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삼한시대 연대기 > 475년부터 561년 사이 > 0554 관산성 전투
 
 0475-0561 百濟의 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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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01 일본서기(720)
백제가 중부의 목리시덕문차, 전부의 시덕왈좌분옥 등을 축자에 보내 내신과 좌백련 등에게 묻기를 “덕솔 차주와 간솔 색돈 등이 지난 해 윤달 4일에 와서 ‘신(臣) 등(內臣을 말한다)은 내년 정월에 도착할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약간이나마 들어 미리 군영을 쌓고자 합니다”라 하였다. 이에 내신이 명령을 받들어 “바로 도와줄 군대 1천, 말 1백 필, 배 40척을 보내도록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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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02 일본서기(720)
백제가 하부 간솔 장군 삼귀와 상부 나솔 물부오 등을 보내 구원병을 청했다. 그리고 덕솔 동성자막고를 바쳐 이전 번 나솔 동성자언을 교대하고 오경박사 왕류귀로 고덕 마정안을 대신하고 승 담혜 등 9인으로 승 도침 등 7인을 교대하였다. 따로 명령을 받들어 역박사 시덕 왕도량, 역박사 고덕 왕보손, 의박사 나솔 왕유릉타, 채약사 시덕 반량풍, 고덕 정유타, 악인 시덕 삼근, 계덕 기마차, 계덕 진노, 대덕 진타를 바쳤는데 모두 청에 따라 교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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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05 일본서기(720)
내신이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에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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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07 삼국사기(1145)
(백제) 왕이 신라를 습격하기 위하여 직접 보병과 기병 5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에 이르렀는데 신라의 복병이 나타나 그들과 싸우다가 왕이 난병들에게 살해되었다. 시호를 성(聖)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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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07 삼국사기(1145)
(신라) 백제 성왕이 가량(加良)과 함께 와서 관산성을 공격하였다. 군주인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 등이 맞서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신주의 군주인 김무력이 주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교전하였는데, 비장인 삼년산군의 고간 도도가 급히 쳐서 백제왕을 죽였다. 이에 모든 군사가 승리의 기세를 타고 크게 이겨서 좌평 네 명과 군사 2만 9천 6백 명의 목을 베었고, 한 마리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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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07 삼국사기(1145)
(백제) 위덕왕은 이름이 창이니 성왕의 맏아들이다. 성왕이 재위 32년에 사망하자 그가 왕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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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12 일본서기(720)
겨울 12월 백제가 하부의 간솔 문사간노를 보내 표를 올려 “백제왕 신 명(明)과 안라에 있는 왜신들, 임나 여러 나라의 한기들은 아룁니다. 사라가 무도하여 천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박(狛)과 마음을 함께 하여 바다 북쪽의 미이거(彌移居 みやけ 官家)를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신들이 함께 의논하기를 유지신 등을 보내 군사를 청해 사라를 정벌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천황께서 유지신을 보내시니 군사를 거느리고 6월에 왔으므로 신들은 매우 기뻤습니다. 1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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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54_ 삼국사기(1145)
할아버지 무력(武力)은 신주도행군총관(新州道行軍摠管)이 되어 일찍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백제 왕과 그 장수 4명을 사로잡고 1만여 명을 참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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