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과 농경민
by Silla on 2021-02-14
ᐥ오환과 선비는 유목민이고 부여, 고구려 그리고 읍루는 농경민이었다. 부여와 고구려인의 주된 관심은 토양이 곡식의 생산에 얼마나 적합한지였다. 부여와 고구려에서 유목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무데도 없고 부여와 고구려인의 유골을 분석해 보아도 채식을 위주로 했다는 사실만 밝혀질 뿐이다. 그런데 고구려와 읍루는 농업 생산력이 낮아서 노략질을 많이 하였다.ᐥ

○ 오환
隨水草放牧 居無常處 以窮廬爲宅
물과 풀을 따라 다니며 방목하였으며 일정한 장소에 살지 않고 궁려를 거처로 삼았다.
米常仰中國
곡식은 늘 중국에 의지하였다.
祝天地山川之神
하늘, 땅, 산, 강의 신에게 기원한다.

○ 선비
其言語習俗與烏丸同
선비의 언어와 습속은 오환과 같다.

○ 동부여
東海之濵有地 號曰迦葉原 土壤膏腴冝五穀 可都也 阿蘭弗遂勸王 移都於彼 國號東扶餘
동해의 물가에 땅이 있는데 이름이 가섭원이라 하고 토양이 기름지고 오곡이 자라기 알맞으니 도읍할 만하다고 하였습니다.
아란불이 마침내 왕에게 권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라 하였다.

○ 부여
多山陵廣澤 於東夷之域最平敞 土地宜五穀 不生五果
구릉과 넓은 들이 많아서 동이 지역에서는 가장 넓고 평탄한 곳이다. 토질은 5곡이 자라기에는 적당하지만 5과는 생산되지 않는다.

○ 고구려
至卒夲川 觀其土壤肥羙 山河險固 遂欲都焉 而未遑作宫室 伹結廬於沸流水上居之
졸본천에 이르렀다.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과 물이 험하고 단단한 것을 보고 드디어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어 단지 비류수 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臣逐豕至國内尉那巖 見其山水深險 地冝五穀 又多麋鹿魚鼈之産 王若移都 則不唯民利之無窮 又可免兵革之患也
신이 돼지를 쫓아 국내위나암에 이르렀는데, 그 산수가 깊고 험준하며 땅이 오곡을 키우기에 알맞고, 또 순록, 사슴, 물고기, 자라가 많이 생산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왕께서 만약 도읍을 옮기시면 단지 백성의 이익이 무궁할 뿐만 아니라 전쟁의 걱정도 면할 만합니다.
多大山深谷 無原澤 隨山谷以爲居 食澗水 無良田 雖力佃作 不足以實口腹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넓은 들은 없어 산골짜기에 의지하여 살면서 산골의 물을 식수로 한다. 좋은 밭이 없으므로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식량이 충분하지 못하다.
其人性凶急喜寇鈔
그 나라 사람들의 성질은 흉악하고 급하며 노략질하기를 좋아한다.
※寇 도적 구, 鈔 노략질할 초
於所居之左右立大屋 祭鬼神 又祀靈星社稷
거처하는 좌우에 큰 집을 건립하고 귀신에게 제사지낸다. 또 영성과 사직에도 제사를 지낸다.
※영성은 농업을 관장하는 신으로 모셔진 별이고 사직은 토지와 곡식의 신이다.

○ 읍루
其土地多山險
그 지역은 산이 많고 험준하다.
有五穀·牛·馬·麻布
5곡과 소·말·삼베가 산출된다.
處山林之間常穴居
항상 산림 속에서 살며 혈거 생활을 한다.
其國便乘船寇盜鄰國患之
그 나라는 배를 타고 다니면서 노략질을 잘 하므로 이웃 나라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