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新羅民族論 > 0012 高句麗 > 0427 낙랑고려 > 고분

한(漢) 시기에 전성기를 누렸던 중원의 무덤벽화는 한(漢)의 쇠퇴와 함께 쇠락의 길을 걸었으나 북중국과 요동에서는 오히려 활발하게 만들어졌다. 고려의 벽화무덤은 현재까지 100여기가 발견되었는데 대부분 대동강 유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압록강 중류에서도 일부 발견된다. 축조 시기가 가장 이른 것은 연(燕)나라 출신 동수의 묘로 357년에 만들어졌고 옛 대방 지역에 위치해 있다.
 
 고분벽화
고분벽화
신라에는 고분벽화가 없다. 신라에 비해 낙랑고려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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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2~-0009 八里台西漢墓
팔리대서한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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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8.0023 洛陽金谷園新莽墓
洛陽金谷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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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5.0220 东平汉墓(동평한묘)
석벽에 인물들의 복식과 동작들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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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5.0220 打虎亭汉墓
1477#10829 SHARED
 
0025.0220 洛陽偃師杏園東漢墓
河南偃师杏园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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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5.0220 逯家庄壁画墓
河北省安平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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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5~0220 沂南汉墓
기남한묘의 화상석으로 새겨진 수렵도 등의 그림 소재는 훗날 고려 무덤방 그림에서도 발견되고 기남한묘의 천장과 기둥의 방식도 훗날 고려 돌방 무덤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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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0.0250 낙랑 고분벽화
지하에 돌로 무덤칸을 만들고 흙을 씌운 외칸으로 된 돌칸흙무덤. 북쪽 벽에는 무덤의 주인공과 그의 아내의 것으로 보이는 수레가, 그 아래위로는 창을 든 군사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동쪽 벽에는 3열로 구성된 개마무사 대열이 형상되어 있으며 서쪽 벽에는 북쪽을 향하여 달리는 말과 건물 같은 것이 그려져 있다. 무덤의 구조 형식과 벽화의 내용, 그곳에서 나온 유물 등으로 보아 이 무덤이 3세기 전반기에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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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0.0250 낙랑 고분벽화
○ 3세기 전반기는 한나라가 망하고 중국이 삼국으로 갈라지던 시기로 낙랑은 한나라 말기부터 공손씨의 통치를 받았다. 3세기 중엽에 위나라가 공손씨를 토벌할 때 이곳에 대한 통치도 회복하였다. ○ 행렬도는 한나라의 고분벽화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나 개마무사는 한나라의 고분벽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 벽화는 낙랑고려 시기의 동수묘나 진묘에 나오는 행렬도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 삼국사기의 244년 기록에 나오는 고려의 철갑기병(鐡騎)과 동시대의 벽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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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0.0250 낙랑구역
낙랑은 기원전 108년부터 313년까지 대동강 유역에 존재했다. 이곳으로 중원의 한나라 문화가 그대로 옮겨왔는데, 대동강 남쪽에 있는 이른바 낙랑구역에서 그 흔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낙랑의 한나라 문화는 이후 이곳을 차지한 고려로 이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고분벽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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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7.0420 丁家闸五号墓
정가압5호묘. 삼족오가 구미호와 함께 서왕모 선정에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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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7 안악 동수묘(佟壽墓)
연나라에서 망명한 동수의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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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8 덕흥리 진묘(鎭墓)
유주자사를 지낸 중국계 진(鎭)의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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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0589 丹阳南朝墓
단양남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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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0± 무용총
무용도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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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5~0500 대안리 1호분
두방무덤의 대개가 생활풍속도를 중심으로 한 벽화분인데 반해 대안리 1호분은 두방무덤이면서 사신도가 벽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어 생활풍속도에서 사신도로 이행되는 과도기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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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5± 각저총
각저도(씨름도)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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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5± 수산리 고분
회벽을 바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널방의 각 벽에는 기둥, 두공, 들보 등을 그려 넣어 마치 목조 건물의 내부처럼 보이도록 치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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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0- 쌍영총
1477#335 SHARED
 
0500± 삼실총
집안의 우산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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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0.0577 九原岗北朝壁画墓
구원강북조벽화묘. 고려의 수렵도와 비슷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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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0 北齐娄睿墓
북제 누예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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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71 徐显秀墓
서현수묘
1477#2239 SHARED COMMENT
 
0600 ± 오회분4호묘
벽화는 연도와 묘실 네 벽, 천정, 관대 등에 그려졌다. 연도에는 문지기를 그렸고, 네 벽에는 사신과 귀갑형당초문, 괴수역사상을 그렸고, 고임돌에는 교룡(蛟龍), 선인, 해와 달, 별자리, 구름무늬, 반룡문, 수목문을 그렸으며, 천정석에는 황룡과 별자리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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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0~0650 강서대묘
회칠을 하지 않은 잘 다듬어진 널방 돌벽 면에 직접 벽화를 그려서 오래도록 변하지 않았다. 네 벽면에 그려진 사신도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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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84 章怀太子墓
장회태자묘의 무덤길과 무덤방에는 50여 폭의 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고려 사신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새털 쓰개를 하고 있는 그림도 있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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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2 唐安國相王孺人清河崔氏墓
(당안국상왕유인청하최씨묘) 당나라 예종의 처인 청하 최씨의 묘로 낙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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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4.0710 高松塚古墳
たかまつづかこふん 고송총고분. 고려의 수산리 고분과 비슷한 치마를 입은 여인들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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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0± キトラ古墳
천정에 천문이 그려져 있는데 무덤 축조 시기보다 400여년 앞선 시기에 중국에서 볼 수 있었던 천문이다. 따라서 400여년 전 중국에서 그려진 천문 그림이 이곳으로 흘러왔고 벽화 제작자는 그것을 보고 따라 그렸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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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92 정효공주묘
널길의 동·서벽과 널방의 동·서, 북벽에 그려진 12명의 인물도는 발해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무사(武士)·시위(侍衛)·내시(內侍)·악사(樂師)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평소에 공주를 시중들던 사람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공주의 모습은 그려져 있지 않다. 인물들은 대체로 뺨이 둥글고 얼굴이 통통해 당나라 화풍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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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宝山辽代壁画墓
옥산요대벽화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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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张世卿墓
장세경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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狩獵圖
말을 타고 달리며 등을 돌려 쫓아오는 맹수를 향해 활을 겨누는 모습은 수렵도에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다. 秦(-221~-206)의 화상석에 그려진 것이 확인되는데, 특히 漢(-206~220)의 화상석에는 무수히 많이 그려져 있다. 漢 이후 이 장면은 무덤방 벽화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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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마무사(鎧馬武士)
서안 인근에서 출토된 진(秦 BC221~AD206)의 화상전에 개마무사로 보이는 그림이 확인된다. 삼국시대(220~280)의 벽화와 화상전에는 개마무사가 많이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대동강 유역에 있는 낙랑의 고분 벽화에도 개마 무사가 등장하는데, 이후 이곳을 차지한 고려의 고분 벽화에 그대로 이어졌다. 16국시기(304~439)에는 안라와 신라의 고분에서도 마갑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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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0025.0220 沂南汉墓0600 ± 오회분4호묘 모줄임천장0600~0650 강서대묘 모줄임천장모줄임천장 - 한국학중앙연구원
 
참고자료
2012 한국과 중국 고분벽화에 나타난 고대 가계의 비교墓室壁画위키백과 - 高句麗의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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