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水┆漢城┆漢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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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18 ◾河南 慰禮城
북으로 漢水를 띠처럼 두르고 있다는 河南之地에 慰禮城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慰禮城에서 漢水之南으로 도읍을 옮긴다는 기록과 모순된다. 河南之地에 대한 묘사는 漢水之南에 대한 묘사로도 어울리기 때문에, 원래 漢水之南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慰禮城에 대한 이야기로 변질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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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18 ◾沸流와 温祚의 이동 경로 2
물길로 弥鄒城에 이르렀듯이 다시 물길로 慰禮城에 이르렀을 듯하다. 중랑천을 따라내려오는 북쪽 길과 탄천을 따라 올라가는 남쪽 길이 만나는 漢水의 나루가 좋은 정착지고 慰禮城은 그곳에 있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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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18 ◾弥鄒(忽→)城
彌鄒城은 광개토왕이 396년에 백제로부터 빼앗은 58성의 하나로 나오고 또 그때 광개토왕이 잡아가 자신의 무덤을 돌보는 일을 시키게 한 한국인의 출신지로도 나온다. 따라서 彌鄒城은 백제의 지명이다. 忽은 성을 뜻하는 고려어이므로 彌鄒忽은 고려가 개칭한 것이다. 따라서 백제가 건국되던 시기의 지명으로 弥鄒忽이 나오는 것은 사실 정확하지 않다. 彌鄒城이 더 정확하다. 買는 물을 뜻하는 고려어이므로 買召는 고려가 붙인 이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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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18 慰禮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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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0.02 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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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5 漢山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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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5.05 漢水之南
서울 송파는 북쪽으로는 한강을 띠처럼 두르고 동쪽으로는 남한산을 의지하였으며 남쪽으로는 탄천변의 벌판을 바라본다. 다만 서쪽으로 황해가 조금 떨어져 있으나 그 사이에 적대 세력이 있을만한 공간은 없다. 이곳은 중랑천을 따라 내려오는 침략을 피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河南之地에 대한 묘사는 백제가 한수 이북 위례성에서 漢水之南으로 도읍을 옮길 때 했을 것으로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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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71 漢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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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96 한성과 남한산성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침공을 받은 한성(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은 훗날 이씨조선이 청나라의 침공에 굴복했던 남한산성(주장성)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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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4 ◾古楊州 < 楊州 < 漢陽郡 < 北漢山郡 < 慰禮城
중랑천을 따라 내려와서 한강을 건너 탄천을 따라 올라가려면, 풍납토성과 廣津 맞은 편에 있는 나루에서 건너가는 게 좋고, 楊津이 바로 그 나루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楊州는 峨嵯山 아래가 된다. 왕씨고려때의 楊州는 신라때 漢陽郡이었고 낙랑고려때는 北漢山郡이었다. 이곳은 백제의 慰禮城으로도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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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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