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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la > 0369 ~ 0474 ❸ 倭의 任那 經略 |
倭와 百濟가 연합하여 낙동강 동쪽과 영산강 유역을 복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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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2 太平御覽(977~983)
진서에 이르기를 382년에 신라국왕 누한이 사신 위두를 파견하여 미녀를 바쳤다. 그 나라는 백제의 동쪽에 있는데 머리를 아름답게 늘어뜨린 사람이 많다. 길이는 한 장이나 된다.
부견이 "해동의 일이 옛날과 같지 않다는 말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묻자, "중국과 마찬가지로 시대가 변하고 명칭이 바뀌었으니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1908#3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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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85 枕流→辰斯
❶ 日本書紀(720) 0265 백제 枕流왕이 죽었다. 왕자 阿花가 어렸으므로 숙부 辰斯가 왕위를 빼앗아 즉위하였다. ❷ 三國史記(1145) 0385 枕流왕이 죽었다. 辰斯왕은 近仇首왕의 둘째 아들이요 枕流의 동생이다. 사람됨이 굳세고 용감하고 총명하고 어질었으며 지략이 많았다. 枕流왕이 죽자 태자가 어렸기 때문에 숙부 辰斯가 왕위에 올랐다.
1908#1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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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2 辰斯→阿花
❶ 日本書紀(720) 0272 辰斯王이 왕위에 있으면서 왜의 천황에게 예의를 잃었으므로 紀角宿禰·우전시대숙니·석천숙니·도목숙니를 파견하여 그 무례함을 책망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백제국에서는 辰斯王을 죽여 사죄하였다. 紀角宿禰 등은 阿花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갔다. 紀角宿禰는 백제의 강역을 나누고 그 땅에서 나는 산물을 모두 기록하였다. ❷ 三國史記(1145) 0392 辰斯王이 구원의 행궁에서 죽었다. 阿莘王이 왕위를 이었다.
1908#7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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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6 廣開土王陵碑(414)
396년 왕이 친히 군을 이끌고 백잔국을 토벌하였다. 백잔주가 곤핍해져, 남녀 생구 1천 명과 세포 천 필을 바치면서 왕에게 항복하고, 이제부터 영구히 고려왕의 노객이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태왕은 앞의 잘못을 은혜로서 용서하고 뒤에 순종해 온 그 정성을 기특히 여겼다. 이에 58성 700촌을 획득하고 백잔주의 아우와 대신 10인을 데리고 수도로 개선하였다.
1908#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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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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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0 廣開土王陵碑(414)
十年 敎遣步騎五萬往救新羅從男居城至新羅城倭滿其中 官軍方至倭賊退□□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城卽歸服
왕이 보병과 기병 도합 5만 명을 보내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남거성을 거쳐 신라성에 이르니, 그곳에 왜군이 가득하였다. 관군이 막 도착하니 왜적이 퇴각하였다.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이 곧 항복하였다.
1908#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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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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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2 微叱
○ 일본서기(720)에는 신공황후 원년(320년)에 신라왕 파사매금이 미질기지파진간기를 왜에 인질로 바쳤다고 되어 있다.
○ 삼국사기(1145)에는 실성왕 원년(402년)에 나물왕의 아들 미사흔을 왜에 인질로 보냈다고 되어 있다.
○ 삼국유사(1281)에는 나물왕 36년(391년) 庚寅年(390년)에 왕의 셋째 아들 미해를 왜에 인질로 보냈다고 되어 있다.
● 광개토왕릉비에는 왜가 391년에 한국에 진출했다고 되어 있으므로...
1908#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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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4 廣開土王陵碑(414)
十四年 而倭不軌侵入帶方界□□□□□石城□連船□□□ 王躬率□□從平穰 □□□鋒相遇 王幢要截盪刺 倭寇潰敗斬煞無數
왜가 법도를 지키지 않고 대방 지역에 침입하였다. 왕의 군대가 적의 길을 끊고 막아 좌우로 공격하니, 왜구가 궤멸하였다. 참살한 것이 무수히 많았다.
▐ 連船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왜군은 바닷길로 온 듯하다.
1908#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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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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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4_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
3세기말에 잦았던 왜의 신라침략은 300년 양국이 사신을 교환한 이후 거의 사라졌다. 신라와 백제도 우호관계를 유지했고 366년 처음 외교관계를 튼 백제와 왜도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신라, 백제 그리고 왜 사이의 관계는 391년까지 지속되었다.
한편, 고려는 중국의 정세변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
316년 진나라(西晉)가 망했는데, 이미 311년 흉노족이 수도 뤄양을 약탈하고 황제를 죽이는 등 그 이전부터 중원을 통치할 능력을 상실하였다. 그러자 ...
1908#7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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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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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 直支(腆支) 귀국
❶ 일본서기(720) 285 백제의 아화왕이 죽자 천황은 직지왕을 불러 본국으로 돌아가 왕위를 잇도록 하라며 東韓의 땅을 주어 보냈다. ❷ 삼국사기(1145) 405 아신왕이 죽자 왕의 둘째 동생 훈해가 정사를 대리하면서 태자의 환국을 기다렸는데 막내 동생 혈례가 훈해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전지가 귀국하기를 청하니 왜왕이 병사 100명으로써 호위해 보냈다. 백제 사람들이 혈례를 죽이고 전지를 맞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1908#7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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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5.02_ 속일본기(797)
最弟等言 漢高帝之後曰鸞 鸞之後王狗轉至百濟 百濟久素王時 聖朝遣使徴召文人 久素王即以狗孫王仁貢焉 是文 武生等之祖也 於是最弟及眞象等八人賜姓宿祢
최제 등이 말하기를, 한 고제의 후손으로 앵(鸞)이란 자가 있었고, 앵의 후손인 왕구가 백제로 옮겨갔는데, 백제의 구소왕 때에 왜왕이 사신을 보내어 문인을 불러, 구소왕은 곧 구(狗)의 손자인 왕인을 바쳤다. 이는 문(文), 무생 등의 시조이다. 이에 최제 및 진상 등 8인에게 숙니(宿祢)의 성(姓)을 주었다.
1908#4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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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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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7 燕(後燕) 멸망
모용희는 사치를 일삼고 폭정을 행하여 민심을 잃었다. 또한 402년, 404년에 고구려의 침입을 받아 요동 일대를 모두 상실하고 수도까지 위협받았다. 이에 모용희는 반격을 시도하였으나 무리한 작전으로 희생만 컸을 뿐 모두 실패하였다. 407년 정변이 일어나 모용희가 살해되고 모용보의 양자 모용운(慕容雲 : 고운高雲)이 옹립됨으로써 후연은 멸망하고 북연(北燕)이 성립되었다.
1908#3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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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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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7~0436 연(北燕)
후연 황제의 양자였던 고운은 반란을 일으켜 마지막 황제 모용희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살해되었는데 그러자 고운의 동지였던 풍발이 난을 수습하고 왕위에 올랐다. 풍발이 죽자 풍발의 동생 풍홍이 풍발의 아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북위의 침공을 받고 고려로 망명하였다가 살해되었다.
1908#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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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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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毛末
○ 일본서기(720)에는 신공황후 5년(325년)에 신라가 모마리질지를 보내어 미질허지벌한을 탈출시켰다고 되어 있다.
○ 삼국사기(1145)에는 눌지왕 2년(418년)에 모말이 왜로 가 미사흔을 탈출시켰다고 되어 있다.
○ 삼국유사(1281)에는 눌지왕 10년(426년) 乙丑年(425년)에 제상이 왜로 가 미해를 탈출시켰다고 되어 있다.
● 복호는 장수왕이 즉위한 후 외교 관계를 정비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므로 삼국사기의 기록이 자연스럽다.
1908#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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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6 연(北燕) 패망
북위의 거듭된 침공을 받아 위기에 처한 북연의 풍홍은 435년에 고려에 사신을 보내 유사시 고려로 망명할 수 있기를 요청하였다.
436년 마침내 북위가 토벌을 공표하고 북연을 침공하자 고려는 풍홍을 맞이한다며 북연의 사신이 돌아가는 편에 군사를 딸려보내 북연의 도읍을 약탈하였다. 장수왕은 또 망명해온 풍홍을 모욕하며 심양으로 보냈다. 그러자 풍홍은 유송에 도움을 청했다.
북위에 이어 유송도 고려에 풍홍을 보내라는 요구를 시작하자 장수왕은 풍홍을 죽였다.
1908#4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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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8 宋書(488)
讚이 죽자 아우 珍이 왕이 되어 사신을 보내어 공물을 바쳤다. 스스로 사지절 도독 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 6국제군사 안동대장군 왜국왕이라 불렀다. 표를 올려 바른 벼슬을 요청해와 조서를 내려 안동장군 왜국왕에 봉했다. 珍이 또 왜수 등 13명에게 평서, 정로, 관군, 보국장군의 이름을 붙여 달라 하므로 모두 들어 주었다.
1908#16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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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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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5 후한서(後漢書)
倭在韓東南大海中 依山島為居 凡百餘國 自武帝滅朝鮮 使驛通於漢者三十許國 國皆稱王 世世傳統 其大倭王居邪馬臺國
왜(倭)는 한(韓)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산이 많은 섬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100여개의 나라로 되어 있다. 무제가 조선을 멸망시킨 후, 한(漢)과 사신의 왕래가 통하는 곳이 30여개 된다. 나라의 수장은 모두 왕을 칭하는데 대대로 왕통이 이어졌다. 그 대왜왕(大倭王)은 야마대국(邪馬臺國)에 있다.
1908#26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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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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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58.07 日本書紀(720)
백제의 지진원은 천황이 장차 동침하려는 것을 거스리고 석천순과 몰래 정을 통하였다. 천황이 크게 노하여 대반실옥대련에게 명하여 내목부를 시켜 부부의 사지를 나무에 펼쳐 임시로 만든 시렁 위에 올려 놓고 불에 태워 죽였다. (백제신찬에는 “기사년에 개로왕이 즉위하였다. 천황이 아례노궤를 보내와 여자를 물색하게 하였으므로 백제에서 모니부인의 딸 적계여랑을 잘 꾸며서 천황에게 바쳤다”고 한다.)
1908#25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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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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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1.04 日本書紀(720)
백제 개로왕은 지진원이 불에 타 죽었다는 것을 전해 듣고 의논하기를 “옛날에 여자를 바쳐 채녀로 삼았다. ... 지금부터는 여자를 바치지 않는 것이 옳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그의 아우 군군(곤지)에게 “네가 일본에 가서 천황을 섬겨라.”고 말하였다. ... 개로왕은 임신한 부인을 군군에게 주며 “나의 임신한 아내는 이미 해산할 달이 되었다. 만약 도중에 아이를 낳게 되면, ...
1908#2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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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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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3 日本書紀(720)
(왜) 천황이 전협신의 아들 제군과 吉備海部直赤尾에게 명하여 “너희들은 마땅히 가서 신라를 징벌하라”고 하였다. ... 이에 제군은 명을 받들어 무리를 이끌고 백제에 도착하였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데 나라의 신이 늙은 여자로 변하여 홀연히 길에서 맞이하였다. 제군이 나라의 멀고 가까움을 묻자 늙은 여자가 “다시 하루를 더 간 다음에야 다다를 수 있다”라고 대답하였다. 제군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길이 멀다고 여겨 정벌하지 않고 돌아왔다.
1908#26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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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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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4.02 日本書紀(720)
신라왕은 사람을 시켜 임나왕에게 “고려왕이 우리나라를 정벌합니다. 지금의 시기는 깃대에 묶어놓은 술과 같고 나라의 위태로움은 계란을 쌓아놓은 것보다 더하여 나라 운명의 길고 짧음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일본부 행군원수(日本府 行軍元帥)에게 구원을 청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임나왕이 선신반구, 길비신소리, 난파길사적목자에게 권하여 가서 신라를 구해주도록 했다.
1908#25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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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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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65.03 日本書紀(720)
기소궁숙니·소아한자숙니·대반담련·소록화숙니 등에게 칙명으로 “신라는 본래 서쪽 땅에 있으면서 ... 고려의 조공을 막고 백제의 성을 병탄하였다. 하물며 다시 조빙을 이미 걸렀으며 공물도 바치지 않았음에 있어서이겠는가. ... 그대들 네 경을 대장으로 삼으니 왕사를 거느리고 가 쳐서 하늘이 내리는 벌을 받들어 행하라”고 하였다. ... 얼마 후 남은 무리들이 스스로 물러가니 관군도 따라서 물러났다. 대장군 기소궁숙니는 병에 걸려 죽었다.
1908#27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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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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