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년에 朝鮮은 燕에 복속되었다. -221년에 秦이 燕을 포함한 중국을 통일하자 조선은 다시 秦에 소속되었다. -209년에 진승이 난을 일으키자 중국은 다시 혼란해 졌는데, 이때 燕·齊·趙 지역의 난민 수만명이 조선, 진번 그리고 진국으로 흘러왔다. -202년에 漢이 다시 중국을 통일하는데, 이때 조선은 漢의 영역에서 빠졌다.
그러자 -195+년에 漢의 제후국이던 燕의 위만이 조선으로 망명했다가 중국의 유민과 토착민을 규합하여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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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BC91) 요약
❶ 기원전 334년에 燕의 동쪽에는 조선 및 요동이 있었다. 東有朝鮮遼東
❷ 기원전 311년 이후 燕은 동호를 쳐서 1천여리 물러나게 하고 東胡卻千餘里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을 쌓은 뒤 築長城自造陽至襄平 상곡군, 어양군, 우북평군, 요서군 그리고 요동군을 설치하여 오랑캐를 막았다. 置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以拒胡 이는 천산 산맥까지 영토를 넓힌 것으로 볼 수 있다.
2642#7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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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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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BC91) 요약
❸ 기원전 279년 이전에 燕은 동호를 공격하여 쫓아내고 천리의 땅을 개척한 뒤 요동을 지나 조선을 공격했다.
襲走東胡辟地千裏度遼東而攻朝鮮
진번과 조선을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보루과 요새를 쌓았다.
略屬眞番朝鮮爲置吏築鄣塞
따라서 조선과 진번은 천산 산맥 동쪽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❹ 기원전 221년에 秦은 燕을 멸망시키고 이곳을 요동 외요에 소속시켰다. 屬遼東外徼
2642#13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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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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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BC91) 요약
❺ 기원전 202년에 중국을 통일한 漢은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렵다며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를 경계로 하여 연나라에 소속시켰다.
爲其遠難守復修遼東故塞至浿水爲界屬燕
❻ 기원전 109년에 漢의 좌장군은 패수 위의 군사를 격파하고 전진하여 왕험성 아래에 이르러 서북쪽을 포위했다.
左將軍破浿水上軍乃前至城下圍其西北
이는 패수와 왕험성 사이에 큰 강이 없었다는 정황이므로 패수와 왕험성을 각각 청천강과 평양성으로 설정하면 자연스러워진다.
2642#1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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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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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4 史記(-91)
연은 동쪽으로 조선과 요동이, 북쪽으로는 임호와 누번이, 서쪽으로는 운중과 구원이, 남쪽으로는 호타하와 역수가 있습니다. 땅은 사방 2천여 리입니다. 남으로 갈석과 안문의 풍요로움이 있고, 북으로 대추와 밤이 풍족합니다.
진이 연을 공격하려면 운중과 구원을 넘고 대군과 상곡을 지나는 수 천 리를 뚫고 지나야 합니다. 조가 연을 공격한다면 열흘이 안 되어 수십 만 대군이 동원에 주둔하게 되고 호타하와 역수를 건너면 4, 5일 안에 도성에 이를 것입니다.
2642#2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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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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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3+ 위략(265?)
옛 기자의 후예인 조선후는, 주나라가 쇠약해지자 연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이라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는 것을 보고, 조선후도 역시 스스로 왕호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공격하여 주 왕실을 받들려 하였는데, 그의 대부 예가 말리므로 중지하였다. 그리하여 예를 서쪽에 파견하여 연나라를 설득하게 하니 연나라도 전쟁을 멈추고 침공하지 않았다.
▐ 연군이 왕을 칭한 것은 -323년이다.
2642#13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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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0 + 史記(-91)
襲破走東胡 東胡卻千餘里 築長城自造陽至襄平 置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 以拒胡
연나라의 명장 진개가 오랑캐에 인질로 가 있으면서 그들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연나라로 돌아온 후, 군대를 이끌고 동호를 습격해 패주시켰다. 이때 동호는 1천여 리나 물러갔다. 연나라 역시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지역에 장성을 쌓고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 등에 군을 설치하여 오랑캐를 방어했다.
264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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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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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2 史記(-91)
秦滅燕 屬遼東外徼
진이 연을 멸망시킨 뒤에는 요동 외요에 소속시켰다.
▐ 진이 연을 멸망시킬 당시 조선은 연에 속해 있었다는 방증이다. 또 遼東外徼란 표현을 통해 요동과 조선은 접해 있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연은 원래 사방 2천리였는데 동호를 내쫓고 천리의 땅을 차지한 뒤 요동군을 설치했다고 하므로 이 접경은 연의 도읍에서 2천여리 떨어진 곳이다. 그렇다면 요서와 요동을 가르는 선은 연의 도읍에서 1천리 이상 떨어진 곳이고 난하는 아니다.
2642#5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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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5 史記(-91) 몽염열전
진이 천하를 합병하자 곧 몽염에게 30만 무리를 이끌고 북으로 융적을 내쫓고, 하남을 수습하여 장성을 쌓게 했다. 지형에 따라 험준한 곳을 통제할 수 있게 쌓았는데 임조에서 시작하여 요동에 이르기까지 만여 리에 걸쳐 있었다. 그리하여 황하를 건너 양산을 거점으로 하여 구불구불 북으로 나아갔다. 10년 넘게 군대는 외지를 전전하다 상군에 주둔하기에 이르렀고, 이 무렵 몽염의 위세는 흉노를 떨게 했다.
2642#6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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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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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5 史記(-91) 흉노열전
秦이 여섯 나라를 멸망시키고 시황제가 몽염에게 십만의 군사를 주어 북으로 胡를 치게 해 하남 땅을 모조리 손에 넣었다. 황하를 이용해 요새를 만들고 황하를 따라 44개의 현에 성을 쌓고 죄수를 이주시켜 충당하게 했다. 그리고 직도를 통하게 해 구원에서 운양에 이르렀는데 험준한 산의 능선을 국경으로 삼고 골짜기를 이용해 참호로 삼고 수선할 수 있는 것을 손보아 임조에서 요동까지 만 여리에 이르렀다. 게다가 황하를 건너 양산과 북가 사이에 근거지를 두었다.
2642#1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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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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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5 長城
○ 사기에는 진장성이 임조에서 요동까지로 되어 있다.조양에서 요동까지 구간은 연이 동호를 1천리 내쫓고 쌓은 장성을 물려받았다.
○ 운양에서 구원까지 길을 통하게 하거나 황하 건너 양산을 기반으로 북쪽을 공략한 것은 모두 흉노를 겨냥한 것이다. 진장성과 관련된 이야기에 나오는 胡나 戎狄은 흉노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장성을 쌓아 확보한 하남은 황하의 남쪽을 말한다.
2642#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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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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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5 진장성 동단 문제
▐ 연나라가 조양에서 양평까지 장성을 쌓은 적이 있으니 진나라의 만리장성이 요동까지 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문제는 진나라의 장성이 낙랑 수성에서 시작되었다는 태강지리지의 기록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진나라 장성의 동쪽 끝은 요동이 아니라 낙랑 수성이 되는 것이다. 사기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라 이 태강지리지의 기록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수나라의 고려 침공에 명분을 제공하기 위해 부풀려진 이야기가 아닐까?
2642#4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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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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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2 01 史記(-91)
項羽卒聞漢軍之楚歌 以為漢盡得楚地 項羽乃敗而走 是以兵大敗 使騎將灌嬰追殺項羽東城 斬首八萬 遂略定楚地
항우는 한군이 부르는 초의 노래를 듣고는 한이
초의 땅을 다 차지한 것으로 알았다. 항우가 패하여 달아나니 군대가 크게 패했다. 기장 관영에게 항우를 추격하게 하여 동성에서 죽이고 8만의 목을 베니 마침내 초의 땅을 평정할 수 있었다.
2642#1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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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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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2 史記(-91)
漢興為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為界屬燕
한나라가 일어나서는 그곳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다시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는 곳을 경계로 하여 연나라에 소속시켰다.
▐ 패수는 요동 바깥 경계였다는 뜻이 되고 연나라가 관리를 두어 보루과 요새를 쌓고 진나라가 요동외요에 소속시킨 곳은 그 패수 바깥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강은 압록강, 청천강 그리고 대동강이 있다.
2642#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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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5 史記(-91)
연왕 노관이 배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도 망명하였다. 무리 천여 인을 모아 몽치 머리에 오랑캐의 복장으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나와 패수를 건너 秦의 옛 빈 땅인 상하장에 살았다. 점차 진번과 조선의 오랑캐 및 옛 燕과 齊의 망명자를 복속시켜 거느리고 왕이 되었으며 왕험에 도읍을 정하였다.
▐ 패수 바깥에 있는 진나라의 옛 땅은 그 전에 연나라가 조선과 진번을 쳐서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보루와 요새를 쌓았다는 기록에 연결시킬 수 있다.
2642#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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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8- 史記(-91)
이 때는 마침 효혜·고후(BC195- BC188)의 시대로서 천하가 처음으로 안정되니 요동태수는 곧 위만을 외신으로 삼을 것을 약속하여 국경 밖의 오랑캐를 지켜 변경을 노략질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모든 오랑캐의 군장이 들어와 천자를 뵙고자 하면 막지 않도록 하였다. 이로써 위만은 군사의 위세와 재물을 얻게 되어 그 주변의 소읍들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과 임둔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사방 수천리가 되었다.
2642#4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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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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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1 사기(사기 -91)
누선장군은 정예부대를 이끌고 먼저 심협을 함락시키고 석문을 깨뜨려 월나라의 배와 양식을 노획했다. 이틈에 밀고 나가 월나라의 선봉을 꺽고 수만 명을 거느리고는 복파장군을 기다렸다. 그러나 복파장군은 죄수들을 인솔한 데다 길까지 멀어 약속한 날짜에 늦었고 누선장군과 만났을 때는 1000여 명뿐이었다. 두 군대는 함께 나아갔는데 누선장군이 앞장서서 먼저 번옹에 도착했다.
2642#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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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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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漢의 조선 침공
齊의 중심지는 발해만 안쪽에 있었다. 齊 병력을 모아 출발시켰다면 당연히 이곳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발해 해안선은 내륙으로 더 깊이 들어가 있었다. 이곳에서 배를 띄우면 발해에 배를 띄우는 것이 된다. 당시의 항해는 가능한 한 해안선을 따라갔다. 조선을 향해 요동 반도로 건너가든 한반도로 바로 건너가든, 발해만 안쪽에서 띄운 배는 일단 齊의 해안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2642#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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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史記(-91) 05
원봉 2년에 한나라는 사신 섭하를 보내어 우거를 꾸짖고 회유하였으나 끝내 천자의 명을 받들려고 하지 않았다. 섭하가 돌아가며 국경인 패수에 이르르자 마부를 시켜 전송나온 조선의 비왕 장을 찔러 죽이고 바로 건너 요새 안으로 달려 들어간 뒤 천자에게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고 보고했다. 천자가 꾸짖지 않고 하에게 요동 동부도위의 벼슬을 내렸다. 이에 조선은 하를 원망하여 군사를 일으켜 기습공격해 하를 죽이니, 천자는 죄인을 모집하여 조선을 치게 하였다.
2642#1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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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 0108 史記(-91) 07
좌장군의 졸정인 다가 요동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출진하였으나, 싸움에 패하여 군사는 흩어지고 다도 도망하여 돌아왔으므로 법에 따라 참형을 당하였다. 누선은 제(齊) 병사 7천인을 거느리고 먼저 왕험에 이르렀는데 우거가 성을 지키고 있으면서 누선의 군사가 적음을 엿보아 알고, 곧 성을 나와 누선을 치니 누선군은 패해 흩어져 도망갔다. 장군 양복은 그의 군사를 잃고 10여일을 산중에 숨어 살다가 점차 흩어진 병졸들을 다시 거두어 모아들였다.
2642#4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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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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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 0108 史記(-91) 12
좌장군이 맹렬히 성을 공격하니, 조선 대신들은 몰래 사람을 보내 사사로이 누선에게 항복을 약속했으나, 말만 오고 갈 뿐 아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좌장군은 여러 차례 누선과 싸울 시기를 정하였으나 누선은 약속을 급히 이루려고 싸움에 나가지 않았다. 좌장군 또한 사람을 보내 조선이 항복해 올 때를 탐문하였으나, 조선은 이를 반기지 않고 누선 쪽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그로 인해 양 장군은 서로 반목하게 되였다.
2642#4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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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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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 0108 史記(-91) 15
수가 도착하니 좌장군이 말했다.
“조선이 항복할 형편에 이른 지 오래되었는데도 항복하지 않는 것은 사정이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누선이 여러 차례 싸우러 나오지 않은 것과 평소의 뜻하는 바를 수에게 낱낱이 고하였다.
“지금 이와 같으니 체포하지 않으면 크게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 누선 혼자만이 아니고 조선과 함께 우리 군사를 멸할 것입니다.”
라고 하니, 수도 이를 옳게 여기고 누선장군을 체포하고 군사를 합친 뒤 천자에게 보고하자, 천자는 수를 죽였다.
2642#4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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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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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漢書(82)
여름, 니계상 삼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우거를 죽이고 와서 항복하였다. 왕험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죽은 우거의 대신 성이가 또 반하여 다시 군리를 공격하였다.
좌장군이 우거의 아들 長과 항복한 상 로인의 아들 最로 하여금 그 백성을 달래고 성이를 주살하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드디어 조선을 평정하고 진번·임둔·낙랑·현도의 4군을 설치하였다.
定朝鮮爲眞番臨屯樂浪玄菟四郡
2642#5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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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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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위만 조선의 영역
❶ 예, 맥, 옥저, 진번 그리고 임둔이 모두 위만 조선에 복속하였다.
眞番臨屯皆來服屬(사기), 沃沮皆屬(삼국지), 濊及沃沮句驪本皆朝鮮之地(후한서)
❷ 기본적으로 위만 조선과 한사군은 일치한다.
定朝鮮爲眞番臨屯樂浪玄菟四郡(사기), 以沃沮城爲玄菟郡(삼국지), 以高句驪爲縣使屬玄菟(후한서)
❸ 이 영역은 나중에 고려의 영역이 되었고 단군 설화가 나오고 나서는 단군 조선의 영역으로 만들어졌다.
尸羅高禮南北沃沮東北扶餘穢與貊皆檀君之壽(제왕운기)
2642#1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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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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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5 후한서
濊及沃沮句驪 本皆朝鮮之地也
예 및 옥저·고구려는 본디 모두가 조선의 지역이다.
▐ 한나라는 위만조선을 멸한 뒤, 예에 임둔군을 설치하고 옥저에는 현도군을 설치하여 고구려를 소속시켰다. 예, 옥저 그리고 고구려가 모두 위만조선 시기에 조선의 영향권에 있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후한서의 위 기록은 그런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삼국지는 조선이 고구려의 남쪽이자 예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그들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2642#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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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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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6 사기정의(사기正義 張守節)
方數千里(括地志云朝鮮髙驪貊東沃沮五國之地國東西千三百里南北二千里在京師東東至大海四百里北至營州界九百二十里南至新羅國六百里北至靺羯國千四百里)
괄지지에는 조선, 고려, 맥, 동옥저 등 다섯 나라의 크기가 동서 1300리고 남북 2000리인데 동쪽으로 400리를 가면 큰 바다에 이르고 북쪽으로 920리를 가면 영주의 경계에 다다르며 남쪽으로 600리를 가면 신라에 이르고 북쪽으로 1400리를 가면 말갈국에 이른다고 하였다.
2642#1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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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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