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2~0037 낙랑왕 최리
○ 토착인 왕조가 낙랑군수 유헌을 죽이고 대장군 낙랑태수를 칭했다. 태수 왕준이 요동에 이르자 왕굉이 왕조를 죽이고 왕준을 맞이하였다. ○ 변경의 군을 줄이면서 도위도 폐지하였다. 현에 있던 우두머리로 모두 현후를 삼으니 불내·화려·옥저 등의 제 현은 전부 후국이 되었다. ○ 왕자 호동이 옥저로 놀러 갔을 때 낙랑왕 최리가 나왔다가 그를 보고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마침내 딸을 죽이고 나와서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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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42¦모용황의 고구려 침공
모용외의 아들 황(晃)이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하였다. 쇠(釗 고국원왕)는 더불어 싸우다 크게 패하여 단신으로 말을 타고 달아났다. 황(晃)은 승리한 기세로 계속 추격하여 환도(丸都)에 이르러 궁실을 불지르고 남자 5만여구를 노략질하여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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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42¦ 모용황의 고구려 침공
모용원진이 군사를 거느리고 그들을 공격하였다. 남쪽 길로 침입하여 목저에서 전투를 벌여 쇠(釗, 고국원왕)의 군대를 대파시키고 승승장구하여 드디어 丸都까지 침입하니 쇠는 혼자서 도망쳤다. 원진이 쇠의 아버지(미천왕) 묘를 파헤쳐서 시체를 싣고 아울러 그의 어머니와 부인 그리고 진귀한 보화와 남녀 5만여명을 약탈하고 그의 궁실을 불살라 丸都城을 파괴한 뒤 귀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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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42 모용황의 고구려 침공
모용외의 아들 황(晃)이 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하였다. 쇠(釗 고국원왕)는 더불어 싸우다 크게 패하여 단신으로 말을 타고 달아났다. 황(晃)은 승리한 기세로 계속 추격하여 환도(丸都)에 이르러 궁실을 불지르고 남자 5만여구를 노략질하여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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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7~0436 鮮卑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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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7~0436 鮮卑燕
진서와 위서 사이에 일어난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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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실록
옛 장성[古長城]. 세속에서 전하기를, ‘만리장성(萬里長城)’이라 하는데, 인산군(麟山郡) 서쪽 진병곶강(鎭兵串江)으로부터 쌓기 시작하여 의주(義州) 남쪽을 지나서 삭주(朔州)·창성(昌城)·운산(雲山)·영변(寧邊)에 연하여 뻗치고, 희천(熙川) 동쪽의 옛 맹주(孟州) 지경에 이르며, 함길도 정평(定平) 지경에 닿았다. ▶광개토왕릉비를 금나라 황제의 비석으로 인식하던 시절이니 이 기록의 만리장성을 진장성과 연결짓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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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44 광무제가 설치한 낙랑군
한나라가 44년에 바다를 건너 낙랑을 취하고 살수 이남을 한나라의 군현으로 만들었다(遣兵渡海伐樂浪取其地爲郡縣薩水已南屬漢)는 삼국사기(1145)의 기록은, 한나라가 30년에 낙랑군의 반란을 진압하고 통치를 회복했다는 후한서(445)의 기록과 낙랑왕 최리가 37년에 고구려에 병합되었다는 전래 기록을 잘못 종합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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