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5 高麗史(1451) 登州
安邊都護府 登州는 본래 고구려의 比列忽郡(淺城郡이라고도 한다)으로 신라 556년에 比列州라 하고 군주를 두었는데 경덕왕 때에 朔庭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登州라고 불렀다. 995년에 團練使를 두었다. 1018년에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고종 때에 定平 이남의 여러 성이 몽고의 침입을 받자 江陵道 襄州에 임시로 머물렀다가, 다시 杆城으로 옮겨 거의 40년을 지냈다. 충렬왕 1298년에 각자 본성으로 돌아갔다. 별호는 朔方이다. (성종 때 정하였다.)
http://qindex.info/i.php?x=23136
 0995 高麗史(1451) 高州防禦使
高州는 옛 德寧鎭(洪源郡이라고도 한다)으로 995년에 高州防禦使로 하였다. 1028년에 鳳化山 남쪽에 성을 쌓아 주치를 옮겼다. 1356년에 知州事로 고쳤다.
http://qindex.info/i.php?x=23061
 1390~1393 世宗實錄地理志(1454) 吉州 ⑤ 曷懶河
▐ 起雲嶺을 넘어 浮瑞川을 따라 내려오다 吉州²에서 40리 떨어진 곳에 이르면, 그곳이 바로 초기에 吉州¹를 설치했던 弓漢村이리라. 曷懶가 개마대산 동쪽이니 그곳을 흐르는 曷懶河로는 浮瑞川이 어울린다.
http://qindex.info/i.php?x=23429
 0554.07 三國史記(1145) 百濟 ✘
王欲襲新羅親帥歩騎五十夜至狗川新羅伏兵發與戰爲亂兵所害薨謚曰聖 성왕이 신라를 습격하기 위하여 직접 보병과 기병 5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에 이르렀는데 신라의 복병이 나타나 그들과 싸우다가 왕이 난병들에게 살해되었다. 시호를 聖이라 하였다.
http://qindex.info/i.php?x=25864
 0554.07 三國史記(1145) 新羅 ✘
백제 성왕이 가량과 함께 와서 관산성을 공격하였다. 군주인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 등이 맞서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신주의 군주인 김무력이 주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교전하였는데, 비장인 삼년산군의 고간 도도가 급히 쳐서 백제왕을 죽였다. 이에 모든 군사가 승리의 기세를 타고 크게 이겨서 좌평 네 명과 군사 2만 9천 6백 명의 목을 베었고, 한 마리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http://qindex.info/i.php?x=29622
 0554.09 三國遺事(1281)
백제 병사가 珎城을 침범하여 남녀 3만 9천명과 말 8천 필을 빼앗아 갔다. 이보다 먼저 백제가 신라와 군사를 합하여 고구려를 치자고 하니 진흥왕이 말하기를 “나라가 흥하고 망함은 하늘에 달려 있는데 만약 하늘이 고구려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내 어찌 바라겠느냐.” 하였다. 그리고 이 말을 고구려에 전하니 고구려는 이 말에 감동이 되어서 신라와 평화롭게 지냈다. 그러나 백제가 이것을 원망하여 침범을 한 것이다.
http://qindex.info/i.php?x=24980
 Persephone
_____ was the sweet daughter of Demeter, the goddess of harvest and fertility, and Zeus, the king of the gods. #front #Greece
http://qindex.info/i.php?x=24238
 0522 ❰❰ 0529 下哆唎國守
백제왕이 下哆唎國守 수적압산신에게 이르기를 “무릇 조공하는 사자는 늘 도곡을 피하느라 매번 풍파에 고통을 겪습니다. 이 때문에 가지고 가는 물건이 젖어서 모두 상하여 보기 흉합니다. 가라의 다사진을 신들이 조공하는 나루길로 삼기를 청합니다”라 하였다.
http://qindex.info/i.php?x=8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