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la > sources > 遼黑史 > 0916~1125 遼 > 0993

왕치(성종)가 박랑유를 파견하여 표를 올려 죄를 자인하므로 조칙을 내려 여진국 압록강 동쪽 수백리 땅을 주었다.
 
 요나라와 왕씨고려
요나라와 왕씨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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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05 高麗史(1451)
서북계의 여진에서 거란이 군사를 동원하여 침략하려 계획한다고 알려 왔으나, 조정에서 의논하기를 그들이 우리를 속인 것으로 여기고 방비태세를 갖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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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08 高麗史(1451)
이 달에 여진이 거란의 군대가 침략하였음을 다시 알려오자, 비로소 일의 위급함을 알고 각 도에 병마제정사를 나누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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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10 高麗史節要(1452)
시중 박양유를 상군사로, 내사시랑 서희를 중군사로, 문하시랑 최량을 하군사로 삼아 북계에 진을 치고 거란을 방어하게 하였다. 윤월. 서경에 행차하였다가 다음으로 안북부로 가려고 하였는데, 거란의 소손녕이 병사들을 거느리고 봉산군을 공격하여 우리의 선봉군사인 급사중 윤서안 등을 잡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왕이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서희가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봉산을 구하고자 하였다. 소손녕이 공표하여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이미 고구려의 옛 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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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10 高麗史節要(1452) 01
시중 박양유를 상군사로, 내사시랑 서희를 중군사로, 문하시랑 최량을 하군사로 삼아 북계에 진을 치고 거란을 방어하게 하였다. 서경에 행차하였다가 다음으로 안북부로 가려고 하였는데, 거란의 소손녕이 병사들을 거느리고 봉산군을 공격하여 우리의 선봉군사인 급사중 윤서안 등을 잡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성종이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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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10 高麗史節要(1452) 02
서희가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봉산을 구하고자 하였다. 소손녕이 공표하여 말하기를 “... 속히 항복하여...”라고 하였다. 서희가 그 글을 보고 돌아와서 강화할 수 있는 기미가 있다고 아뢰었다. 성종이 이몽전을 거란의 군영에 보내어 강화를 청하였다. 이몽전이 군영에 이르러 침입하여 온 까닭을 물었다. 소손녕이 말하기를 “백성들의 일을 돌보지 않으니...”라고 하였다. 이몽전이 돌아오자 왕이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그 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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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10 高麗史節要(1452) 03
“서경 이북의 땅을 나누어서 저들에게 주고 황주에서부터 절령까지의 선을 국경으로 삼음이 옳을 것입니다.” -- 황주는 옛 둔유로 추정되고 절령은 자비령이다. 이 선은 옛날 낙랑과 대방의 경계였다. 자비령은 훗날 1269년부터 1290년까지 몽골과 왕고의 경계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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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10 高麗史節要(1452) 04
"거란의 동경으로부터 우리의 안북부에 이르기까지 수백 리의 땅은 모두 생여진에 의해서 점유되었는데 광종께서 그 곳을 취하여 가주·송성 등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 984년에 압록강 가에 성을 쌓아 관문으로 삼으려다 여진의 공격을 받아 셋에 하나만 살아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청천강 바로 건너편에 있는 가주와 송성은 확보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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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10 高麗史節要(1452) 04
"거란의 동경으로부터 우리의 안북부에 이르기까지 수백 리의 땅은 모두 생여진에 의해서 점유되었는데 광종께서 그 곳을 취하여 가주·송성 등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서희가 한 말이다. 거란의 동경은 지금의 요양인데 요하의 동쪽에 있다. 안북부는 청천강을 건너기 전에 있었고 가주와 송성은 청천강 건너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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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10 高麗史節要(1452) 05
"삼각산 이북지역 또한 고구려의 옛 땅인데, 저들이 ‘골짜기는 채우기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채우기가 어렵다’고 하는 욕심으로써 싫증낼 줄 모르고 그곳을 요구한다면, 다 줄 수 있겠습니까." -- 삼각산에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있어 한때 이곳이 신라와 고려의 경계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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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10 高麗史節要(1452) 06
소손녕은 이몽전이 돌아간 지 오래되었는데도 회답이 없자 마침내 안융진을 공격하였다. 중랑장 대도수와 낭장 유방이 맞서 싸워서 이겼다. 소손녕이 감히 다시 전진하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어 항복할 것을 재촉하였다. 왕이 화통을 위한 사신으로 장형을 거란의 군영으로 보냈으나 소손녕은 다시 대신을 보내라고 하였다. 장형이 되돌아오니, 여러 신하들 중 아무도 가려는 자가 없었는데, 서희만이 홀로 아뢰기를, “감히 명령에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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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10 高麗史節要(1452) 07
“너희 나라는 신라의 땅에서 일어났으니, 고구려의 땅은 우리의 소유인데도 너희들이 침범하여 갉아먹고 있다. 또 우리와 더불어 영토를 맞대고 있으면서도 바다를 건너 송을 섬기고 있으니, 우리 대국이 이 때문에 토벌을 하러 온 것이다. 이제 영토를 나누어 바치고 조빙의 예를 취한다면 무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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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10 高麗史節要(1452) 08
“우리나라가 고구려의 옛 땅이니 국호를 고려라고 하고 평양에 도읍을 정한 것입니다. 토지의 경계를 논하자면 상국의 동경도 모두 우리의 영역에 있는 것이 되는데, 어찌 침식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압록강 안팎도 역시 우리의 영역 안쪽인데, 지금 여진이 그 사이를 도적질하여 기거하면서 길이 막혀, 조빙이 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되돌려주어 길이 통하게 하여 준다면 감히 조빙의 예를 갖추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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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10 高麗史節要(1452) 09
소손녕의 요구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요(遼)와 왕고의 역학관계에 걸맞게 왕고는 요를 섬겨라. (2) 왕고는 요와 경쟁관계에 있는 송(趙宋)을 섬기지 말라. (3) 고려의 옛 땅은 요의 것이니 왕고가 차지한 고려의 옛 땅을 돌려 달라. 이에 대해 서희는 왕고가 고려를 계승하였으므로 고려의 옛 땅을 돌려줄 수 없으며, 오히려 지금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여진을 쫓아내고 그 땅을 왕고가 차지하게 해 준다면 여진에 막혀 하지 못했던 요에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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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10 高麗史節要(1452) 10
서희가 거란의 군영에 7일간 머무르다가 돌아오니 성종이 크게 기뻐하면서 강나루로 나와 맞이하고, 곧 시중 박양유로 하여금 예폐사가 되어 들어가 뵙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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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3_ 遼史(1343)
왕치(성종)가 박랑유를 파견하여 표를 올려 죄를 자인하므로 조칙을 내려 여진국 압록강 동쪽 수백리 땅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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