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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la on 2026-01-12
훈요십조 8조에서 왕건이 경계하라고 한 사람들은 두 부류인데, 하나는 차령과 금강 남쪽 주민들이고 또 하나는 관청에 소속된 노비 및 나루와 역의 잡척입니다.
차령과 금강 남쪽 주민들을 경계하라고 한 이유는 산의 모양과 땅의 기세가 거꾸로 뻗어 있어 인심이 나쁘고 또 통합당한 원한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통합당한 원한은 견훤백제가 실패하면서 당연히 생겨났을 것이나 산수 운운한 것은 지덕이 다해 신라가 망했다는 훈요십조의 2조처럼 풍수지리적 미신에서 나왔으므로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지역에는 원래 나주가 제외되었고 전주로만 한정되기도 했는데, 전주와 나주가 합쳐져 전라도가 된 이후로는 주로 전라도로 언급되었으며, 백제로 지칭되기도 했습니다.
전라도는 산과 물이 거꾸로 쏠려 있어 인심이 지극히 험하다는 세종의 말이나 전라도는 옛 백제의 땅인데 견훤이 남긴 풍습을 아직 고치지 못하였다는 성종의 말을 통해 이를 알 수 있죠.
이 때문에 일본의 역사학자 이마니시 류는 왕건이 전라도 나주 출신을 우대한 예를 들어 전라도를 경계하라는 훈요십조 8조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한편, 관청에 소속된 노비 및 나루와 역의 잡척은 훗날 차령과 금강 남쪽 주민들을 경계하라는 이유와 혼동되어 이씨조선의 태조실록에서는 왕씨고려의 역자, 진척 그리고 부곡 사람들이 왕건의 명령을 거역하여 천역에 처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양수척과도 혼동되어 고려사에서는 양수척을 왕건이 백제를 공격할 때 제압하기 어려웠던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0943 「高麗史(1451)」
車峴以南 公州江外 山形地勢 並趨背逆 人心亦然
彼下州郡人 㗸統合之怨 犯蹕生亂
官寺奴婢 津驛雜尺 姦巧言語 弄權亂政 以致災變者 必有之矣

1011 「高麗史(1451)」
全州卽古百濟 聖祖亦惡之

1216 「高麗史(1451)」
楊水尺 太祖攻百濟時 所難制者遺種也

1300 「高麗史(1451)」
昔我始祖 垂誡于後嗣子孫云
凡此賤類 其種有別 愼勿使斯類從良

1392 「太祖實錄(1413)」
前朝五道兩界驛子津尺部曲之人 皆是太祖時逆命者 俱當賤役

1394 「太祖實錄(1413)」
前朝太祖垂戒後昆 勿用百濟人

1440 「世宗實錄(1454)」
全羅道 山水背注 人心至險

1475 「成宗實錄(1499)」
全羅道古百濟地也 民染甄萱餘習至今未能盡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