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993.10 高麗史(1451) 01
成宗欲自將禦之 幸西京 進次安北府 契丹東京留守蕭遜寧 攻破蓬山郡 獲我先鋒軍使·給事中尹庶顔等 成宗聞之 不得進乃還 熙引兵欲救蓬山 遜寧聲言 大朝旣已奄有高勾麗舊地 今爾國侵奪疆界 是以來討 又移書云 大朝統一四方 其未歸附 期於掃蕩 速致降款 毋涉淹留 성종이 몸소 방어를 지휘하려고 서경으로 행차하여 안북부로 가려는데, 거란의 동경유수 소손녕이 봉산군을 격파하고 아군의 선봉군사 급사중 윤서안 등을 사로잡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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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1
서희가 군사를 이끌고 봉산군을 구하러 가자, 소손녕이 소리 질러 말하기를, “우리가 이미 고려의 옛 땅을 모두 차지하였는데, 지금 너희 나라가 그 경계를 침탈했으므로, 와서 토벌한다.”라고 하였다. 또 서한을 보내 이르기를, “우리가 천하를 통일하였는데, 귀부하지 않으면 소탕될 것이다. 속히 와서 항복하고 머뭇거리지 말라.”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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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2
熙見書 還奏有可和之狀 成宗遣監察司憲借禮賓少卿李蒙戩 如契丹營請和 遜寧又移書云 八十萬兵至矣 若不出江而降 當湏殄滅 君臣宜速降軍前 蒙戩至營 問所以來侵之意 遜寧曰 汝國不恤民事 是用恭行天罰 若欲求和 宜速來降 서희가 글을 보고 돌아와서 강화할 여지가 있다고 아뢰자, 성종은 감찰사헌 차예빈소경 이몽전을 거란 진영으로 보내 강화를 청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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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2
소손녕이 다시 서한을 보내 이르기를, “80만명의 군사가 당도했다. 만약 강으로 나와 항복하지 않으면 모조리 섬멸될 것이니, 임금과 신하들은 속히 아군 앞에 와서 항복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몽전이 거란 진영에 이르러, 침공해 온 이유를 묻자, 소손녕이 말하기를, “너희 나라가 백성을 구제하지 않으니, 하늘을 대신해 벌을 내리는 것이다. 만약 강화하려거든 빨리 와서 항복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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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2
▐ 速致降款, 宜速降軍前 그리고 宜速來降에서 보듯이 소손녕은 항복을 재촉하고 있다. 이는 소손녕도 전투를 더 치르지 않고 항복만 받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킬 때, 백제가 수차례 왕자들을 보내 항복할테니 돌아가 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소정방이 거부하고 공격을 강행한 것과 대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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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3
蒙戩還 王會群臣 議之 或言 車駕還京闕 令重臣率軍士 乞降 或言 割西京以北之地 與之 自黃州至岊嶺畫爲封疆 可也 王將從割地之議 開西京倉米 任百姓所取 餘者尙多 王恐爲敵所資 令投之大同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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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3
이몽전이 돌아오자, 성종이 여러 신하들을 모아놓고 의논하였다. 어떤 사람은 왕은 개경으로 환궁하고 대신으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항복을 간청하자고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서경 이북의 땅을 갈라 그들에게 주고 황주에서 절령까지를 국경으로 정하자고 하였다. 성종은 땅을 갈라주자는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서경 창고를 열어, 백성들이 마음대로 쌀을 가져가게 하였는데, 여전히 남은 곡식이 많자, 적이 군량미로 사용할까 우려하여, 대동강에 던져버리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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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4
煕奏曰 食足 則城可守 戰可勝也 兵之勝負不在强弱 但能觀釁而動耳 何可遽令棄之乎 況食者民之命也 寧爲敵所資 虛棄江中 又恐不合天意 王然而止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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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4
서희가 아뢰기를, “식량이 넉넉하면 성을 지킬 수 있고 전투에도 이길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의 승패는 강하고 약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의 틈을 잘 살펴 움직이는 데 있습니다. 왜 급하게 식량을 버리라고 하십니까? 식량은 백성의 생명이니, 차라리 적의 군량이 될지라도 어찌 헛되이 강에다 버리겠습니까? 그것은 하늘의 뜻과도 어긋날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성종이 옳은 말이라 여기고 중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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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5
煕又奏曰 自契丹東京至我安北府數百里之地皆爲生女眞所據 光宗取之 築嘉州松城等城 今 丹兵之來其志不過取此二城 其聲言取高句麗舊地者 實恐我也 今見 其兵勢大盛 遽割西京以北 與之 非計也 且三角山以北 亦高句麗舊地 彼以谿壑之欲 責之無厭 可盡與乎 況今割地則誠萬世之恥也 願駕還都城 使臣等一與之戰 然後議之 未晩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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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5
서희가 또 아뢰기를, “거란의 동경으로부터 우리 안북부까지 수백 리 땅은 모두 생여진이 살던 곳인데, 광종이 빼앗아, 가주, 송성 등의 성을 쌓았습니다. 지금 거란이 온 목적은 이 두 성을 차지하려는 것에 불과한데,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하겠다고 떠벌리는 것은 사실 우리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들의 군세가 강한 것만 보고 급히 서경 이북 땅을 떼어 그들에게 주는 것은 잘못된 계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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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5
게다가 삼각산 이북도 고구려의 옛 땅인데, 저들이 끝없는 욕심을 부려 계속 요구한다면 다 줄 수 있겠습니까? 땅을 떼어 적에게 주는 것은 만세의 치욕이오니, 원하옵건대, 주상께서는 도성으로 돌아가시고, 신들에게 한 번 그들과 싸워보게 한 뒤에 다시 의논하는 것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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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6
遜寧以蒙戩旣還 久無回報 遂攻安戎鎭 中郞將大道秀·郞將庾方 與戰克之 遜寧不敢復進 遣人促降 成宗遣和通使閤門舍人張瑩 往契丹營 遜寧曰 宜更以大臣 送軍前面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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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6
소손녕은 이몽전이 돌아간 뒤에도 오랫동안 회답이 없자, 안융진을 공격하였다. 중랑장 대도수와 낭장 유방이 그들을 물리치자, 소손녕은 감히 더 진군하지 못하고 사람만 보내어 항복을 재촉하였다. 성종이 화통사로 합문사인 장영을 거란 진영에 보내니, 소손녕이 말하기를, “대신을 군영 앞으로 보내 대면해야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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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7
瑩還 成宗會群臣問曰 誰能往契丹營 以口舌却兵 立萬世之功乎 群臣無有應者 熙獨奏曰 臣雖不敏 敢不惟命 王出餞江頭 執手慰籍而送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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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7
장영이 돌아오자, 성종은 여러 신하들을 모아 묻기를, “누가 거란의 진영으로 가서 말로써 군사를 물리쳐 만세의 공을 세우겠는가?”라고 하였다. 신하들 가운데 응하는 사람이 없자, 서희가 홀로 아뢰기를, “신이 비록 영민하지는 않지만, 어찌 감히 분부를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성종이 강어귀까지 나와서 손을 잡고 위로하며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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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8
遜寧語熙曰 汝國興新羅地 高勾麗之地 我所有也 而汝侵蝕之 又與我連壤 而越海事宋 故有今日之師 若割地以獻 而修朝聘 可無事矣 소손녕이 서희에게 말하기를, “너희 나라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려 땅은 우리 소유인데, 너희들이 침범해 왔다. 또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바다 건너 송나라를 섬기기 때문에, 오늘의 출병이 있게 된 것이다. 만약 땅을 떼어 바치고 조빙에 힘쓴다면, 무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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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9
熙曰 非也 我國卽高勾麗之舊也 故號高麗 都平壤 若論地界 上國之東京 皆在我境 何得謂之侵蝕乎 且鴨綠江內外 亦我境內 今女眞盜據其閒 頑黠變詐 道途梗澁 甚於涉海 朝聘之不通 女眞之故也 若令逐女眞 還我舊地 築城堡通道路 則敢不修聘 將軍如以臣言 達之天聰 豈不哀納 서희가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가 바로 고구려의 옛 땅이기 때문에, 국호를 고려라 하고 평양에 도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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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09
국경 문제라면 요나라의 동경도 우리 땅인데, 어찌 침범했다고 할 수 있는가? 압록강 안팎 또한 우리 땅인데, 지금 여진이 그 땅을 차지하고 간악하게 속이면서 길을 막고 있으니,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더 어렵다. 조빙이 통하지 않는 것은 여진 때문이니,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돌려주어, 성과 보루를 쌓고 길이 통하게 해준다면, 어찌 감히 조빙을 잘 하지 않겠는가? 장군께서 나의 말을 천자께 전해 준다면, 애틋하게 여겨 들어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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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93.10 高麗史(1451) 10
辭氣慷慨 遜寧知不可强 遂具以聞 契丹帝曰 高麗旣請和 宜罷兵 그 말투가 강개하자 소손녕도 더 이상 강요하기 어렵다고 보고 그대로 보고하였다. 거란의 황제가, “고려가 강화를 요청해왔으면 철수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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