281)
금상자에서 나왔으므로 김(金)씨를 성으로 삼았다. 알지는 열한(熱漢)을 낳았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수류는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는 구도(俱道, 仇刀라고도 한다)를 낳고 구도는 미추(未鄒)를 낳았는데, 미추가 왕위에 즉위하니 신라 김씨는 알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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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65-03 삼국사기(1145)
밤에 왕이 金城 서쪽의 始林 나무들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자 호공을 보내 살펴보니 금색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고하니 왕은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게 했다. 작은 남자아이가 그 안에 있었는데 자태가 뛰어나게 훌륭했다.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많아 이름을 閼智라 했다. 금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金氏라 했다. 시림의 이름을 雞林으로 고치고 국호를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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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62 삼국사기(1145)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 味照라고도 하였다)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선조 알지가 계림에서 태어나 탈해왕이 거두어 궁중에서 길러 나중에 대보로 삼았다. 알지는 세한(勢漢)을 낳았고, 세한은 아도(阿道)를 낳았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았고, 수류는 욱보(郁甫)를 낳았고, 욱보는 구도(仇道)를 낳았는데, 구도가 곧 미추의 아버지이다. 첨해(沾解)가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미추를 세웠다. 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갖게 된 시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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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21~0565 신라김씨
신라왕은 521년까지도 김씨 성을 사용하지 않다가 565년에 처음으로 김씨 성을 사용한 기록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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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65 삼국사기(1145)
논하여 말한다. 신라 고사(古事)에는 "하늘이 금궤를 내려 보냈기에 성(姓)을 김씨(金氏)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괴이하여 믿을 수 없으나 내가 역사를 편찬함에 있어서 이 말이 전해 내려온 지 오래되니, 이를 없앨 수가 없었다. 그러나 또한 듣건대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의 후손이라 하여 김씨로 성을 삼았고 이는 신라 국자박사 설인선이 지은 김유신의 비문과 박거물이 지었고 요극일이 쓴 삼랑사비문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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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81 문무왕릉비(文武王陵碑)
君靈源自敻繼昌基於火官之后峻構方隆由是克 枝載生英異(秺)侯祭天之胤傳七葉以 … 그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와 화관지후(火官之后)에 창성한 터전을 이었고 높이 세워져 바야흐로 융성하니, 이로부터 ▨지(▨枝)가 영이함을 담아낼 수 있었다. 투후(秺侯) 제천지윤(祭天之胤)이 7대를 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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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64 大唐故金氏夫人墓銘
遠祖諱日磾自龍庭歸命西漢仕武帝愼名節陟拜侍中常侍封秺亭侯自秺亭已降七葉軒紱燉煌繇是望係京兆郡史籍敍載莫之與京必世後仁徵驗斯在及漢不見德亂離瘼矣握粟去國避時屆遠故吾宗違異於遼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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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64 대당고김씨부인묘명
먼 조상 이름은 일제(日磾)시니 흉노 조정에 몸담고 계시다가 서한에 투항하시어 무제 아래서 벼슬하셨다. 명예와 절개를 중히 여기니 그를 발탁해 시중과 상시에 임명하고 투정후(秺亭侯)에 봉하시니, 이후 7대에 걸쳐 벼슬함에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경조군에 정착하게 되니 이런 일은 사책에 기록되었다. 견주어 그보다 더 클 수 없는 일을 하면 몇 세대 후에 어진 이가 나타난다는 말을 여기서 징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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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64 대당고김씨부인묘명
한(漢)이 덕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난리가 나서 괴로움을 겪게 되자 곡식을 싸들고 나라를 떠나 난을 피해 멀리까지 이르렀다. 그러므로 우리 집안은 멀리 떨어진 요동(遼東)에 숨어 살게 되었다. -- 여기에 나오는 요동(遼東)은 요하 동쪽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신라까지 포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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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ppe route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고려나 백제와 달리 신라는 초원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돌무지나무덧널무덤이나 금관이 대표적이다. 또한 초원길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 로마의 유리잔이나 황금보검도 신라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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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김씨 흉노유래설
신라김씨란 신라의 왕을 배출했던 김(金)씨 가문을 말하는데, 경주김씨와 경주김씨로부터 갈라져 나온 많은 김씨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여기에는 김일성의 본관인 전주김씨와 김구의 본관인 안동김씨도 포함된다. 또 김씨는 아니지만 김알지의 후손인 감천문씨, 광산이씨 그리고 수성최씨도 신라김씨에 포함시킬 수 있다. 신라김씨의 유래에 대해서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번째는 금궤에서 시조가 나왔기 때문에 김씨로 성을 삼았다는 이야기고, 두번째는 소호금천의 후예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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