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2~0037 낙랑예후설(樂浪濊侯說) 1
by Silla on 2021-01-21
삼국사기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모순을 가지고 있다.

(1) 낙랑군은 30년에 광무제가 태수 왕준을 보내 왕조가 일으킨 난을 진압하게 했는데, 32년에 최리의 낙랑국이 되어 있을 수 있나?
(2) 낙랑군은 치소가 대동강 유역에 있었는데, 그 수장이 옥저까지 행차할 수 있었나?
(3) 낙랑군은 44년에 韓의 일부가 스스로 복속해 올 정도로 강성한 상태였는데, 37년에 고려에 병합될 수 있었나?

따라서 여기에 나오는 낙랑국은 낙랑군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광무제는 30년에 낙랑군 동부도위를 폐지하고 그 지역의 우두머리를 현후로 삼았는데, 이때 예의 여러 현들은 모두 후국이 되었다.
혹시 최리의 낙랑국은 이 후국 중 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설정하면 한나라 낙랑군에서 빠지자마자 고려가 병합하였다거나 예에 인접한 옥저로 수장이 행차를 나갔다거나 하는 이야기들과 잘 어울리게 된다.
낙랑국과 고려의 혼인관계는 신라에 병합되기 전의 가라가 신라와 혼인관계를 맺은 것을 연상시킨다.
고려는 56년에 옥저를 정벌했는데 옥저보다 가까이에 있는 예는 정벌했다는 기록이 없다. 삼국지(289)에는 예가 한나라 말기에 다시 고려에 복속되었다고 되어 있어 그 전에도 고려에 복속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후한서(445)에는 118년에 고려가 예맥과 함께 현도를 침략하고 화려성을 공격하였다고 되어 있어 예가 118년 이전에 고려에 복속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낙랑국을 예후국으로 설정하면 37년에 예가 고려에 병합된 것이 되므로 이 부분들은 잘 설명될 수 있다.
참고로, 낙랑을 예로 보는 것은 삼국사기의 일부 기록에만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