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2 0262 일본서기(720)
by Silla on 2020-02-09
신라가 조공해오지 않았다. 그 해에 습진언을 파견하여 신라를 치도록 하였다.
백제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임오년(壬午年)에 신라가 귀국을 받들지 않으므로 귀국이 사지비궤(沙至比跪)를 보내어 이를 치도록 하였다. 신라인은 미녀 두 명을 단장시켜서 나루에서 사지비궤을 맞이하여 유혹하였다. 사지비궤는 그 미녀를 받고는 도리어 가라국을 쳤다. 가라국의 왕 기본한기(己本旱岐)와 아들 백구지(百久至), 아수지(阿首至), 국사리(國沙利), 이라마주(伊羅麻酒), 이문지(爾汶至) 등은 그 인민을 데리고 백제로 도망해 왔다. 백제는 이들을 두터이 대우하였다. 가라국 왕의 누이인 기전지(旣殿至)가 대왜(大倭)에 가서 ‘천황은 사지비궤을 보내어 신라를 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지비궤는 신라의 미녀를 받고 신라를 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를 멸망시켜 형제, 인민 모두가 떠도는 신세가 되니 걱정스러운 마음에 견딜 수가 없어 이렇게와서 아룁니다.’라고 말하였다. 천황은 매우 노하여 목라근자를 보내 병사를 이끌고 가서 가라에 모여 그 나라의 사직을 복구시키도록 하였다.” 어떤 책에서는 “사지비궤는 천황이 노하였음을 알고 감히 공공연히 귀국할 수 없어 몰래 잠입하였다. 그 누이동생은 황궁에서 일하고 있었다. 비궤는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천황의 노여움이 풀렸는지 어떤지를 알아보게 하였다. 누이동생은 꿈을 핑계 삼아 ‘어젯밤 꿈에서 사지비궤를 보았습니다.’라고 아뢰자 천황은 ‘어떻게 감히 비궤가 돌아올 수 있는가.’라며 몹시 분노하였다. 누이동생이 이말을 전하자 비궤는 용서받지 못할 것을 알고 석굴에 들어가 죽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