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2 魏 故 處士 王君 墓誌銘
by Silla on 2020-02-09
기자의 후손을 자처한 것으로 보아 낙랑군이 설치될 때 이 가문은 조선의 토착 세력이었을 것이다. 낙랑군은 대동강 유역에 설치되었으므로 이 비문에서 말하는 낙랑 수성 또한 이 지역에 있었던 그 낙랑 수성을 말한다고 보아야 한다.
게다가 위서에는 영주 낙랑군에 영락과 대방 두 현이 나오지만 수성은 보이지 않는다. 탁발위 때에는 낙랑 수성이란 게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왕기는 482년에 태어났고 그의 6대조 왕파가 연나라에서 벼슬을 한 것으로 보아 이 가문은 낙랑이 멸망한 313년 직후에 낙랑을 따라 요동으로 망명한 것으로 보인다.
王遵과는 어떤 관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