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정체성
by Silla at 2019-05-09
한국통일 이전에는 신라와 고려가 서로를 동족으로 인식했다는 기록이 없다. 오히려 신라와 고려가 서로를 다른 종족으로 인식했다는 기록은 간혹 보인다.
광개토왕릉비(414)에는 광개토왕이 '내가 몸소 다니며 약취해 온 한인(韓人)과 예인(穢人)들만을 데려다가 무덤을 수호·소제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있고, 중원고려비(449)에서는 신라를 동이(東夷)라 불렀으며, 삼국유사(1281)에는 신라가 황룡사 9층탑을 세운 목적을 소개해 놓았는데, 주변의 아홉 오랑캐를 물리치기 위한 것이라 한다. 그 아홉 오랑캐는 다음과 같다.

제1층은 일본 , 제2층은 중화 , 제3층은 오월 , 제4층은 탁라(托羅) , 제5층은 응유(鷹遊) , 제6층은 말갈 , 제7층은 거란 , 제8층은 여적, 제9층은 예맥(穢貊)이다.

여기서 탁라는 제주이고 응유는 백제 그리고 예맥은 고려다.
중국은 고려를 요동으로 인식하였는데, 중국이 고려왕에게 내린 벼슬에 이것이 잘 나타나 있다.
처음에는 요동군개국공(遼東郡開國公) 또는 요동군공(遼東郡公)의 벼슬을 내리다가 나중에 가서는 요동군왕(遼東郡王)이란 벼슬을 내렸다. 고려왕에 대한 호칭은 고구려왕(高句麗王)에서 고려왕(高麗王)으로 바뀌었는데, 때로는 요동왕(遼東王)이라고도 했다.
고려도 스스로를 요동이라 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