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 유우창의 오류
九月加耶叛王命異斯夫討之에서 加耶叛을 '가라가 반란을 일으키다'로 해석하지 않고 가라에 대한 멸칭이었던 반파를 뜻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게 설정하면 저 문장은 '가라왕이 이사부에게 명하여 그것을 토벌하게 하였다'가 된다. 이사부는 신라 장수인데 가라왕이 어떻게 부릴 수 있나? 加耶叛을 먼저 언급해 놓고 뒤에서 之로 받았다고 해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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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7 최연식 주장의 문제점
(1) 반파는 513년 이후 기록에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국명이다. (2) 반파는 가라와 함께 사용된 예가 없다. (3) 渡의 목적어로 국명이 오는 게 자연스런 문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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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골제는 방조제였다.
벽골제는 삼한시대 때 저수지 제방이 아니라 방조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조 초기에 그 흔적을 두고 거대한 호수였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었고 중국의 지역 명칭을 투영하여 호남, 호서 그리고 기호 지방의 이름이 생겨났다. -- 삼국사기의 기록에도 벽골지와 벽골제가 나오는데 저수지인지 방조제로 인해 생긴 담수호인지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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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16 무구 발굴
고령 지산동 고분군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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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9-09 봉화산성
낙동강 서변에 있어 국경城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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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12 상치리, 하치리, 사타, 모루의 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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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까역사
사타와 모루는 각각 하치리에 인접한 만경강 유역과 상치리에 인접한 금강 상류로 설정해 보았다. 모루를 이렇게 설정하면 이듬해에 일어난 기문 분쟁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기문 분쟁의 대상인 기문과 모루가 인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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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62-07 일본서기(720)
왜(倭)가 신라를 침공하는 경로는 서라벌과 가까운 동해안에 상륙하여 바로 도성을 공격하는 것과 안라와 가까운 남해안에 상륙하여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있을 수 있다. 부장군은 후자의 경로를 택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장군은 치리에서 출발하여 신라를 공격한 뒤 백제로 돌아갔다고 되어 있다. 역시 치리를 금강 유역으로 설정해야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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