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 설화 - 삼국유사(1281)
by Silla at 2019-05-07
가락국기는 문종(1019-1083) 대강 연간(1075-1085)에 금관(김해) 지주사의 문인이 지은 것으로 이제 그것을 줄여서 싣는다.
개벽 이후로 이곳에는 아직 나라의 이름이 없었고 또한 군신의 칭호도 없었다. 이때에 아도간·여도간·피도간·오도간·유수간·유천간·신천간·오천간·신귀간 등 아홉 간(干)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는 추장으로 백성들을 통솔했으니 모두 100호, 7만 5,000명이었다. 대부분은 산과 들에 스스로 모여서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 곡식을 먹었다.
후한의 세조 광무제 건무 18년 임인 3월 계욕일에 살고 있는 북쪽 구지(이것은 산봉우리를 일컫는 것으로 十朋이 엎드린 모양과도 같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부르는 것이 있었다. 백성 2, 3백 명이 여기에 모였는데 사람의 소리 같기는 하지만 그 모습을 숨기고 소리만 내서 말하였다. “여기에 사람이 있느냐.” 아홉 干 등이 말하였다. “우리들이 있습니다.” 또 말하였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구지입니다.” 또 말하였다. “황천이 나에게 명하기를 이곳에 가서 나라를 새로 세우고 임금이 되라고 하여 이런 이유로 여기에 내려왔으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봉우리 꼭대기의 흙을 파면서 노래를 부르기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먹으리’ 라고 하고, 뛰면서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대왕을 맞이하여 기뻐 뛰게 될 것이다.”
9 干들은 이 말을 따라 모두 기뻐하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러러 쳐다보니 다만 자줏빛 줄이 하늘에서 드리워져서 땅에 닿았다. 그 줄이 내려온 곳을 따라가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합을 발견하고 열어보니 해처럼 둥근 황금 알 여섯 개가 있었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놀라고 기뻐하여 함께 백번 절하고 얼마 있다가 다시 싸서 안고 아도간의 집으로 돌아와 책상 위에 놓아두고 그 무리들은 각기 흩어졌다. 12시간이 지나 그 이튿날 아침에 무리들이 다시 서로 모여서 그 상자를 열어보니 여섯 알은 변화해서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는데 용모가 매우 훤칠하였다. 이에 이들을 평상 위에 앉히고 여러 사람들이 절하고 하례하면서 극진히 공경하였다. 나날이 자라 10여 일이 지나자 신장은 아홉 자나 되었으니 은(殷)의 천을과 같고, 얼굴은 용처럼 생겼으니 한(漢)의 고조와 같고, 눈썹에는 팔채가 있으니 당(唐)의 고(高, 정종의 이름 堯를 피하기 이해 쓴 것)와 같고, 눈동자가 겹으로 되어 있으니 우(虞)의 순(舜)과 같았다. 그달 보름에 왕위에 올랐다. 세상에 처음 나타났다고 해서 이름을 수로(首露)라고 하였다. 혹은 수릉(首陵, 죽은 후의 시호)이라고도 한다.
나라 이름을 대가락이라 하고 또한 가야국이라고도 하니 곧 여섯 가야 중의 하나이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각 가서 다섯 가야의 임금이 되니 동쪽은 황산강, 서남쪽은 창해, 서북쪽은 지리산, 동북쪽은 가야산이며 남쪽은 나라의 끝이었다.
그는 임시로 대궐을 세우게 하고 거처하면서 다만 질박하고 검소하니 지붕에 이은 이엉을 자르지 않고, 흙으로 쌓은 계단은 3척이었다.
즉위 2년 계묘 정월에 왕이 말하기를, “내가 서울을 정하려 한다”라고 하고 이내 임시 궁궐의 남쪽 신답평(이는 옛날부터 묵은 밭인데 새로 경작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에 나가 사방의 산악을 바라보고 좌우 사람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이 땅은 협소하기가 여뀌 잎과 같지만 수려하고 기이하여 16 나한이 살 만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1에서 3을 이루고 3에서 7을 이루니 7 성(聖)이 살 곳은 여기가 가장 적합하다. 이곳에 의탁하여 강토를 개척해서 마침내 좋은 곳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느냐.” 이곳에 1,500보 둘레의 성과 궁궐과 전우 및 여러 관청의 청사와 무기고와 곡식 창고의 터를 만들어 두었다. 일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와 두루 나라 안의 장정, 인부, 공장들을 불러 모아서 그달 20일에 성 쌓는 일을 시작하여 3월 10일에 공사를 끝냈다. 그 궁궐과 옥사는 농사일에 바쁘지 않은 때를 기다려 이용하니 그해 10월에 비로소 시작해서 갑진 2월에 완성되었다. 좋은 날을 가려서 새 궁으로 거동하여 모든 정사를 다스리고 여러 일도 부지런히 보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