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6~0220 후한과 고구려의 갈등
고구려는 유주의 요동군 및 현도군과 충돌을 자주 하였다. 공손씨가 요동을 장악하고 난 뒤에는 공손씨의 침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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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0075 삼국지(289)
뒤에 이(夷)·맥(貊)의 침략을 받아 군(郡, 현도군)을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니 지금의 이른바 현도의 고부라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옥저는 다시 낙랑에 속하게 되었다. 한나라는 그 지역이 넓고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단단대령의 동쪽에 있는 지역을 나누어 동부도위를 설치하고 불내성에 치소를 두어 별도로 영동 7현을 통치하게 하였다. 이 때에 옥저도 모두 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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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35 위서(554)
세조 때에 쇠(釗 고국원왕)의 증손 련(璉 장수왕)이 처음으로 사신 안동을 파견하여 표를 올리고 방물을 바치면서 아울러 나라 이름을 물었다. 세조가 그 정성을 가상히 여겨 조명으로 제계의 이름 자(字)를 그 나라에 내려 주고 원외산기시랑 이오를 파견하여 련을 도독요해제군사 정동장군 영호동이중랑장 요동군개국공(遼東郡開國公) 고구려왕(高句麗王)에 배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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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86~0534 위서(554) 營州
營州領郡六縣十四昌黎郡領縣三龍城廣興定荒建德郡領縣三石城廣都陽武遼東郡領縣二襄平新昌樂良郡領縣二永洛帶方冀陽郡領縣二平剛柳城營丘郡領縣二富平永安 영주(6군,14현) - 창려군(201호,용성,광흥,정황), 건덕군(200호,석성,광도,양무), 요동군(131호,양평,신창), 낙랑군(219호,영락,대방), 기양군(89호,평강,유성), 영구군(182호,부평,영안). ● 현도군과 고구려현이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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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8 ᑅ 한서(82) 玄菟郡
玄菟郡戶四萬五千六口二十二萬一千八百四十五縣三高句驪上殷台西蓋馬 현토군은 45,006호에 221,845구다. 현은 고구려, 상은태 그리고 서개마가 있다. ● 고구려가 등장하는 최초의 기록이다. 소속된 현으로 보아 옥저에 설치했던 초기의 현도군이 아니라 서북쪽으로 이전한 후의 현도군을 말하는 듯하다. 한서가 전한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전한 말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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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縣과 고구려國
고구려가 등장하는 최초의 기록은 82년에 편찬된 한서다. 지리지에 고구려, 상은태 그리고 서개마 3현이 현도군에 소속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후한서(445)에는 예, 옥저 그리고 고구려가 모두 조선의 땅이었는데 한무제가 조선을 정벌하고 그 지역을 갈라 4군을 설치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때 옥저성으로 현도군을 삼았는데 고구려를 현으로 만들어 이 현도군에 속하게 하였다고 한다. 고구려는 위만조선이 망하기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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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0037 삼국사기(1145)
동부여왕이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정을 통했다는 하백의 딸을 가두었는데 햇빛이 따라다니며 비추어 알을 낳게 했다. 알에서 나온 주몽은 활을 잘 쏘아 왕자들의 시기를 받고 도망가게 되었다. 엄사수에 이르러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추격자를 따돌리고 건너갔다. 졸본천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고구려라 했고 성도 고씨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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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yghurs
Genetic analyses suggest West Eurasian (West Asian and Persian) maternal contribution to Uyghurs is 42.6% and the paternal between 43.9% and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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