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8
5.18 진상규명위원회는 4년간의 조사 끝에 발포명령자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다음달에 활동을 마칠 예정이다.┆체로키 문건 작성자는 발포 명령자가 현장 지휘관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전두환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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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03 포항 냉수리 신라비
斯羅喙斯夫智王 사라의 달부 소속인 사부지왕┆沙喙至都盧葛文王 사달의 지도로 갈문왕┆喙尒夫智壹干支 달의 이부지 일간지┆沙喙壹夫智奈麻 사달의 일부지 내마┆喙眈須道使心訾公 달의 탐수도사 심자공┆喙沙夫那·斯利 달의 사부나와 사리┆沙喙蘇那支 사달의 소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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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우리 안의 식민사관
新식민사관은 민중들이 각성하여 미군철수 자주화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민중들의 이목을 일제 식민사관 문제로 묶어두려 애쓴다. 이덕일은 그 신식민사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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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 일본서기(720)는 6세기 신라의 금석문에 나오는 沙喙部를 沙㖨部로 표기하고 喙己呑을 㖨己呑으로도 쓰는 것으로 보아, 喙과 㖨을 구별하지 않은 듯하다. 이는 일본서기에 별개로 나오는 㖨國과 喙地가 같은 곳일 가능성을 열어준다. 실제로 두 지역을 같은 곳으로 간주해도 이야기가 어색하지 않다. 또 㖨國과 喙地는 삼국사기의 達伐과도 잘 어울린다. 만약 喙地가 達伐이라면 喙는 '달'로 발음되었을 듯하다. 喙는 '부리 달'이란 뜻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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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達伐城을 쌓고 나마 극종을 성주로 삼았다. ❷ 㖨己呑·喙己呑·㖨國·喙地(720 일본서기) = 達伐(1145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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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6~1861 東輿圖 @大塚
▐ 이 대총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는 '江東縣의 북쪽으로 30리에 있으며 刀亇山에 있는데 속담에 옛 황제의 무덤(古皇帝墓)이라 전한다'고 되어 있다. 용비어천가(1447)에서 국내성을 大金皇帝城으로 인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고려가 망하면서 발해와 요나라를 거쳐 금나라에 점유되었던 지역의 고려 유적을 왕고인들은 금나라의 것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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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6~1861 東輿圖 @大塚
▐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 江東縣의 서쪽으로 3리에 있으며 둘레 4백 10척으로 속담에 檀君墓라 전한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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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東明 - 동명왕릉 날조와 단군릉 날조
추모왕의 무덤은 졸본에 있었지만 고려계승을 내세운 왕건에게 고려 시조의 무덤은 서경에 있어야 했다. 동명왕릉이 날조되었다면 의심의 눈초리는 왕건에게 보낼 수 밖에 없다.┆단군은 실존하지 않았던 인물이지만 공산주의의 붕괴로 새로운 통치 이념이 필요했던 김일성에게 민족 시조의 무덤은 평양에 있어야 했다.┆동명왕릉과 단군릉 모두 릉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고 고고학자에게 발굴하게 하면 둘다 낙랑고려의 무덤으로 판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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