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有樂浪(貊國)
삼국사기(1145)에는 백제의 동쪽에 낙랑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낙랑은 樂浪郡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낙랑은 336년, 314년 그리고 304년에 신라를 침공했고 299년에 백제를 침공했으며 295년에 백제에 의해 東有樂浪이라 불리웠고 293년에 말갈로 하여금 백제를 침공하게 했다. 이것이 두번째 의미의 樂浪이다. 東有樂浪이 맥고려에 의해 멸망당한 후 비슷한 위치에서 貊國이 나타나기 때문에 동일한 나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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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5 北有靺鞨
삼국사기(1145)에는 맥고려가 건국되던 -37년부터 靺鞨이 나타난다. 백제가 北有靺鞨이라 부르던 세력은 백제본기에서 靺鞨連我北境, 靺鞨侵北境 그리고 靺鞨寇北境으로 나타나는데, 백제와 신라의 북쪽 변경을 자주 침공하였다. 철원은 영흥만과 한수를 잇는 추가령구조곡의 가운데에 있다. 농경에 적합한 평지도 넓어 北有靺鞨이 있었음직하다. 이곳은 또한 대동강에서 영흥만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가야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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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72.06 晉書(648)
六月遣使拜百濟王餘句為鎮東將軍領樂浪太守 백제왕 여구를 진동장군 낙랑태수로 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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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72.01 晉書(648)
二年春正月辛醜百濟林邑王各遣使貢方物 백제와 임읍이 사신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쳤다. ▐ 서진의 기록에서 마한의 조공이 마지막으로 나타난 뒤 80여년이 지나 동진의 기록에 백제의 조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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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五周甲引上
삼국사기(1145)의 초기 기록은 삼국지(289) 등의 중국 사서에 나오는 정황과 맞지 않는다. 그래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 나온다. 그런데 이 기록들을 300년 뒤로 물리면 중국 사서에 나오는 정황과 잘 어울린다. 옛날에는 연도는 간지로 표기하였기 때문에 사서를 편찬할 때 60년의 배수만큼 착오가 있을 수 있었다. 서진의 패망을 전후해서 반도의 마한, 진한 그리고 변한이 백제와 신라 중심으로 재편되던 시기의 기록들이 300년 앞당겨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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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95.07 三國史記(1145) 백제
就漢山下立柵 移慰禮城民戸 한산 아래로 나아가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호들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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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5 三國史記 295-07
漢山 아래로 나아가 목책을 세우고 慰禮城의 민호들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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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6 07✘ 三國史記(1145) 백제
就漢山下立柵 移慰禮城民戸 한산 아래로 나아가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호들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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