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in the 9,542 webpages bookmarked by 14 users. Add your homepage.
Recent Popular Pages Updated on 2018.02.27
0636 주서(周書) | R | C
고구려의 국도는 평양성으로, 그 성은 동서가 6리이며 남쪽으로는 패수에 닿아 있다. 성안에는 오직 군량과 무기를 비축하여 두었다가 적군이 침입하는 날에는 곧 성안으로 들어가서 굳게 지킨다. 왕은 따로 그 곁에 궁실을 마련하였으나 평상시에는 거기에 살지 않는다. 그 밖에 국내성과 한성(漢城)이 있으니, 별도의 도읍지이다.
Helan Mountains | R | C
2018-02-24 02:58
0065-03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 C
밤에 왕이 金城 서쪽의 始林 나무들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자 호공을 보내 살펴보니 금색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고하니 왕은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게 했다. 작은 남자아이가 그 안에 있었는데 자태가 뛰어나게 훌륭했다.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많아 이름을 閼智라 했다. 금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金氏라 했다. 시림의 이름을 雞林으로 고치고 국호를 삼았다.
0065-03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 C
밤에 왕이 金城 서쪽의 始林 나무들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자 호공을 보내 살펴보니 금색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고하니 왕은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게 했다. 작은 남자아이가 그 안에 있었는데 자태가 뛰어나게 훌륭했다.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많아 이름을 閼智라 했다. 금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金氏라 했다. 시림의 이름을 雞林으로 고치고 국호를 삼았다.
0369-09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R | C
고구려 고국원왕이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雉壤)에 와서 진을 치고는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약탈하였다. 근초고왕이 태자를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를 급히 쳐서 깨뜨리고 5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14 釗 | R | C
리(利)의 아들은 쇠(釗)인데 열제 때에 모용씨와 서로 싸움을 벌였다.
13 乙弗利 | R | C
그(位宮)의 현손은 을불리(乙弗利)다.
0521 제번공직도(526-539) 사로국 | R | C
國王不能自通使聘 普通二年 其王姓募名泰 始使隨百濟奉表献方物 신라 국왕은 스스로 사신을 파견할 능력이 없었다. 521년에 성이 모(募)이고 이름이 태(泰)인 왕이 처음으로 백제 사신 편에 사신을 딸려보내 표문을 올리고 방물을 바쳤다. 無文字 刻木為範 言語待百濟而後通焉 문자가 없고 나무에 금을 새겨 표시하였다. 신라 사신은 백제 사신이 말한 다음에 통한다.
Qindex.info 2004,   Introduction | 소개 | 介绍 | 導入 | qindex.inf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