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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la > 0475~0561 ❹ 百濟의 南下 |
高麗의 침공을 받아 百濟는 한강 유역을 잃고 금강 유역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倭의 도움을 받아 任那의 섬진강 유역과 영신강 유역을 차지하였다. 이후 新羅와 함께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하류와 상류를 나눠가졌으나 高麗와 新羅가 손을 잡자 포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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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5 蓋鹵王→文周王
❶ 일본서기(720) 천황이 백제가 고려에게 패배했음을 듣고 久麻那利를 汶洲王에게 주어 그 나라를 구원해 일으키게 하였다. ┆ ❷ 삼국사기(1145) 文周王은 蓋鹵王의 아들이다. 蓋鹵 재위 21년에 고구려가 침입하여 한성을 포위하였다. 蓋鹵가 성을 막고 굳게 수비하면서 文周를 신라에 보내 구원을 요청토록 하였다. 그는 구원병 1만 명을 얻어 돌아왔다. 고구려 군사는 비록 물러갔으나 성이 파괴되고 왕이 사망하여서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2491#1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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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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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7.03 日本書紀(720)
천황이 백제가 고려에게 패배했음을 듣고 久麻那利를 汶洲王에게 주어 그 나라를 구원해 일으키게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모두 “백제국은 비록 거의 망해 창하에 모여 근심하고 있으나, 실로 천황에게 의지하여 다시 그 나라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였다. 문주왕은 개로왕의 동생이다. 일본구기에서는 “구마나리를 말다왕에게 주었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잘못일 것이다. 구마나리는 임나국의 下哆呼唎현의 별읍이다.
2491#26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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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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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9 文斤王→東城王
❶ 일본서기(720) 백제의 文斤王이 죽었다. 천왕이 昆支王의 다섯 아들 중 둘째인 末多王이 어린 나이에 총명하므로 칙명으로 궁궐에 불러 직접 머리를 쓰다듬으며 은근하게 조심하도록 타이르고 그 나라의 왕으로 삼았다. 그리고 병기를 주고 아울러 축자국 군사 500인을 보내 자기 나라로 호위해 보냈는데, 이 사람이 東城王이 되었다. ┆ ❷ 삼국사기(1145) 東城王의 이름은 牟大이니 文周王의 아우 昆支의 아들이다. 三斤王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2491#1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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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1 위서(554)
연(璉 장수왕)이 죽은 나이가 100여세였다. 고조는 동쪽 교외에 나가 거애하고, 알자복야 이안상을 보내 차기대장군 태전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에 추증하고 시호를 강(康)이라 하였다. 또 대홍려를 보내 연(璉)의 손자 운(雲 문자왕)을 사지절 도독 요해제군사 정동장군 영호동이중랑장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에 배하고, 의관과 복장·기물 및 수레·깃발 따위의 물건들을 하사하였다.
2491#40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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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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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東城王→武寧王
❶ 일본서기(720) 백제 末多王이 무도하여 백성들에게 포학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제거하고 嶋王을 세우니 이가 武寧王이다. ┆
❷ 삼국사기(1145) 백가가 사람을 시켜 왕을 칼로 찔러서 왕이 사망하니 시호를 東城王이라 하였다. 武寕王의 이름은 斯摩이니 牟大王의 둘째 아들이다. 牟大 재위 23년에 사망하자 그가 왕위에 올랐다.
249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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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507 위서(554)
세종이 동당에서 고구려의 사신 예실불을 인견하니, 실불이 말하기를,
"고려는 하늘과 같은 정성으로 여러 대에 걸쳐 충성하여 땅에서 나거나 거두어들이는 것을 조공에 빠뜨리지 않았었습니다. 오직 황금은 부여에서 나고, 珂는 섭라에서 생산됩니다. 이제 부여는 물길에게 쫓겨났고 섭라는 백제에게 합병되었는데, 國의 王인 臣 雲은 끊어진 나라를 잇는 의리를 생각하여 모두 저희 나라로 옮겨 살게 하였습니다."
2491#40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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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0530 近江毛野臣
527년에 왜는 근강모야신으로 하여금 6만의 군사를 이끌고 임나에 나아가 남가라와 녹기탄을 다시 세워 임나에 합치게 하려 했다. 그러나 가는 도중 축자국조 반정이 방해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529년 왜는 다시 모야신을 안라에 사신으로 파견하여 이 문제의 해결을 맡겼다. 530년 임나의 사신이 왜에 와서 모야신의 폭정을 폭로하였다. 왜는 목협자를 보내 모야신을 불렀다. 모야신은 가는 도중 대마도에서 병이 나서 죽었다.
2491#2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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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04 日本書紀(720)
임나왕 기능말다한기가 와서 조회하였다(기능말다란 대개 아리사등이다). 대반대련금촌에게 아뢰기를 “바다 밖의 여러 번국들은 태중천황이 내관가를 두었을 때부터 본토를 저버리지 않았으므로 그 땅을 봉하였는데 그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어서입니다. 지금 신라는 원래 내려주었던 경계를 어기고 자주 경계를 넘어 침략해 오니 청컨대 천황께 아뢰어 신의 나라를 구해 주십시오”라 하였다.
▐ 여기에 나오는 임나왕은 가라왕을 뜻한다.
2491#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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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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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0.09 日本書紀(720)
천황이 여러 신하에게, “어느 정도의 군사가 있으면 신라를 칠 수 있겠는가”하고 물었다. 물부대련미여 등이, “적은 군사로는 쉽게 칠 수 없습니다. 지난 번 남대적천황 6년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표를 올려 임나의 상치리(上哆唎)·하치리(下哆唎)·사타(娑陀)·모루(牟婁)의 네 현을 청하였는데, 대반대련금촌이 표에서 청하는 대로 구하는 곳을 내려 주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신라의 원망이 여러 해 동안 쌓여 갔으니 가볍게 칠 수 없습니다”라고 아뢰었다.
2491#26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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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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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1~0554 ◾任那² 재건 시도
任那²의 㖨己呑, 南加羅 그리고 卓淳이 신라에 넘어가자, 왜는 529년에 모야신을 任那²에 파견하여 통치기구를 설치하고 회복을 도모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잠잠하다 흠명천황이 즉위 이듬해인 541년부터 다시 시도하는데, 이번에는 백제를 통해 이루어졌다.
日本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任那² 여러 나라의 우두머리를 旱岐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그러나 지지부진하다 554년 이후에는 日本府와 旱岐가 기록에서 사라졌다.
2491#30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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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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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1~0554 한강 유역과 관산성
백제는 가라와 함께 고려를 침공하여 한성과 그 건너편의 평양을 빼앗아 옛 땅 6군을 회복하였다. 이때 신라도 고려를 침공하여 죽령 북쪽 10군을 차지하였다.
고려는 돌궐의 침공을 막느라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게다가 북제로부터도 유민을 송환당하는 등 고립에 처하자 신라와 손을 잡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백제가 위기를 느껴 한성과 평양을 포기하였고 그 땅은 신라가 주웠다.
2491#8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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