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어원
by Silla at 2019-05-06
'한(韓)'이라는 말은 원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반도의 중남부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한(韓)에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그리고 변한(弁韓)이 있었고 이 셋을 통틀어 삼한(三韓)이라 불렀다.

삼국지(289)
韓在帶方之南 東西以海爲限 南與倭接 方可四千里 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辰韓者 古之辰國也
한(韓)은 대방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倭)와 접경하니 면적이 사방 4천리 쯤 된다. 세 종족이 있으니 첫째는 마한, 둘째는 진한 그리고 셋째는 변한인데 진한은 옛 진국이다.
(대방은 대체로 오늘날의 황해도 지역으로 추정된다. 한과 왜가 접했다는 표현은 삼국지의 다른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바다를 사이에 두고 접해 있었다는 뜻이다.)

이것이 삼한의 첫 번째 의미다. 삼국지(289)나 후한서(445)에는 고려와 한(韓)이 별도로 기술되어 있어 고려는 분명히 이 첫 번째 의미의 삼한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 첫번째 의미의 삼한은 또 한국(韓國)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이것이 한국의 첫 번째 의미다. 한국은 좁은 의미로 마한 또는 백제를 의미하기도 했다.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이 해체되자 이 한국은 거기서 나온 신라, 백제 그리고 임나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 되었다.

삼국지(289)
辰韓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 自言古之亡人避秦役 來適韓國 馬韓割其東界地與之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노인들이 대대로 전하여 말하기를, “옛날의 망명인으로 진나라의 고역을 피해 한국(韓國)으로 왔는데 마한이 그들의 동쪽 땅을 분할해서 우리에게 주었다.”

일본서기(720)
天皇詔田狹臣子弟君與吉備海部直赤尾曰 汝宜往罰新羅 於是 西漢才伎歡因知利在側 乃進而秦曰 巧於奴者 多在韓國 可召而使 天皇詔群臣曰 然則宜以歡因知利 副弟君等 取道於百濟 幷下勅書 令獻巧者
(463년) 천황이 전협신의 아들 제군과 길비해부직적미에게 명하여 “너희들은 마땅히 가서 신라를 징벌하라”고 하였다. 이 때 서한 재기 환인지리가 옆에 있다가 나아가 “저희들보다 뛰어난 자가 한국(韓國)에 많이 있으니 불러서 부릴만합니다”라고 아뢰었다. 천황이 여러 신하들에게 “그러면 마땅히 환인지리를 제군 등에게 딸려 보내 백제 길을 취하고 아울러 칙서를 내려 재주가 뛰어난 자를 바치게 하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이후 한국이란 말은 일본을 제외하고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
한편, 삼한은 삼한의 한 축이던 임나가 562년에 신라에 병합되자 점차 신라, 백제 그리고 고려를 아울러 가리키는 말로 변하게 되었다. 이것이 삼한의 두 번째 의미다. 이 삼한은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한동안 혼란이 있었다.

구당서(945)
(651년 의자왕에게 보내는 당 고종의 조서) 해동의 세 나라는 개국한지 오래이며, 국토가 나란히 있어 실로 개의 이빨처럼 국경이 들쭉날쭉 서로 닿아 있소. 근래에 와서 드디어 국경을 다투고 침공을 하여 조금도 편안할 해가 없었소. 마침내 삼한의 백성(三韓之氓)으로 하여금 목숨이 도마 위에 놓이게 하고, 창을 찾아 분풀이를 하는 것이 아침저녁으로 거듭되니, 짐이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림에 있어 깊이 안타까워하는 바이오.

삼국사기(1145)
(692년 신문왕의 말) “우리나라의 선왕 춘추(태종무열왕)의 시호가 우연히 성조(당 태종)의 묘호와 중복되었다. 조칙으로 고치라고 하니, 내 어찌 감히 명령을 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생각하건대 선왕 춘추는 매우 훌륭한 덕을 지닌 분이시다. 더구나 살아생전에 김유신이라는 어진 신하를 얻어 한 마음으로 정사에 힘써 삼한을 통일하였으니(一統三韓) 그가 이룬 업적이 많지 않다 할 수 없다.”
伏聞東海之外有三國其名 馬韓 卞韓 辰韓 馬韓 則髙麗 卞韓 則百濟 辰韓 則新羅也
(최치원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그곳 관리에게 보낸 편지) “엎드려 듣건대 동쪽 바다 밖에 삼국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마한, 변한 그리고 진한이었습니다. 마한은 고려, 변한은 백제 그리고 진한은 신라입니다.”
(최치원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그곳 관리가 되었으나 885년 신라로 돌아온 이후 신라조정을 위해 일했다.)

이조초기 권근은 마한은 백제, 변한은 고려 그리고 진한은 신라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과 같이 마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 그리고 변한은 가야라는 생각은 17세기 한백겸의 주장이 통설로 굳어진 이후의 일이다.
1897년 이씨조선의 고종은 제국을 선포한다.

조선왕조실록(1897)
朕惟檀 箕以來 疆土分張 各據一隅 互相爭雄 及高麗時 呑竝馬韓 辰韓 弁韓 是謂統合三韓 ... 朕揖讓者屢 無以辭 於今年九月十七日 告祭天地于白嶽之陽 卽皇帝位 定有天下之號曰大韓 以是年爲光武元年 ...
짐은 생각건대, 단군과 기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 때에 이르러서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을 통합한 것이다. ... 짐이 누차 사양하다가 끝내 사양할 수 없어서 올해 9월 17일 백악산의 남쪽에서 천지에 고유제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고 이해를 광무 원년으로 삼으며, ...

대한제국의 국호는 삼한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을 국호로 정하였고 1948년에는 반도 남부에 수립된 민족국가가 이 국호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대한민국을 간략히 한국(韓國)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이 한국의 두 번째 의미다.
이후 대한민국과 반도 북부에 건국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 서로 정통성 경쟁을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韓)'이라는 말은 반도남부에서 우리를 지칭하는 유일한 고유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그 이전에는 보통 우리 스스로를 '조선인(朝鮮人)'이라고 불렀었는데 서구에서 민족의 개념이 도입되면서부터 한국에서는 '한민족(韓民族)'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김씨조선에서는 '조선민족(朝鮮民族)'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