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37~0370 前燕 요서 일대에 살던 慕容선비는 307년 모용외가 선비대선우를 자칭하며 자립하였다. 그의 아들 慕容皝은 337년에 연왕을 칭하고 단부, 後趙, 고려, 우문선비 등과 경쟁하며 성장하였다. 341년에는 용성에 도읍하였으나 353년에는 鄴으로 옮겼다. 370년 前秦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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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37~0370 前燕 요서 일대에 살던 慕容선비는 307년 모용외가 선비대선우를 자칭하며 자립하였다. 그의 아들 慕容皝은 337년에 연왕을 칭하고 단부, 後趙, 고려, 우문선비 등과 경쟁하며 성장하였다. 341년에는 용성에 도읍하였으나 353년에는 鄴으로 옮겼다. 370년 前秦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다.
※龍城-營州-柳城-朝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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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37~0370 연(前燕) 요서 일대에 살던 모용(慕容)선비는 307년 모용외가 선비대선우를 자칭하며 자립하였다. 그의 아들 모용황(慕容皝)은 337년에 연왕을 칭하고 단부, 조(後趙), 고려, 우문선비 등과 경쟁하며 성장하였다. 341년에는 용성에 도읍하였으나 353년에는 업(鄴)으로 옮겼다. 370년 진(前秦)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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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76~0905 朝鮮→樂浪→高麗로 이어진 朝鮮史의 소멸 당나라가 668년에 고려를 멸망시키고 평양에 설치했던 안동도호부를 676년에 요동으로 옮겼다는 구당서(945)의 기록을 끝으로 평양은 역사 무대에서 사라졌다. 上元三年二月 移安東府於遼東郡故城置┆901년에 궁예가 무성한 잡초로 꽉 차 있다(故平壌舊都 鞠爲茂草)고 한 평양이 역사 무대에 다시 등장한 것은 905년에 평양 성주 검용이 궁예고려에 복속해 왔다는 삼국사기(1145)의 기록부터다. 平壌城主将軍黔用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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