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 신공황후편 분석
by Silla on 2021-01-12
일본서기(720)는 처음에 설화로 시작해서 점점 역사를 기술하게 되는데 신공황후 편에 이르러서도 설화와 역사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있다. 이 점은 유교적인 합리주의에 입각하여 설화를 간략하게 소개만 해놓고 있는 삼국사기(1145)와 대조를 이룬다.
일본서기 신공황후 편은 원년부터 69년까지 기록이 있다.
그런데 14년부터 38년까지는 기록이 없다. 이 기간을 B라 부르기로 하고 원년부터 13년까지의 기록은 A라 부르기로 한다.
39년부터 43년까지는 삼국지의 기록을 옮겨놓았는데 이 기록들은 C라 부르기로 한다.
나머지 46년부터 69년까지의 기록은 D라 부르기로 한다.
D는 마지막 기록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 관련 기록이다. 이것은 백제의 기록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D는 다시 백제의 왕위 계승을 다룬 부분을 갈라 D2라 하고 나머지는 D1이라 하기로 한다.

A(00~13) 00, 01, 02, 03, 05, 13
B(14~38)
C(39~43) 39, 40, 43
D(46~69) 46, 47, 49, 50, 51, 52, 55, 56, 62, 64, 65, 69
D1 46, 47, 49, 50, 51, 52, 62
D2 55, 56, 64, 65

A에는 신라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남편이 왜군에게 살해되자 아내가 왜의 사신을 유인하여 살해한다거나 왜에 볼모로 간 왕자를 구출하고 자신은 잔혹한 죽임을 당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로 모두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등장하는 인물도 파사매금, 우류조부리지간, 미질기지파진간기 그리고 모마리질지로 각각 삼국사기에 나오는 파사이사금, 우로, 미사흔 그리고 모말에 대응된다. 따라서 A에 나오는 사건과 인물은 역사적 사실로 인정된다.
그러나 동일한 사건에 대해 신라왕이 파사매금이라는 이야기와 우류조부리지간이라는 이야기가 병존하고 있어 사건의 시점에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것은 다른 기록과 비교해서 판단해야 한다.
삼국사기에는 파사가 80년부터 112년까지 왕으로 재임했다고 되어 있고 우로는 249년 또는 253년에 살해되었다고 되어 있다. 또 미질이 볼모로 보내진 것은 402년이고 모말이 그를 구출하고 죽은 것은 418년이라고 되어 있다. A의 연대를 200년부터 213년까지로 하든 320년부터 333년까지로 하든 일본서기와 삼국사기는 시점이 맞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앞뒤의 정황을 볼 때 삼국사기의 시점이 훨씬 자연스럽다. 그래서 삼국사기의 시점을 역사적 사실로 판단한다.
(우로가 피살된 사건의 시점은 삼국사기에도 문제가 있어 309년으로 조정한다.)

B의 기간은 25년에 달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도 348년부터 365년까지의 시기에 기록이 없다. B를 2주갑 인하하면 334년부터 358년까지가 되므로 일본서기와 삼국사기의 기록 공백이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것이 된다.

C는 왜여왕 비미호와 관련된 삼국지의 기록을 옮긴 것이다. 일본서기의 편찬자는 신공황후를 이 비미호로 인식한 듯하다. 그래서 이 삼국지의 시점에 맞추다보니 사건이 옮겨진 것이 아닐까?

D는 마지막 기록을 제외하고는 일본서기 신공황후 편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이 중 D2는 삼국사기와 정확히 120년의 차이가 난다. 왕의 명칭만 초고-귀수-침류-진사로 이어진다고 하여 근초고-근구수-침류-진사로 이어졌다는 삼국사기와 약간 차이가 날 뿐이다.
그런데 일본서기의 년도는 삼국지(289)와 진서(648)에 나타나는 당시의 정황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삼국사기의 년도를 역사적 사실로 설정한다.
고대에는 갑자년, 을축년, 병인년, ... 등과 같이 10간과 12지를 조합하여 년도를 표시했기 때문에 60년마다 같은 명칭이 반복된다. 옛 사료에 기록된 년도를 해독할 때 60의 배수만큼 착오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서기의 신공황후조와 이어지는 응신천황조에는 이처럼 년도가 120년 거슬러 표기된 것이 많다. 이것을 이주갑인상(二周甲引上)이라 한다.
한편, D1에 나오는 왜와 백제의 교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44
久氐·彌州流·莫古, 백제>탁순>백제
46
斯摩宿禰, 왜>탁순>왜
爾波移·過古, 탁순>백제>탁순
47
久氐·彌州流·莫古, 백제>왜
千熊長彦, 왜>신라
49
荒田別·鹿我別, 久氐, 왜>탁순
沙白·蓋盧, 탁순>백제>탁순
木羅斤資·沙沙奴跪, 백제>탁순
肖古·貴須, 백제>의류촌
50
荒田別, 백제>왜
千熊長彦·久氐, 백제>왜
(久氐, 왜>백제)
51
久氐, 백제>왜
千熊長彦·久氐, 왜>백제
52
千熊長彦·久氐, 백제>왜

그런데 49년의 사건은 엄청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기록에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일본서기가 없던 사건을 만들어 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니 이 사건도 있기는 있었을 것이다.
이 기록과 가장 근접한 것은 광개토왕릉비의 391년조 기록이다.
그래서 신공황후 49년의 기록을 391년에 일어난 것으로 설정한다.
신라는 392년부터 고려에 볼모를 보내기 시작했고 백제는 397년부터 왜에 볼모를 보내기 시작했으니 391년에 이러한 사건이 있었다고 설정하는 것은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