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삼한시대 연대기 > 태초부터 007년 사이 > BC 0075 현도군 이전, 동부도위 설치
 
 BC 0075 한서(82)
(元鳳)六年春正月募郡國徒築遼東玄菟城 나라의 죄수들을 모아 요동성과 현도성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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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0075 삼국지(289)
自單單大山領以西 屬樂浪 自領以東七縣 都尉主之 皆以濊爲民 단단대산령의 서쪽은 낙랑에 소속되었으며, 령(領)의 동쪽 일곱 현(縣)은 도위가 통치하는데 그 백성은 모두 예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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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0075 삼국지(289)
뒤에 이(夷)·맥(貊)의 침략을 받아 군(郡, 현도군)을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니 지금의 이른바 현도의 고부라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옥저는 다시 낙랑에 속하게 되었다. 한나라는 그 지역이 넓고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단단대령의 동쪽에 있는 지역을 나누어 동부도위를 설치하고 불내성에 치소를 두어 별도로 영동 7현을 통치하게 하였다. 이 때에 옥저도 모두 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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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0075 후한서(445)
後爲夷貊所侵徙郡於高句驪西北 뒤에 이맥의 침략을 받아 현도군을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고는 옥저를 현으로 고쳐 낙랑의 동부도위에 속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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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0075 후한서(445)
玄菟復徙居句驪自單單大領已東沃沮濊貊悉屬樂浪 後以境土廣遠復分領東七縣置樂浪東部都尉 현도는 다시 구려로 옮겼으며 단단대령 동쪽의 옥저와 예맥은 모두 낙랑에 예속되었다. 다시 령(領)의 동쪽 7현을 떼어 낙랑군에 속한 동부도위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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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9 三國志 요약 1
扶餘의 북쪽에는 弱水가 있고 서쪽에는 鮮卑가 있으며 동쪽에는 挹婁가 있고 남쪽에는 高句麗가 있다. 高句麗의 북쪽에는 扶餘가 있고 동쪽에는 沃沮가 있으며 남쪽에는 朝鮮과 濊가 있다. 朝鮮의 동쪽이 다 濊다. 沃沮의 북쪽에는 扶餘와 挹婁가 있고 서쪽에는 高句麗가 있으며 남쪽에는 濊가 있다. 濊의 북쪽에는 高句麗와 沃沮가 있고 남쪽에는 辰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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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89 三國志 요약 2
朝鮮을 멸하고 樂浪郡, 真藩郡 그리고 臨屯郡을 설치하였다. 이듬해에는 沃沮에 玄菟郡을 설치하였다. 얼마 후 真藩과 臨屯을 폐하여 樂浪에 합쳤다. 玄菟는 高句麗의 서북쪽으로 옮기고 沃沮는 樂浪에 소속시켰다. 다시 樂浪의 단단대령 동쪽을 갈라 동부도위를 설치하였다가 濊人의 자치를 허용하였다. 樂浪郡의 남쪽은 분할하여 帶方郡을 설치하였다. 韓은 帶方의 남쪽에 있는데 馬韓, 辰韓 그리고 弁韓으로 이루어져 있다. 馬韓은 서쪽에 있고 辰韓은 馬韓의 동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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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단대령
동부도위는 예와 옥저로 구성되었다. 옥저는 고구려의 동쪽에 있었고 예는 조선의 동쪽이자 고구려와 옥저의 남쪽에 있었다. 따라서 동부도위는 동해안에 접해 있었다. 그리고 7개 현으로 만들어졌으므로 규모가 크지 않았다. 이러한 동부도위는 단단대령 동쪽을 떼어 만들었는데, 이러한 조건에 맞는 단단대령은 철령에서 황초령에 이르는 산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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