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 설화 - 고려사
by Silla at 2019-05-05
옛날에 성골장군 호경이 백두산으로부터 시작해서 전국을 유람하다가 부소산 기슭의 산골마을에 이르러서는 그곳에 정착하고 결혼도 하여 살게 되었다. 그는 체격이 우람하고 화살도 잘 쏘았으며 또 남부럽지 않게 부유하게 살고 있었으나 아들을 얻지 못해 사냥으로 즐거움을 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사람 아홉 명과 함께 매를 잡으러 나갔다가 날이 어두워지는 바람에 동굴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동굴의 입구를 막고 으르렁 대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자기들 중에서 한 사람을 뽑아 호랑이에게 먹이로 주면 다른 사람들은 살아날 것이라고 판단하고 각자 모자를 호랑이에게 던져 호랑이가 무는 모자의 주인이 그 희생양이 되기로 했다. 그런데 호랑이는 호경의 모자를 물게 되고 호경은 하는 수 없이 굴 밖으로 혼자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호경을 물지 않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는데 바로 그때 사람들이 들어가 있던 굴이 무너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호경은 호랑이가 자신을 살린 것을 깨닫고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 몰사한 사람들을 위해 장사를 지내 주었다. 그랬더니 산신이 홀연히 나타나 자신은 혼자 산을 지키는 과부인데 호경과 부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호경은 산신과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 사람들은 더 이상 호경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호경은 옛 아내를 잊지 못하고 그녀의 꿈속에 자주 나타나더니 마침내 그녀는 호경의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 아이는 이름을 강충이라 지었는데 몸이 단정하고 재주가 많았다. 강충은 영안촌의 부잣집 딸 구치의에게 장가들어 오관산 마가갑에 살았다. 그즈음 풍수에 능한 신라인이 지나다 부소산에 소나무를 심어 바위를 가리고 부소군청을 부소산의 남쪽으로 옮기면 장차 삼한을 통일할 왕이 날 것이라 하므로 강충은 그렇게 하고 지명을 송악군으로 고쳤다. 이후 강충은 벼슬이 높아지고 재산도 많이 늘어났는데 이제건과 손호술이라는 두 아들을 낳았다. 손호술은 지혜로운 사람이었는데 지리산으로 출가하여 이름을 보육으로 고쳤다. 하루는 보육이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곡령재에 올라 남쪽을 향해 오줌을 누었더니 남쪽이 그 오줌으로 바다가 되어버리는 꿈이었다. 형 이제건이 보육의 꿈 이야기를 듣고 비상한 인물을 낳을 태몽이라며 자기 딸 덕주를 아내로 주었다. 보육은 아내와 함께 마가갑에 지어놓은 암자에 살며 두 딸을 두었는데 둘째 딸의 이름은 진의였다. 진의는 얼굴이 곱고 지혜로운 여자였는데 어느 날 언니가 오관산 마루턱에서 오줌을 누니 그 오줌이 천하에 가득 찼다는 꿈 얘기를 하자 비단치마를 주고 언니의 꿈을 사게 되었다.

서기 753년 아직 왕자로 있던 당 숙종은 동방의 산천을 유람하다 송악에 있는 보육의 집에서 묵게 된다. 보육은 숙종이 중국의 귀인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자신의 딸과 맺어 주려 큰 딸을 들여보내 숙종의 찢어진 옷을 꿰매게 한다. 그러나 큰 딸이 방문을 넘다 엎어져 코피가 나게 되므로 둘째딸 진의를 들여보낸다. 한동안 보육의 집에 머물던 숙종은 진의가 자신의 아이를 밴 것을 알고 활과 화살을 주며 아들이 태어나면 전해주라는 말을 남기고 당나라로 돌아간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가 작제건인데 그 아이는 매우 총명하여 숙종이 남긴 활과 화살을 매일 가까이 하더니 신궁이 되었다. 어느 날 작제건은 아버지를 찾으러 당나라로 가는 상선에 타게 되었는데 바다 한 가운데에서 짙은 안개를 만나자 상인들로부터 바다에 버려지게 된다. 그때 용왕이 나타나 늙은 여우 한 마리가 자신을 괴롭히고 있으므로 그 여우를 잡아달라고 작제건에게 간청하였다. 작제건이 마침내 관음보살로 변장해서 용왕을 괴롭히던 여우를 죽이자 용왕은 작제건에게 소원을 한 가지 말해보라고 한다. 작제건이 동방의 왕이 되고 싶다고 하자 용왕은 '건'자가 붙은 자손까지 3대를 내려가야 왕이 나올 수 있다고 알려준다. 그러자 작제건은 동방의 왕 대신 용왕의 사위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자 용왕은 큰딸 처민의를 그에게 내어준다. 작제건은 처민의와 함께 송악으로 돌아와 네 아들을 낳았는데 장남을 용건이라 했다. 용건은 나중에 이름을 융으로 고쳤는데, 어느 날 꿈속에서 한 여인이 나타나 혼인을 간청하고 실제로 길에서 그 여인을 만나게 되자 그 여인과 혼인하게 된다. 용건과 그 여인 사이에 난 아들이 바로 왕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